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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 Aug 23. 2023

금지어 3종 세트

<주간 쌍둥이>


  우리 집엔 몇 가지 금지어가 있다. '아니야', '아파요', '내가' 이 세 가지 금지어를 통틀어 우리는 '금지어 3종 세트'라고 부른다.

  물론 아이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말을 배워가는 아이가 말을 하면 그 말이 어떤 말이든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지는 못할망정 엄마라는 사람이 금지어로 정해 놓고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시라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글을 꼭 읽어 주길 바란다.




  "아니야~ 아니야~아~니~~ 야~~"

  이 소리는 방뚱이가 '송아지' 멜로디에 새로운 가사를 입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이다. 주로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옷을 입혀 줄 때 흥얼거린다. 부정적인 가사와는 달리 방뚱이에게는 저항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건지 나로서는 당최 알 길이 없다. '나는 옷을 갈아입기 싫은데 엄마가 갈아입혀주니 일단 가만히 있겠어. 대신 나의 심정을 노래로 표현할테야' 라는 뜻이겠거니 어림짐작 해 본다.

 

  "... 아니야....."

  이 소리는 추뚱이가 잠꼬대를 하는 소리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좋은 꿈은 아닌 것 같다. 꿈속 상대방에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중인듯하다. 이 와중에 자아내는 그녀의 편안한 표정은 나를 혼돈에 빠트린다. 꿈 속 상대방과 완만한 타협이 된 걸까.


  "엄마~"

  새벽 2시가 훌쩍 넘은 시간 방뚱이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응?"

  "응가 쌌어요"

  "뭐라고?!!!  응가 쌌어? 봐봐~"

  비몽사몽간에 방뚱이 기저귀 속 응가를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 플래시를 켰다. 플래시는 기저귀 속 어둠을 밝혀주었지만 응가는 보이지 않았고 방귀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안 쌌는데~?"

  "아니야~"

  어랍쇼? 이번에는 상황에 딱 맞게 '아니야'를 써먹었다. 혹시라도 기저귀에 묻지 않을 정도의 소량이 지렸나 싶어 손톱에 똥이 끼는 두려움을 무릅쓴 채 기저귀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 보았지만 어디에도 촉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휴 다행이다)

  "진짜야~ 안 쌌어~ 방귀만 빵 했나 봐~ 응가는 안 나왔어~ 어여 자자~ 코 자자~"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 이거 끝이 없겠다. 방뚱이의 똥고집을 이기지 못할 것임을 짐작한 나는 서둘러 새 기저귀로 갈아주었다. 엉덩이가 산뜻해진 방뚱이는 다시 눕자마자 잠이 들었고 잠이 달아난 나는 방뚱이가 꿈 속에서 응가대왕과 만나기를 바라며 한참을 뒤척였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이번에는 '얼레리 꼴레리' 멜로디에 가사를 입혔다. '송아지'는 배운 노래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얼레리 꼴레리'의 멜로디는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가사를 입힌 것일까? 어찌 보면 가사를 입힌 것이 아니라 작사 작곡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방뚱이가 천재라는 말이 아니다. '얼레리 꼴레리'의 작곡가는 갓난아기가 흥얼거리는 선율을 듣고 악보에 담은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본다. 날로 먹었네.




  '아파요'는 금지어 3종세트 중에서도 여비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정말이지 하루에도 수만 번씩은 듣는 것 같다. 특히나 추뚱이는 자기 전에 "아파요"를 수십 번 반복하고 아침에는 "아야~" 하면서 눈을 뜬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추뚱이는 아프거나 다친 곳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추뚱이는 매번 다른 곳을 가리키며 아프다고 한다. 추뚱이를 재우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호~'를 해줘야 하고 눈 뜨자마자 밴드를 붙여주어야 한다. 


  방뚱이는 모기한테 유난히 인기가 많다. 셋이 같이 자도 추뚱이와 나는 한 방도 물리지 않는데 혼자 물린다. 어떨 때는 한 마리의 모기에게 하룻밤에 세 방이나 물리곤 한다.(방뚱이의 피를 포식하여 움직임이 둔해진 이 모기는 다음날 아침 앉은자리 그대로 내 손에 죽고 말았다) 게다가 손버릇까지 나빠 밴드를 붙여주지 않으면 피가 나고 진물이 나고 감염이 될 때까지 긁는다. 방뚱이의 다리에는 긁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밴드가 항상 덕지덕지 붙어있다. 정말 아픈 방뚱이 옆에 상처 하나 없는 추뚱이가 유난을 떨고 있다.

  "아파요! 아파요~"

  자기도 붙여달라는 것이다. 밴드를 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소란스러운 '아파요'이다. 칭얼대는 소리가 듣기 싫은 나는 달라는 대로 밴드를 지급한다. 그래서 방뚱이보다 추뚱이 몸에 있는 밴드가 항상 더 많다.

 

  추뚱이는 유난히 오른손 검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하루의 '아파요'중 95%는 오른손 검지이다. 가끔은 자기가 깨물어 이빨자국이 난 검지 손가락을 내밀면서 아프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다.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은 당연한 것인데, 마치 아픈 곳이 있어야지만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주 아픈 방뚱이가 챙김 받는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으리라.

  그날은 이상하게 장난이 치고 싶은 날이었다. 추뚱이는 어김없이 오른손 검지를 내밀며 아프다고 했다. 꾀병을 부리며 손가락을 내미는 추뚱이를 놀래주고 싶었던 나는 '어흥~' 하면서 손가락을 깨무는 시늉을 했다. 추뚱이의 손가락과 내 입과의 거리는 5cm는 족히 되었다.

  "으앙~~~ 아파요~~~"

  추뚱이는 손가락이 아프다며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울기 시작했다. 아뿔싸. 장난이 지나쳤나? 닿지도 않았는데 고통이 느껴질 수도 있나? 아이들은 그럴 수도 있나? 추뚱이의 흐느낌에는 감히 연기라고 생각할 수 없는 바이브가 있었다. 이게 만약 연기라면 추뚱이는 천상 연기자가 될 재목이다. 나는 그저 너무 귀여워서 놀려주고 싶었던 건데.. 아이가 느끼기엔 무서웠던 걸까?... 육아는 정말 어렵다.

  "미안해, 엄마가 장난 안 칠게~ 울지 마~"


  다음날 쌍둥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담임선생님 이셨다.

  "여보세요?"

  "어머니~ 여쭤볼 것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네, 말씀하세요~"

  "어머니, 추뚱이 손가락 어떻게 된 거예요?"

  "네? 별일 없었는데요? 다쳤나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등원하자마자 손가락을 보여주며 '아파요'와 '엄마'를 반복해서 얘기하네요. 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 해서요."

  선생님께 그날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요놈이 기어코 선생님께 일러바쳤구나! 나의 형편없는 육아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추뚱이는 카시트를 거부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기이다. 얌전히 카시트에 타는 방뚱이가 오히려 더 특별해 보인다. 어쨌거나 추뚱이의 거부 사유는 한 가지이다.

  "아파용"

  그렇구나. 또 아프구나.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어디가 아픈데?"

  "요기~"

  추뚱이의 손가락은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가리키지는 못하고 매번 애매한 위치를 짚는다. 가슴이 아프다고 하기도 하고, 다리가 아프다고 하기도 한다. 어쩔 때는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기도 한다. (손가락은 상관없잖아...) 카시트와 상관없이 아프다고 하는 추뚱이를 바라보며 꾀병이라 확신하고 운전석에 앉으면 또다시 메아리가 시작된다.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숙련된 엄마는 딸의 표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동을 건다. 10분 정도 지나면 조용해지기 때문이다.

  추뚱이도 과거에는 카시트를 거부하지 않았었다. 이따금씩 어깨끈에서 팔을 빼기는 했지만 출발 전부터 난리를 치진 않았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인지 과거를 역추적해보고 원인을 찾던 어느 날 여비와의 대화를 통해 카시트 탑승 거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뭐 해?"

  "자꾸 아프다고 해서 어깨끈 좀 느슨하게 해 주려고"

  "위험해, 추뚱이 어깨끈은 더 바짝 조여야 돼"

  "설마, 당신이 추뚱이 태울 때 어깨끈 꽉 조였어?"

  "응! 꽉 조였지. 얘가 자꾸 어깨끈에서 팔을 빼잖아"

  이거였구나. 그랬구나. 추뚱이는 단지 답답한 것이 싫어서 팔을 뺏었던 것뿐인데 여비는 팔을 빼지 못하게 하려고 더 강하게 어깨끈을 조여주었었구나. 물론 안전상의 이유였겠지만 그런 아빠의 걱정을 알 길이 없는 추뚱이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어깨끈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괴로웠겠구나. 범인은 이 안에 있었다.

  엄마가 의문이 풀리는 것과 관계없이 추뚱이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카시트를 거부한다.


  평소에도 틈만 나면 '아파요'를 남발하는 추뚱이가 '아파요'를 외칠때 진짜로 아픈 건지 꾀병인 건지 알 수가 없다. 간혹 진짜로 아플 때도 있지만 추뚱이의 '아파요'는 웬만하면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양치기 소년의 교훈처럼 말이다.

  추뚱이는 종종 식사 중이거나 뜬금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아프다고 한다. 아플 상황이 아니기에 또 꾀병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대다수이지만, 나의 빅 데이터에 따르면 이건 응가를 쌌을 가능성이 높다. 응가를 싸고 나면 바로 '응가'라고 말하며 씻어달라고 하는 추뚱이이기에 처음에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노는 게 너무 재미있거나 식사의 흐름이 끊기기 싫어서 응가를 싸고도 말하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발진이 생기고 나서야 아프다고 말한 것이다. 추뚱이의 약한 피부는 변기에 응가를 하거나 응가를 하자마자 엉덩이를 씻겨줘도 빨갛게 발진이 생긴다. 그런 추뚱이 이기에 조금만 방치해도 심각한 발진과 함께 두드러기까지 올라오니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응가'보다 '아파요'가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추뚱이의 심리를 짐작해 본다.




  순하디 순한 쌍둥이들도 25개월차에 접어드니 '내가 병'에 걸리고 말았다. 아직 혼자서는 물 한 컵 마시지도 못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맘때의 아이들이 다 그렇듯 말은 통하는데 말은 듣지 않는다. 고집은 또 어찌나 센지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서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우리 집 바닥은 쌍둥이들이 이 쪽 저 쪽에서 사고 친 물과 주스, 과자들로 365일 난장판이다.

  자전거도 자기가 조립해야 하고(다칠 수 있다), 식당에선 꼭 자기가 먹어야 하고(이모님 죄송합니다), 밴드도 자기가 뜯고 붙여야 한다.(안 다쳤다) 기저귀도 자기가 입어야 하고.(찢어진다)

  아이들은 실패를 하며 배우는 것이기에 나는 나의 체력이 되는 한 아이들이 실컷 스스로 해볼 수 있게 해주려고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로인해 지구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기가 스스로 하겠다는 의미의 '내가'는 싫어하지 않는다. 그 '내가'와 금지어인 '내가'는 약간 결이 다르다.

  

  "내가!!"

  "내가!!!"

  "내가!!!!"

  "내가!!!!!"

  쌍둥이가 서로 마주 보고 누가 누가 목소리가 더 큰지 겨루고 있는 상황이다. 두 아이의 손에는 다리가 찢어지기 일보 직전인 인형의 팔이 한쪽씩 들려있다.

  "얘들아... 여기 똑같은 인형 하나 더 있잖아..."

  "...."

  "...."

  이게 바로 금지어의 '내가'이다. 서로 자기가 먼저 가지고 놀겠다고 싸우는 '내가', 하나 더 있는 걸 모르는 게 아닐 텐데 일단 지르고 보는 '내가', 누구 목소리가 더 큰지 겨뤄보는 '내가'. 목소리는 방뚱이가 더 크지만 인형을 쥐고 있는 힘은 추뚱이가 더 세기에 누가 승자인지는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건 엄마는 아니다.


  



  여비와 내가 맘대로 금지어라고 정해놓았지만 금지어라는 개념을 모르는 쌍둥이들은 오늘도 금지어를 신나게 말한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세 가지 금지어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가~" (내가 할 거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할 거야)

  "아파요~" (아파 때리지 마)

  "내가!" (모르겠고 내가 할 거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할 거라고)

  "아니야?" (그래? 네가 할 거야?)

  "아파요!" (왜 때려! 말로 해! 아파!)

  "아야 아파요?" (아파? 그래서 네가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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