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는 살이 찢기고 멍이 드는 일 외에도 부상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추락으로 인한 부상이다.
주로 폴과 맞닿은 피부가 미끄러지거나 손에 힘이 빠지면서 떨어지게 된다. 매트 위로 떨어지면 다행이지만 폴에 부딪히거나 매트 바깥으로 떨어지면 낭패이다.
한창 의욕이 앞서있던 시기였다. 몸을 거꾸로 뒤집는 '인버트'라는 동작이 잘 안 돼서 답답하던 차에 당근마켙에서 3만 원을 주고 홈폴용 봉을 구매했다. 집에 설치된 홈폴을 이용해 매일같이 연습을 하자 원하던 동작은 금세 성공했다. 문제는 폴의 위치였다. 24개월의 말괄량이 쌍둥이를 키우는 우리 집에서 폴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은 베란다뿐이었고, 부상방지를 위해 매트를 주문했지만 해외배송이라 아직 도착하지 않았었다. 그럼 참았어야 했다. 넘치는 의욕은 항상 문제를 야기한다.
매트 대신 아기들의 침대가드를 깔아놓고 연습에 열중하던 중 '에어 인버트(위에서 몸을 뒤집는 동작)'를 성공하고 조심히 내려오려는데 복근에 힘이 빠지면서 하필이면 왼쪽 발가락이 매트와 매트 사이에 안착하고 말았다.
"빡!"
발가락에서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다. '그냥 살짝 삐었을 거야.' '내일이면 나을 거야.'라고 간절히. 바랬지만, 저녁이 되자 엄지발가락 주변이 팅팅 붓고 멍이 퍼지고 있었다. '설마...' 다음날 만사 제치고 병원부터 갔다.의사 선생님은 X-ray상 왼쪽 엄지발가락의 뼈에서 골절로 의심되는 하얀 부분이 보인다며 일단 반깁스를 하자고 하셨다. '아... 매트 올 때까지 조금만 참을걸...'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생각보다 심각했던 이 부상은 3주간 반깁스를 하고 3개월간 테이핑을 해야 하는 중상이었다. 3개월 동안 스트레칭도 제대로 못하고 왼발을 사용하는 모든 기술을 포기해야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의욕이 앞서면 부상으로 이어진다. 폴을 타고 싶다면 무리하지 않는 안전한 폴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운 사건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속상하여 반깁스 한 상태로, 또 발가락을 테이핑 한 상태로 계속해서 폴을 탔다. 그나마다행인 것은 평지에서 걷는 것보다 폴에 매달렸을 때 오히려 발가락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가락 부상 중에도 나는폴댄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발가락 부상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다만 또 다른 부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상투혼으로 폴력5개월차에(평균 보다 빠른 시기에) 에어인버트를 성공했고, 나의 다음 목표는 아이샤(두 팔로 몸무게를 버티는)라는 동작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6개월 차에 바로 아이샤를 성공했다. 그러나 내가 뭐라고 했는가. 발가락은 피해 갔지만 어깨와 손목의 부상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충분히 스트레칭을 하고 연습을 진행했지만 출산으로 인해 관절이 약해진 탓인지 내 무게를 버티기에 벅찼나 보다. 아이샤를 할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무리해서 시도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아이샤를 10초 동안 버티고 10시간은 뻐근해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푹 자고 일어나면 회복이 되긴 되었다는 것이다. 의욕과 열정에 눈이 멀어 몸에 무리가 되는 동작들을 계속해서 연습했다.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는데, 스스로의 욕심에 몸을 혹사시켰다.해당 기술을 버틸 몸이 되기 전에 무리한 기술 시도는 부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웜업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폴을 타기 전에는 충분한 스트레칭과 웜업이 기본이다. 기술 하나를 연습하기 위해 잠깐 폴을 타려면 최소 30분은 몸을 풀어주어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집에 폴을 설치하고도 방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웜업 하기 귀찮거든...
이 밖에 폴댄스의 흔한 부상으로는 온몸에 시퍼렇게 드는 멍과, 손바닥 굳은살의 찢어짐이 있다.
일단, 멍은 어쩔 수 없다. 폴댄스는 아프다. 폴을 오금, 엘보, 허벅지등과 마찰시키며 버티는 운동이니 아픔을 이겨내지 않는다면 폴을 탈 수 없다. 당연한 얘기다. 피부가 연하고 쉽게 멍이 드는 나 같은 사람도 폴을 탄다. 멍이 어찌나 잘 드는지 폴댄스를 하기 전에도 몸에 한두 군데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물론 언제 어디서 생긴 멍인지 모른다. 누군가 '어? 너 거기 멍들었네?' 하면, '그러네? 언제 생겼지?'라고 대답하곤 했다.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멍이 들고, 조금 무거운 가방을 팔로 들면 가방라인으로 멍이 생기고, 잠깐 무릎 꿇고 걸레질을 해도 멍이 드는 체질이다.그런 내가 폴댄스를 한다. 팔과 다리는 당연히 멍 투성이가 되었다. 흔히 곰팡이가 피었다고들 말한다. 심지어 한번 생긴 멍은 짧게는 1주길게는 3주까지도 유지된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 후 새로운 멍이 생기지 않으면 섭섭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운동을 했는데도 멍이 들지 않으면 '아, 오늘 운동 제대로 안 했나?'하고 아쉬워하고, 새로운 멍이 들었으면 '후후, 칭찬해, 오늘도 멋졌어 나!' 하며 만족해한다. 변태다. 변태가 틀림없다.
손바닥에 생기는 굳은살 역시 폴러들에겐 훈장 같은 존재이다. 헬스장에서 무게 치는 사람들도 공감할 그 부위,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들도 아는 바로 그 부위이다.
10년 전(아..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구나) 한창 클라이밍에 미쳐있던 시기에 하루에 한 번은 굳은살이 찢어지는 경험을 했었다. 클라이밍은 홀드(벽에 박힌 돌)를 잡고 위로 올라가야 하는 운동이기에 굳은살이 찢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여차하면 찢어진다. 정말이다. 그래서 운동 후에는 사포로 굳은살을 갈아주는 루틴은 필수였다. 살기 위해서는 갈아야만 했다.
폴댄스는 클라이밍에 비하면 매우 순한 맛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기 전용 네일트리머로 갈아주면 다칠 일은 없다. 꾸준한 관리만이 살길이다.
스트레칭으로 인한 부상도 빈번히 발생한다.
이제 좀 부상과 멀어지는 건가 싶었던 어느 날, 스트레칭 도중에 무리를 하면서 갈비뼈 위쪽에 압박이 가해졌고 그대로 부상으로 이어졌다. X-ray를 찍어보니 골절은 아니지만 복근에 힘을 주거나 무거운 것을 들거나, 과도하게 움직이면 통증이 있었다. 이후 (또...) 복근을 쓰는 기술을 못하게 되었다. 늑골염좌로 인해 배운 교훈이 있다. 그건 바로 '아프면 쉬자'이다.
당연한 말이고, 쉬워 보이는 말이지만, 폴러들에겐 가장 지키기 힘든 말이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지키지 못한다. 폴은 정말 매력적이거든...
이번에도 쉬지 못하고 폴을 계속 탔다. 인버트를 제외하곤 얼추 따라가는 것 같아서... 무리했다... 쉬었어야 했다...매일 하던 루틴 (레이코 - 아이샤)으로 운동을 마무리하려는데평소처럼 복근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레이코에서 오른쪽 어깨에 하중이 실렸고 이는 바로 어깨 부상으로 이어졌다....
늑골 염좌는 폴을 쉬엄쉬엄 탈 수 있을 정도였지만, 어깨 부상은 긴 휴식이 필요했다. 그럼에도폴이 미치게 타고 싶어 스테로이드 주사까지 맞아가며 운동을 쉬지 않았다.
폴이 가진 매력이 이 정도이다.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폴댄서들에게 가장 흔한 부상은 바로 갈비뼈 골절이다.
특히 인버트를 할 때 포켓이 아닌 갈비뼈가 컨텍될 때 골절되곤 한다. 바닥인버트에서 많이 다친다고 하는데 나는 다행히 인버트를 배우자마자 에어인버트로 넘어가는 바람에 다칠 기회(?)가 없었다. 인버트뿐만 아니라 알레그라라는 동작처럼 옆구리가 폴에 닿을 때는 항상 포켓이 닿아야 부상위험이 없다.
나 역시 갈비뼈 골절로 고생한 적이 있다. 폴을 타다가 다쳤다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별다른 주의사항 없이 첫 알레그라를 선 보이고 옆구리 쪽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당시에는 진통제 몇 알이면 나을 정도로 심하지 않은 결림이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아이와 심하게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고, 하필이면 그 부위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던 부위였다. 그 순간 어마어마한 통증이 찾아왔고 거동이 불편해졌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다가 너무 아파서 '아, 이건 심각하다...'라는 확신이 왔다. 아니나 다를까 골절이 되었다. 실금도 아니고 완벽히 어긋난 늑골골절이었다.
추측건대 운동 중 잘못된 컨택으로 살짝 실금이 간 상태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아 '뽀각'하고 부러진 것 같다. 스테로이드 주사까지 맞아가며 운동을 이어가던 나에게 골절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충격파치료와 한방치료를 병행하며 3주 만에 완치되긴 했지만 폴을 못 타고 누워만 지낸 3주는 내게 너무나도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하루종일 남들이 올린 폴링영상이나 폴웨어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자숙기간이었다.
수많은 부상을 통해 내가 배운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프면 쉬자
둘째, 무리하지 말자
셋째, 웜업과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자
아플 때 억지로 폴을 타다 보면 엄한 데를 또 다칠 수 있다는 것. 나의 몸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기술을 시도하다가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것. 웜업은 내 몸을 지키는 가장 쉬운 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