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도 Aug 23. 2023

영어를 쓰지 않습니다.

전 한글이 좋아요. 엄청 많이.

나는 아마존 내에서도 특이한 조직에 있다. 내 조직은 엘에이, 시애틀,  뉴욕, 유럽 각지에 퍼져있고 서울엔 단 한 명. 나 혼자이다. 덕분에 회사생활을 하며 향상된 능력 중 하나는 영어일 것이다. 웃기게도 몇 년 전 영어로 말다툼을 하던 중 느꼈다. '오, 나 영어 많이 늘었네?' 비로소 모국어가 아닌 제2의 언어로 내 불만을 토로하고 논쟁할 때, 토익점수나 텝스 점수가 아닌 현실에서 바로 그것을 느꼈다.


여하튼 나의 업무적 배경으로 인해 모든 일은 영어로만 이루어진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생각하기 모두 영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업무 밖에서 영어를 마주쳤을 때 더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도가 지나치다. 길거리의 간판과 메뉴판이 문법조차 맞지 않는 영어로, 한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게시된 곳이 너무나도 많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뛰어난 영어실력의 반증일 수도 있다. 메뉴가 영어로 되어 있어도 다들 잘 읽고 잘 주문하고 잘 산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 한글만이 아름답고, 한글이 최고입니다 여러분! 과 같은 K-부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인데 규제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외국 아님 주의. 대한민국 카페의 메뉴판이다. (커뮤니티 갈무리)


우리는 누군가 대화 중 영어 단어를 불필요하게 섞어 쓴다면 '어머 저 사람 왜 저래?'라고 생각할 것이다. '저는 tea를 마실 때 sugar보다 maple syrup을 넣어서 drink 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윽.

그렇다면 우린 왜 대화 중에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건 밥맛이라고 생각하면서, 메뉴판에 저토록 어지럽게 영어가 써져 있는 것은 묵인할까?


이 정도면 감사해야 하는 걸까? 그나마 한글이 적혀있긴 하다. (커뮤니티 갈무리)


이러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나 혼자만의 투쟁은 글을 쓸 땐 최대한 영어를 쓰지 않는 것이다. 의외로 쉽지 않다. 우리 생활에 스며든 영어 단어도 많고, 특히 학교나 회사에 대한 글을 쓸 땐 전체 글을 써 내려가는 것보다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영어로 쓴 게 멋져 보인다는 동향은 (방금도 트렌드 trend를 어떤 단어로 대체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해한다. 하지만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라도,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인식 변화와 나아가선 어떠한 강제적 규제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마존의 글쓰기 문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