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한국 회사에서 7년을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승진에 목을 맸던 이유도, 승진이 나의 유일무이한 목표였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대학교 4년을 휴학 한 번 없이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들었기에 신입 중에도 나이가 어린 편이었고, 기운이 센 (?) 업계에서 갓 학교를 졸업한 아가씨로서 일하는 건 쉽지 않았다. 무시당하지 않고 싶어서 일에 욕심을 많이 냈다. 자리가 날 만들어주겠지,라는 생각이었다.
하라는 것 열심히 하고, 가라는 곳은 다 가며 회사 생활을 해내다 보니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여러 직급을 달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과연 내가 그런 직급을 다는 것에 준비가 되어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연차가 차면서 직급은 달리기 마련이니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정말이구나 싶었다. 사원인 나와 과장인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고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이는 게 너무 신기하고 이상했으며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곳에 왔다. 이곳에서의 승진은 내가 밀어붙이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철저히 내가 증명해 내야 하며 내가 만들어내야 한다. 매니저도 절대 ‘너도 승진해야지’ 라던지 ‘이렇게 해야 승진할 수 있다’라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내가 많이 하는 생각 중에 하나는 ‘나는 승진을 하고 싶은가?’이다. 이전 같았다면 승진이란 내 욕심이고 자존심이었으며 최우선의 과제였을 것이다.
아마존에서의 승진은 고난의 여정이다. 이루어낸 성과들이 (많이) 있어야 하고, 나보다 레벨이 높은 동료 6명 이상의 동의 및 피드백을 받아야 하며, 내가 승진을 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문서화하여 ‘증명’해내야 한다. 단순히 사원 3년 후 주임, 주임 3년 후 대리인 것이 아니기에 힘든 것이고,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다. 내 동료는 승진을 목표로 하고 진행한 지 2년 만에야 승진을 할 수 있었다.
최근 MBA 수업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일을 잘하는 것과 좋은 매니저인 것은 절대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한다고 해서, 사람을 다루는 매니저로 직무를 변경시킨다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손해인 것이다. 내가 잘하는 일을 할 시간에, 내가 잘할 줄도 모르는 직원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존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1. 현재 하고 있는 일과 그 일의 양에 만족하여 한 레벨에 오래 머무는 사람
2. 레벨은 나와 같지만 매니저를 하고 있는 사람
3. 나보다 2 레벨이나 높지만, Individual Contractor 즉 매니징은 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사람
등등이 있다.
모두가 각자가 선택한 길에 있기에, 어느 한 곳에 오래 있다고 해서 실패자인 것이 절대 아니다. 그 사람은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고, 회사입장에선 각각의 직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난 아직도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것 같다. 2024년엔 꼭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