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왜 안 떨려?
6/5 건강검진 결과(이상소견)
6/8 집 근처 유방외과 초음파 및 총조직생검
6/17 결과 및 2차 ㄱ병원 초진
7/1 2차 ㄴ병원으로 옮겨서 다시 초진. 수술 결정 후 혈액/소변/MRI 검사 진행
7/3 CT
7/8 ㄴ병원 외래진료 (검사 결과) 및 뼈스캔
7/9-13 입퇴원 (7/10 수술)
7/17 수술 후 첫 외래진료
7/18 타목시펜 시작
8/5 방사선 (16회) 시작
입원 날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갔다. 운 좋게도 맨 끝 방 (언제나 코너룸을 좋아한다)에, 맞은편은 대로변과 작은 산이 보이는 뷰의 병실이었다.
도착 직후
- 간단하게 병실생활에 대한 안내를 받고,
- 병원복으로 환복 후 키와 몸무게를 쟀다.
- 항생제 테스트를 했고
- 수술 때 가이드가 될 수 있도록 종양의 정확한 위치를 표시하는 얇은 바늘을 수술 부위에 넣는다. 누워있으면 초음파로 종양을 보며 바늘을 넣으시는데, 얇은 바늘이어서 아프진 않지만 굉장히 뻐근하고 참을 수 없게 소름 돋는 느낌이었다. 바늘을 밀고 당길 때마다 가슴의 신경줄을 한 줄 뽑아서 끝없이 당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담당 교수님이 자꾸 혀를 차는 소리를 내시며 갸우뚱하기 시작했다. 체감 상 억겁의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계속 갸웃거리시며 유방이 너무 고등도치밀조직이라 아무리 바늘을 넣어도 조직이 자꾸 밀어낸다고. 결국 다른 방향으로 한 번 더 넣어야겠다고 하셨는데 도저히 이 느낌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마취를 해달라고 말씀드렸고, 부분 마취 후 진행했다. 부분 마취도 아프지만 바늘을 넣는 걸 한번 더 참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표시 후, 바늘이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바로 누워서 자라고 하셨다. 혹시 바늘이 빠져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매우 잘 싸매주시기 때문에 염려 없었다. 아무리 얇아도 바늘이 내 몸속에 있다니 너무 아플 것 같았지만 아프진 않고 그냥 괜히 신경 쓰여 섬찟한 정도의 수준이었다.
- 간호사선생님께서 오른쪽 쇄골 아래에 이쪽이 수술하는 쪽이라고 마카로 표시를 해주셔서 아, 방향을 착각해서 생기는 의료사고는 없겠구나 싶어서 안심이 됐다.
- 병실에 도착하니 왼쪽 팔뚝에 수술용 정맥주사도 꼽아주셨다. 긴장되는 기분은 없고 내일이 빨리 와서 수술방에 눕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수술날
오후 2시 수술이어서 밤 12시부터 물 포함 금식을 했다. 수술 전 저녁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푹 잤다.
수술방에 내려가기 전엔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압박 스타킹을 신는다. 그렇게만 하면 준비 끝이다.
수술 침대에 누워 수술방에 들어갈 때 천장의 형광등을 보며 눈물이 난다거나, 수술방이 추워서 서럽다거나 하는 등의 느낌은 전혀 없었다. 수술 대기장의 분위기는 활기찼고, 여러 의료진들이 번갈아가며 계속 오늘 어떤 수술을 받는지, 어느 쪽 수술하는지, 이름과 생년월일은 어떻게 되는지 여러 차례 확인해 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드디어 수술방. 수술 모자를 쓴 내 담당 교수님의 얼굴이 보인다. 스툴에 걸터앉아 주변 선생님들과 캐주얼한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에 또 한 번 안심이 됐다. 그래, 이까짓 거 별거 아니다는 느낌.
마취 교수님이 다시 한번 내 개인정보를 확인하신 후, 흔들리는 치아가 없는지 등을 확인하시면 이제 수술 시작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어이없게도 '예쁘게 잘 부탁드립니다!'였다. 다들 웃으며 걱정 말라고 하셨고, 뜨겁다시피 따뜻한 손을 가지신 한 분이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 후엔 아무 기억이 없다.
일어나니 회복실이었고, 수술 부위에 배액관 그리고 왼쪽 발목에 혈압계가 달려있었다. 일정 시간마다 혈압이 자동으로 측정되었다.
이 순간을 위해 몇 주 전부터 짝꿍과 복식호흡을 엄청나게 연습했다. 복식호흡을 열심히 해야 마취도 빨리 깨고 회복이 빨리 된다고 한다.
어서 나가서 가족들에게 나 괜찮고 무사하다! 를 알리고 싶었다. 미친 듯이 복식호흡을 했고, 주변을 둘러보니 무통주사는 없는 채로 수액줄만 있었다. 써지컬 브라가 입혀져 있었고, 스펀지가 들어있는 패드가 우측 가슴에 두 겹 끼워져 있었다. 회복실은 조용했고 차분했다.
30분이 지나자 회복실에서 나가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술은 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고. 중간에 교수님이 나가서 수술이 매우 잘 됐다고 말씀드리니 엄마가 엄청나게 오열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럴 땐 엄마의 마음을 내가 모래알만큼이나 헤아릴 수 있을까, 싶다.
수술 부위 통증은 있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주사로 진통제를 한 번 더 놔주셨다. 괜히 무서워서 팔을 움직이는 게 겁이 났지만, 책에서 보기론 너무 안 움직이면 근육이 굳어 나중에 정말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하여 수술 다음날부터 조금씩 아주 열심히 움직였다.
추가 금식 없이 저녁으로 죽을 먹을 수 있었고 조금씩 걷기도 했다. 저녁엔 교수님이 다시 한번 오셔서 수술은 예상대로 끝났고, 림프절 중 5개 정도만 떼어내서 검사를 했는데 전이는 없었다고.
수술 다음 날
식사와 함께 하루 2번 먹는 진통제가 나온다. 걷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고, 컨디션도 좋았다. 이 날 정맥주사줄을 제거했다. 영양사님과 유방암 코디네이터 간호사님께서 각각 오셔서 앞으로의 영양 상담, 그리고 추 후 관리 법등을 자세히 알려주셨다.
담당 교수님은 아침저녁으로 꼭 회진을 오셔서 인사를 하고 가셨다. 내가 했던 질문들 중 하나는, 교수님도 암에 걸리셨었는데 (15년 전 갑상선 암을 진단받으셨다고 한다.) 암 전과 후에 어떤 걸 달리 하시는지? 였다.
답은: 내 몸에게 내가 잘못한 것들을 반성문처럼 적어보아라.
수수께끼 같기도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말씀이었다.
수술 다다음날
이 날 퇴원 사인이 떨어지긴 했으나 괜히 겁나는 마음에 하루 더 있겠다고 했다. 그 정도로 회복이 빠른 수술이었다. 이 날은 재활의학과에 가서 림프 마사지를 배웠고, 액와막 증후군 (수술 쪽 팔을 너무 안 쓰면 근육막이 굳어버리는데, 이걸 치료하려면 정말 매우 고통스러운 운동을 해야 하니 적절한 운동의 필요성을 매우 강조하셨다.)을 방지하는 스트레칭 등을 배웠다. 움직였다가 수술부위가 터지면 어떡하나 라는 겁에 질려 있는 내게 담당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하신 말씀은 "절대 안 터집니다. 절대로요."였다.
다만 간혹 상처 회복이 덜 되었는데 횡단보도 초록불이 깜빡일 때 빨리 건너려고 뛰거나, 오르막길을 빠르게 올라간다거나, 아기를 꽉 안 거나 와 같은 압박/충격을 주면 안에서 물이 차거나 부어오를 수 있다고 하니 그런 것만 조심하라고 하셨다.
오후엔 배액관을 떼러 와주셨다. 내 몸에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통해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상상에 너무 무서웠는데 배액관을 빼니 움직임도 편하고 날아갈 것 같았다. 건강한 몸으로 지내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게 됐다. 수술 상처는 겉에서 꿰맨 게 아니라 제거할 실밥은 없다고 하셨다.
퇴원날
이 병실을 떠나게 된다는 게 왠지 아쉬웠다. 아무렴 '암'인데 이렇게 금방 퇴원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집에 있는 내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다.
천천히 짐을 싸서 퇴원 수속을 밟고 10분 거리에 있는 냉면집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가기로 했다. 그 10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왠지 앞에서 오는 사람들이 내 어깨를 치고 갈 것 같은 기분에 조심조심 걷느라 20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이제 다음 주부터 16회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면 당분간 병원과는 작별이다.
그리고 이제 가장 어려운 숙제가 남았다. 앞으로 어떻게 나 스스로를 관리하고 잘 키워낼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