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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Aug 04. 2023

2023년 8월 홍콩 여행-에필로그

켄을 찾습니다.

언제나 북적이는 점심시간. 홍콩에서 합석은 기본이다. 사실 내 입장에선 테이블이 나기까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좋다. 


이곳도 마찬가지. 들어가서 1명이라고 하니, 바로 시크하게 2인 테이블을 가리킨다. 테이블은 이미 식사가 한창인 40대 중후반 즈음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땀을 흘리며 돼지갈비찜을 드시고 계셨다.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려는데 이게 웬 걸? 딤섬 메뉴는 뜨문뜨문 영어로 표기가 되어 있지만, 그 외 메뉴는 죄다 한자. 그야말로 하얀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씨이다. 


이걸 제가 어떻게 읽어요...


서둘러 구글리뷰의 사진들을 보며, 영어가 전혀 불가하신 직원아주머니에게 손짓으로 주문을 하던 나를 보고 아저씨가 '헤이, 헤이' 하면서 광둥어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저는 광둥어를 할 줄 몰라요'라고 하니 그제야 꽤 유창한 영어로 '너 뭘 먹고 싶은 거야?'라고 묻는 아저씨. 사진을 보여주며 돼지고기 솥밥과 두부피 딤섬을 먹고 싶다고 설명하자, 아주머니에게 호통을 치며(광둥어는 왠지 무슨 말을 해도 호통처럼 들린다.) 내 주문을 대신해 줬다. 연신 고맙다는 나의 인사에 손사래를 치며 다시 돼지갈비찜에 집중하는 아저씨. 


그런데 왠지 아저씨가 이상하다. 자꾸 나를 흘끔흘끔 쳐다본다. 한참을 곁눈질하더니, 못 참겠다는 듯 직원을 부른다. 인상을 쓴 직원이 도착하자, 입에서 밥알을 튀기며 열정적인 손가락질로 나와 테이블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말하신다.(이번엔 진짜 호통이었다.) 대화가 끝나고,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더니 그냥 씩 웃고 다시 갈비찜에 집중. '아! 광둥어를 좀 공부해 볼걸. 지금이라도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에 괜히 네이버에 광둥어 학습지를 검색해 본다. 


1분도 되지 않아 갑자기 직원분이 나에게 국그릇에 담긴 뿌연 국물을 갖다주었다. 직원분께 이게 뭐냐 물으니, 아무 말 없이 아저씨를 가자미눈으로 흘겨보고 휙 가버린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나에게,


아저씨: 점심때 식사를 시키면 원래 무료 국물을 주는데, 이 사람들이 너한텐 안 갖다 주는 거야. 맛있으니까 얼른 먹어. 소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국물이야.

나: 도와줘서 고마워요! 제 이름은 ㅇㅇ이에요. 

켄: 내 이름은 켄이야. 너 중국에서 왔니? 

나: 아뇨, 전 한국에서 왔어요. 

켄: 오~~~ 한국! 여긴 놀러 온 거야? 처음 왔어? 혼자 왔어? 학생이니? 너 차도 마실래? 차도 무료야. 

한국의 소고기 뭇국 같다. 그러나 국물이 훨씬 더 깊고 진하다. 사골국에 끓여낸 소고기 뭇국 같은 느낌.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차를 주문해 주는 켄. 학생이라기에 전 나이가 너무 많은걸요,라고 대답했더니 배를 잡고 웃어버린다. 너 아주 어려! 라며. 고마워요 아저씨, 빈 말이어도 나에게 용기가 돼요.


나: 홍콩에서 제일 좋아하는 식당이 있어요? 저 좀 알려주세요.

켄: 나는 침사추이의 ooo 차찬텡을 제일 좋아해. 

나: 갈 수 있으면 가볼게요! 맛있는 월병은 어디서 살 수 있죠? 

켄: 기와병가도 괜찮은데, 홍콩 사람들은 아이스 월병을 많이 먹어. 여기에 왔으니 아이스 월병을 먹어봐! 근데 너, 홍콩에 먹으러 온 거니?

친히 핸드폰으로 아이스 월병을 찾아서, 어서 사진으로 찍어두라며 보여주는 켄.

나: 네, 정확히 보셨어요. 아저씨 제 딤섬 좀 나눠드실래요?

켄: (벼룩의 간을 빼어먹겠다는 얼굴로) 너 많이 먹어. 그거 먹고, 라바 딤섬도 맛있으니 그것도 시켜 먹어.


옆테이블에 따로 앉아있던 켄의 동생, 사일로와도 인사했다. 사일로는 낯선 외국인과 대화하는 형이 그저 창피한지, 고개를 푹 숙이고 손짓으로만 안녕한다. 


홍콩은 불친절하기로 유명하다. 웬만큼 유명한 미슐랭 레스토랑도 구글 평점은 죄다 3점대. 후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직원이 무례했다, 불친절했다는 이유가 가장 많다. 위의 나의 경험도 사실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관광객이라는 이유로, 무료 국물과 차를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위의 경험은 차치하고, 그들의 강한 광둥어 성조와 무뚝뚝한 인상으로 인한 오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나쁜 사람은 있고, 또 곤경에 처한 이를 도와주는 선량한 시민도 있다. 다녀보니 아직까진 후자가 많은 것 같다.


특히 타지에서 도움을 받으면 그 감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켄들에게 감사를 보내며 홍콩 여행기도 천천히 적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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