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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아빠 Jul 21. 2023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데...

롱텀 히말라야 산행기_4

꿈자리가 시끄러웠다. 평온히 잠들었고 침낭도 따뜻했는데 일어나서는 머리가 맑지 못한 느낌이었다. 채 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후에 크리슈나가 내 안색을 살피고는 잠을 잘 잤냐고 물어본 후 내 대답을 듣고 그건 흔히 고산에서 겪는 몇 가지 증세 중 하나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다음날 찾아왔던 미친듯한 두통은 흔하다고 얘기하기엔 너무 격렬했다.)




 짐정리를 마치고 나와 식사를 간단히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찰나 맞은편 방에서 들리는 염불소리에 호기심이 일었다. 머리를 내밀어 살짝 보려다 승려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인상이 좋은 그는 편히 앉아서 구경해라고 말했다. 벽에 그려진 탱화들은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 북을 비롯해 여타 타악기를 치며 기도를 외우고 잠시동안 명상을 하는 순서로 아침기도는 끝이 났다. 읇조리는 듯한 기도는 본토의 언어라 그런지 방안을 가득 채우는 울림이 있었다.


트레킹의 아침은 마치 '칼 짜이즈의 블루' 처럼 쨍하다

 히말라야의 10월 기후는 대체적으로 매일 같은 패턴을 가진다. 날이 밝은 후 오전까지는 주로 맑은 날씨를 보여주다가 오후가 될수록 구름이 산허리를 걸치는... 고로 어쩌면 사색에 최적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루의 출발은 상쾌하며 저녁은 은은히 마무리된다. 로지 근처의 기암괴석에 감탄하며 다시 트레킹을 시작해 본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빠르게 걸으니 앞에 오스트레일리안 트랙커들이 단체로 트레킹 중이다. 옆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를 가진 나무가 어디서 본모습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사과나무밭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를 파는 가게가 나왔다. 당도가 좋고 쌉싸름함도 매력적인 작은 사과. 크리슈나는 웬일인지 이런 것을 권하면 먹지 않는다.  


 '사과는 하루의 건강을 지켜주는 의사입니다'


 가게 한편에 적어놓은 문구가 마케팅적 효과를 적절히 발휘하고 있다.


Heaven's Gate


 사과를 먹은 것에 대한 대가라도 치르듯 굽이치는 오르막을 끝없이 오른다. 이곳은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다. 햇빛은 뜨겁고 길은 가파르다. 목적지까지 거리는 길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적절히 쉬어주는지가 관건이고 그게 고산병에 컨디션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저절로 휴. 하고 가벼운 한숨이 나오는 가운데 앞을 올려다보니 '헤븐스 게이트'라고 부르는 거대한 암벽이 보인다. 죽은 이들이 올라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 높이가 1킬로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암반이다. 여기 이곳 8천 미터짜리 산맥이 아니면 어디서 저런 걸 보겠는가. 바위의 중간지점부터는 수목한계선이 드러나 식물이 자라지 않고 있다. 풍경은 더없이 황홀하지만 풍경이 대신 걸어와주는 것은 아니기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평지가 나왔다. 얼마 후 만난 두크르 포카리 마을은 산맥이 주는 특유의 고요함을 더없이 잘 느낄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가만히 누워 눈을 감았다. 대자연이 내뿜는 거대한 저주파음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다른 트랙커도 평상에 누워 그 소리를 듣는 듯 해 보인다.


어퍼피상은 로우피상에 비해 높은 곳에 위치한다.


 오늘의 도착지인 피상은 로우피상과 어퍼피상으로 나누어져 있다. 비교적 로우피상의 호텔들이 시설적으로 더 낫고 어퍼피상은 그 전망이 훌륭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날의 선택기준은 나의 컨디션에 따라 로우피상으로 정해졌다. 어퍼피상은 로우피상보다 몇백 미터 이상 높은 지점에 있고 그것이 현재 내 고산증세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한다. (혹은 크리슈나가 오르막을 더 오르고 싶지 않아서일수도 있다)


 로지에 들어와보니 온수샤워 가능함에 얼른 샤워를 했다.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로지의 레스토랑에서 다른 네팔리와 한참을 얘기했다. 그는 영어가 능통해 내 영어가 짧아도 곧잘 이해를 하는 것이다. 크리슈나와도 안면이 있는지 둘은 서로를 한참이나 놀리며 웃어댔다. 저녁이 되니 여태 맞이했던 저녁들과는 몸의 컨디션이 다른 것이 느껴진다. 한기가 들고 근육통이 꽤 느껴진다. 핫팩, 조끼, 패딩까지 챙겨 입고 앉은 레스토랑에는 나를 비롯해 네 명의 트랙커가 있다. 따로 난방시설은 없지만 부엌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가 있어 레스토랑에는 늦게까지 사람이 있는 편이다. 모두가 수첩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기록하고 있다.


 조용한 공간에 Ed Sheeran의 One을 작게 틀어놓는다. 이내 다른 트랙커들이 웃으며 눈빛으로 인사를 보낸다.




 '건강하거나, 섬세하거나'


 이곳에서 만나는 이들은 주로 이 두 부류다. 오늘 만난 히말라야를 매년 온다고 하던 그 네덜란드 청년은 2미터 가까운 키에 가벼운 차림이 특징이었다. 그는 매년 본인이 얼마나 빠르게 이 루트를 주파할 수 있는지를 챌린지하는게 목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포터(짐꾼)를 고르는 기준도 빠른 일정소화를 1순위로 본다고. 또 이후 만난 독일 아저씨는 같은 루트를 10번 이상 돌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살면서 본 가장 추위에 내성이 강한 사람이었다. 4천 미터가 넘는 곳에서도 후리스 하나만 입고 돌아다니는 도인 같은 사람이었다. 취미로 접착제 없이 돌을 쌓아 작품을 만드는 섬세한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이렇듯 이곳을 지나는 이들은 하나같이 자연의 건강함 혹은 섬세함을 닮아있다.


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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