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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아빠 Aug 11. 2023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데...

롱텀 히말라야 산행기_11

 선잠을 잔 탓에 5시부터 일어나 이런저런 준비를 시작했다. 배낭은 두 개로 나누어 짐을 담았는데 둘 중 하나는 크리슈나 편으로 카트만두로 보내고 나는 하나의 배낭에 짐을 넣고 포카라에 이틀정도를 체류하며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른 준비를 마치고 레스토랑에 내려와 치킨수프와 홍차를 마시며 비행기의 출발여부가 나오길 기다렸다. 오전 7시에 보통 출발여부가 결정이 나고 10시까지 출발이 되지 못하면 결항되는 것이 좀솜의 비행 편이다. 바람이 강한 곳이라 그 영향이 크다.


 결국 결항.


결항될 시에는 두 가지의 대안이 있다. 버스와 지프를 이용해 포카라로 가는 것과 다음날의 비행 편을 기다리는 것. 처음에는 좀솜에 머무르는 것보다 어떻게든 이동을 고려해 보았지만 쉽게 올 수 없는 이곳에 하루를 더 머무르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시 호텔을 잡았다. 크리슈나가 오늘 2시간 정도 거리를 산책삼아 다녀오겠냐고 물었지만 오늘은 좋은 날씨 속에 밀린 빨래를 하고 싶어 괜찮다고 했다. 맑은 하늘아래 빨래를 말리니 속이 후련하다. 점심을 먹고 주변을 돌며 상점들을 구경하다 말린 코코넛을 좀 사가지고 와서 먹는다. 인터넷은 여전히 답답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몇몇 안부를 묻는다.




 네팔리들의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들의 감정을 읽어보자면 기본적으로 매우 낙천적이다. 오며 가며 나누는 인사와 외지인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묻어난다. 말투와 태도에서 겉치레가 없기 때문에 동양정서에 다소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대다수가 호의적이다. 문화적인 부분도 있고 한국인들의 예의적 행동들 때문에 그들도 호의적인 부분도 있다. 내가 느낀 명확한 부분은 트레킹 코스의 네팔리들이 확실히 더 친절하다는 것. 관광객에 대한 배려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산을 오르내리는 손님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역력하다.



  

좀솜거리


 좀솜은 그간 거친 다른 마을들에 비하면 아주 큰 규모지만 인프라는 비슷하다. 공항이 있다는 점과 포카라 등지와 접근성이 좋은 곳이지만 기본적인 생활에 있어서는 아직 불편함이 있다. 예를 들어 전력난 문제, 온수제공문제 등과 함께 미비한 도로의 포장상태 들으러 보아 실제적으로는 아주아주 더디게 발전하는 곳이라 봐야 될 것이다. 길거리에서 파는 과일들에 뽀얗게 쌓인 먼지들과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고파는 네팔리들의 삶이 단순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기엔 그리고 그것이 네팔을 찾는 이들이 자국의 오래된 향수를 느끼는 법이라고 하기엔 억지스럽다. 며칠을 이곳에 있었음에도 그러한 풍경에 쉬이 적응은 되지않는다. 비문명의 디톡스 효과가 짧다.


 마을로 흘러드는 트랙커의 수가 그렇게 많았던가 싶었지만 숙소는 만실이라 오늘은 크리슈나와 함께 방을 섰다. 다행히도 둘 다 코를 골지 않아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새벽 6시부터 크리슈나는 항공편 체크를 위해 일어나 움직인다. 비록 산행의 마무리에 들었다지만 이곳은 여전히 해발 2700미터의 고지대. 아침은 서늘하다. 눈을 비비며 양치질을 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뿔싸, 면도크림을 치약대신 썼던 것. 입안은 이리저리 몇 번을 헹궈냈지만 덕분에 입안이 시원하다. 비행편도 시원하게 열리려나.  레스토랑에 들러 야채수프와 삶은 계란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나니 크리슈나가 오늘 항공편은 결항 없이 무사할 것이라고 전해준다. 안나푸르나의 품을 떠나는 것은 시원섭섭하다.


소박한 기내식을 나눠준다


 공항은 하루 결항으로 누적된 트랙커들이 줄을 서고 있다. 가이드와 함께인 경우 조금 더 편리하게 수속적인 부분들이 처리되기 때문에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릴 수 있었다. 어제 호텔에서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바탕 소동을 벌인 러시아 단체가 가장 바빠 보인다. 이윽고 첫 번째 비행기가 이륙을 마치고 우리가 탈 두 번째 항공편이 정비를 마친 후 활주로에 멈춰 선다. 쌍발 프로펠러기로 사실 수많은 네팔 비행기 사고의 주인공이기도 한 비행기들이다. 20인승 미만의 비행기라 소음은 꽤 큰 편. 들뜬 마음과 함께 비행기는 무사히 이륙한 후 고공에서 볼 수 있는 안나푸르나의 절경을 안긴다.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제1봉 등 안나푸르나 산군 안쪽의 명봉들이 보이는 것은 이 비행의 값어치를 더한다. 30분이 못 되는 짧은 비행을 끝내고 포카라에 내렸을 때 탑승객들은 일제히 겉옷을 벚어젖혔다.


언제다시 볼수있을까 마차푸차레여

 

 야카르카에서 만난 한국인 트랙커분이 알려준 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크리슈나와 작별을 해야 하는 시간이라 그와 앉아서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비록 언어가 달라 깊은 소통은 어렵지만 며칠을 함께 했기에 그리고 그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라는 걸 알기에 내가 줄 수 있는 만큼의 팁을 줬다. 그의 이메일 주소를 받고 마지막으로 그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


 공식적으로 나의 안나푸르나 트랙킹은 여기가 끝이었다.


포카라 공항은 따스하다


 거창하게 위시리스트라는 명목에 들어갔던 이 트레킹 여정은 나에게 쌉싸름한 뒷맛을 남겨주며 끝이나게 된다. 그것은 명산이 가진 기운의 맛도, 트레킹 일정에서 벌어지는 기가 막힌 해프닝의 맛도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적 권태로움 그 자체였다. 산에서 내려와 마음은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포카라에 있었던 단 이틀만에 말이다.


산, 그곳에서 얻었던 모든 것은 그 산에 놓고 온 듯했다.


12화에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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