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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May 16. 2024

뻥 뚫린 마음

그럴 수도 있지

힘들 때면 글을 쓴다. 지난번 중간고사 전 시험공부 시작 앞에서 방황하던 나는 빵 만들기와  함께 글로 도피했었다. 빵을 만들고 빵 만들며 찍은 사진을 올리며 인스타에 베터에 글을 썼다. 빵도 아침저녁으로 만들고, 찍은 수십 장의 사진 중 열 장씩을 추리는데 시간을 한 참 쓰고 글을 쓰며 시간을 더 많이 썼다. 공부 생각으로 힘들 마음을 그곳에 메어 두었던 거 같다.


오늘 떨쳐버리고 싶었던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고서도 다시 글을 쓴다. 말할 상대가 없는 내게 글은 내 말을 들어주는 친구 같은 곳이니까. 난 이곳에서 내 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목소리 대신 양 엄지손가락으로 씀으로써. 답답한 속을 게워낸다. 이런 감정을 알게 하려고 그런 걸까.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 감정을 경험해 보라고. 시련을 빨리 경험해 보고 이런 일에 단련되라고.


교수님과 약속을 앞두고 1층 로비에서 교수님이 오시길 기다리면서 글을 썼다. 그런데 옆 사무실에서 교수님이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약속 장소가 로비가 아닌 전공사무실 옆 사무실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교수님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수업에 빠지게 된 사유로 진단서를 드리고 오늘 만든 빵을 드렸다. 진단서는 다음에 드려도 되지만 하드계열 빵은 오늘 드려야 했기에 전화드리고 만나서 얘기드릴 게 있다고 해서 잡은 약속이었다.


간단히 얘기하고 올걸 예상했는데. 이 또한 나의 생각과는 달랐다. 교수님은 내게 따뜻한 조언의 말을 건네주셨다. 그러면서 서있는 내게 앉아도 된다고 했다. 앉아서 교수님이 해주는 얘기를 공감하고 경청하며 들었다. 진정성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감사하는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면서.


완벽할 필요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쉽지 않겠지만 그러라고. 자기가 완벽해야 하는 것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었다고. 나를 보고 그런 것 같아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으셨다고 했다.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감사한 말을 난 또 어렵게 들었다. 날 생각해 주는 말에 상대가 내가 감사하고 있음을 느끼기를 바랐다. 고마워요라는 반응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연기를 하며 대화를 들었다.

조금은 어렵고 힘든 자리였다.


나는 사람과의 대화가 어렵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드러낼 자신이 없는 걸까. 아직도 착하고 좋은 사람이길 연극하는 게 몸에 배어있다. 그게 과하다. 가볍지 못하고 상대에게 더 고마움을 표현하려고 부단하게 애쓰며 그 자리에 있는다. 부자연스러운 자리를 스스로 만든다. 분명 감사해야 할 일이고 감사한데 그 대화를 나누며 집중하고 좋은 반응을 보이느라 힘든 게 더 컸다.


나의 기대 후 실망으로 돌아온 감정 그리고 나를 위해주는 대화를 나누고 와서 느낀 기록하고 가려고 학교에 남아 글을 쓴다.


이제 마무리하고 작은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나의 기분 전환제, 활기 보충제, 에너지 드링크, 감정 컨트롤러, 나의 행복 공장 가장 주요 부품인 자전거를 타고서.


나의 오늘,  내 기대의 어긋남에서 느낀 감정은 진폭이 큰 지진 같았다. 짧지만 강한 여진으로 내상이 있는 흔들림이었다.


나를 위한 대화에서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착한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마주했다. 그게 아직 내게 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

내가 힘들다. 벗고 싶다. 그런데 벗으면 무례할 것 같아 못 하겠다.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싶다. 상대에게도 무례하지 않고 나도 힘들지 않고. 더 나아가 내가 가벼울 수 있는 대화 방법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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