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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May 31. 2024

오랜만의 아이의 부름

위로와 안정

안방에서 일곱 살 아이와 같이 자다 4시 20분 알람에 깨어 부엌으로 나가 내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저녁에 설거지 한 마른 식기들을 정리하고 이불포함 빨래를 돌리고 냄비밥을 냉동실에 저장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부엌식탁에 앉아 스탠드불을 켜고 5년 다이어리 어제 날짜에 기록을 하고 플래너에 칭찬과 감사를 쓰고 b5크기의 크래프트지 일기장에 일기를 몇 줄 쓰는데 안방에서 아이 기척이 들렸다. 아이가 일어나 나왔다. 어제에 이어 이틀째. 어제는 다른 방에서 자는 애아빠에게 아이와 같이 자 달라고 했다. 오늘은 내가 들어왔다. 아이 곁에서 핸드폰으로 아침 글쓰기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콧속이 간지럽다. 눈물도 나고 재채기도 한다. 아이도 어제 코가 간지럽다고 했다. 같은 증상. 같은 코감기에 걸린 거 같다. 목도 따끔거려  따뜻한 차로 목을 축여 주었었다.


어제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서 무시를 받았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약간은 얼떨떨했다. 그리고는 무시로 넘어갔다. 그 사람의 그런 행동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하는 무시는 일 년이 넘었고 말로 티 내기는 한 두 달이 됐다. 몇 번의 무시하는 그 말들을 흘려 넘겼다. 알고 있어서 그 사람을 무시할 수 었었다. 순간에만 당황했고 당혹스러움이 들었다. 이후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리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그 공간을 나와 집으로 왔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할 생각이었다. 유치원 아이 하원 후 집에 데려다주고 나도 같이 집으로 들어왔다. 가기로 한 도서관으로 가지 않았다. 마음이 힘을 잃었다. 집중이 안 됐다. '그때그때 말하기'. 가장 가볍게 사는 방법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와 함께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을 생각했다. 느끼고도 모른 척 묻고, 아닌 척 나를 속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얘기할 수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작은 아이가 배고프다고 했다. 냉장고를 열고 먹을 걸 찾았다. 미숫가루를 타달라고 했다. 도자기 손잡이컵에 물을 먼저 따르고 미숫가루를 고봉으로 크게 두 숟가락 반을 넣고 꿀 한 스푼을 크게 떠서 넣었다. 덩어리 진 게 좋다는 아이는 미숫가루를 다 풀지 말라고 했다. 큰 덩어리만 없애면 된다고 했다. 내가 조금 섞었을 때 자기가 섞겠다고 했다. 묵직하고 덩어리 진 미숫가루를 좋아하는 일곱 살 유치원생 딸아이. 나를 닮았다. 티브이를 보고 싶다고 해서 타이머로 40분을 맞추고 넷플렉스를 보게 해 주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영어로 보았다.


그때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선 언니에게 오늘 나를 챙겨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부터 했다. 그리고 오후에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던 행동에 대해 얘기했다. 언니가 '기분 나빴지' 하며 먼저 알아주었다.

내가 기분 나빴던 감정은 백에 3,4였다면 언니는 80, 90이라고 생각하며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빴던 정도와는 상관없이 나빴었다는 그 말에 그랬으니까. 조금이지만 무시받았다는 것에 순간 당황했고 어벙벙했으니까. 사람들이 있는 자리라 티 내지 못 했으니까. 무시한 거 같아 이상한데도 말 못 했으니까. 반응 못하고 벙어리가 됐으니까. 거기에서 불편한 감정이 생겼으니까. 언니의 말에 '응'이라고 대답을 했다.

상대방의 무시에 기분 나빴던 그 부분에 대한 것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조금 나빴고 대체로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조금 나쁜 부분이 오후에 하기로 한 일정을 못하게 마음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마음에 균열이 생겼다. 그 가는 틈새로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조금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조금이 아니었다. 혼자인 시간에 그 생각이 전부가 되었다. 일상을 너뜨리고 마음을 힘들게 하는 괴물이 생겨나고 있었다.

언니의 알아차려줌이 내 속의 커져가는 괴물을 밖으로 꺼내게 해 주었다. 내 안에서 불만과 분노, 우울로 커져갔을 괴물이 언니에게 말함으로써 꺼내져 나왔다.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졌다.

언니는 친절한 카운슬러였다. 내게 필요한 말, 힘이 되는 말, 위로의 말을 해 주었다. 내가 듣기에 좋은 표현을 찾아가면서 따뜻하게 감싸듯이 해주었다.

감사한 언니와의 통화 후 일상의 끈을 잡을 힘이 생겼다. 단순히 쓰기만 하면 되는 영어 단어 쓰기 숙제부터 했다. 그것과 같이 매주 해오던 과목의 사전학습을 했다. 이 또한 매주, 한 학기동안 해오던 것이었고 쉽게 할 수 있었다. 이미 습관처럼 편한 숙제였다.

그걸 하는 동안 작은 아이는 할 게 없다며 내게 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엄마 이거 하고" 라며 내 숙제를 먼저 했다. 해야 할 숙제를 끝마치고 기다려준 아이에게 고맙다고 했다.

저녁 8시 반. 학교에서 공고로 뜬 독후감 쓰기가 생각났다. 학과 관련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응모하면 상금을 탈 수가 있다. 그걸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뜬 공고였고 어제 생각했고 어제 책을 도서관 앱으로 검색해 봤다. 숙제하며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야겠다 생각했다. 아이 자는 시간인 9시가 되기 전이었다. 아이에게 엄마와 같이 도서관에 갔다 오자고 말했다. 아이는 좋아했다.


어제저녁에 아이에게 따뜻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도서관에 혼자 가지 않고 아이에게 같이 가지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언니와의 전화통화 덕분이었다. 언니가 나를 위한 말을 많이 해주었고 마지막에 그 말도 있었다. '우리는 엄마잖아.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자.'라는 말. 내 생각밖에 못하고 있을 때 아이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너무나 당연한 엄마로서의 나를 잊고 있었다. 그걸 알게 해 줬다. 언니의 그 말이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말 덕분에 잊고 있던 아이를 생각하게 됐다. 따뜻하게 대하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숙제가 먼저였지만 그래도 아이를 생각했다. 숙제 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언니의 그 말 덕분이었다.


가까운 도서관에 자전거로 가려고 나왔다. 아파트 1층 밖을 나왔다. 비가 오고 있었다. 차로 가야 하나. 금 차 타고 가면 돌아와 주차할 곳이 없을 텐데. 비가 조금 오는데 자전거로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이에게 자전거로 갔다 오겠다고 했다. 작은 아이가 울었다. 자기를 안 데리고 갈까 봐서 인 거 같았다. "비 와서 엄마가 혼자 갈까 봐,  안 데리고 갈까 봐 우는 거야? 같이 갈 거야"라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줬다. 이 또한 언니와의 통화에서 언니가 해 준 말 '좋은 엄마가 되자'가 내 마음속 울림이 되어 가능했다.

빗방울이 가늘었다. 둘 다 모자 달린 외투를 입고 나와 자전거로 집 근처인 도서관에 갈 수 있었다. 3층 문학자료실로 곧장 올라갔다. 날 검색해 둔 책을 바로 찾았다. 책을 대출하고 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자전거에서 "도서관이 가까워 좋다"라고 말했다. 아이도 따라 말했다. 엄마의 마음이 아이의 마음이 됐다. 엄마의 안정감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건강한 엄마가 되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알려준 언니에게 감사하고 깨닫게 된 내게 감사하다.


오후의 언니와의 통화는 잘한 선택이었다. 이웃으로부터의 친절을 느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기회였다. 언니와의 통화로 불필요한 생각들을 놓을 수 있었다. 안정감을 돼 찾았다. 좋은 엄마 되기를 생각하게 됐다.

내 일상을 되찾았고 아이를 생각했고 아이와 함께했다. 아이와 함께 할 때 안정적인 건강한 엄마일 수 있었다.

그때그때 말하기를 하고 좋은 사람의 위로와 조언을 듣고 일상에 안착하고 좋은 엄마를 생각하게 한 어제 오후, 저녁나절이었다.


오늘 새벽 깬 아이의 부름에 어제의 나를 기록한다. 고마워 나의 작은 아이야. 넌 너만의 색깔이 있어. 넌 너야. 너의 무한한 세계를 그려갈 수 있게 엄만 너의 곁의 안전한 보호막으로 곁을 지켜줄게. 사랑해. 그리고 엄마와 잘 통하는 평생의 친구로 와줘서 고마워.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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