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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서 떠오르는 얼굴들

부모도 나의 부모이기 이전에 자식이었기에

by 선옥 Aug 16. 2024

자칫 내 기일이 될 뻔했던 밤을 넘긴 뒤,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은 대부분
 의식이 흐릿한 채 잠에 빠져 보내졌다.

잠결에라도 기도에 삽입된 관을 뽑을까 봐
 내 양손은 침대에 묶여 있었다.    

위급한 고비를 넘긴 뒤엔
 가족, 친척, 친구, 지인들의 면회가 이어졌다.

중환자실은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로 나뉜 30분 면회만 허용되었고
 면회 인원도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를 보러 와준 분들 중 대부분은
 중환자실 밖에서 대기만 하다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돌아가야 했다.    

입에 물린 관, 그리고 묶여 있는 손.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무언가 꼭 말하고 싶을 땐
 간호사 선생님께 손을 가리키며 풀어달라 부탁했고,
 부모님이 챙겨둔 작은 수첩에
 조심조심 글씨를 써서
 의료진이나 부모님께 내 마음을 전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이 떠올랐다.

어릴 적 과외를 해주시던 선생님,
 기타 치며 노래하던 유쾌한 성당 신부님,
 어린 시절 좋아했던 소녀,
 반 친구들,
 그리고 늘 웃으며 인사해주시던 이웃집 아저씨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던 건
 단연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땐 몰랐다.
 이 병원 생활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은.

곧 퇴원해
 다시 학교로,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래서 부모님께 간곡히 부탁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제가 아프다는 걸 말하지 말아 주세요.”


부모님께 “절대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던 건
 그저 ‘걱정하실까 봐’가 아니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아픈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분들이 손주 걱정에
 밤잠 못 이루고,
 밥숟가락조차 들지 못하실까 봐.

그 상상이 더 아팠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6개월이 지나서야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큰아버지를 통해 전해 들으셨다.

나와 동생을 유독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의 품이 생각난다.
 참 따뜻했다.

부모님과 함께 시골 할머니 댁에 가던 날이면,
 늦은 밤이건 새벽이건
 두 분은 늘 거실에서
 잠도 들지 않은 채 TV를 보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대문은 늘 잠기지 않았고,
 우리가 들어서면
 할머니는 활짝 웃음을 보이며
 내 뺨과 손을 잡아주셨다.

그 손은
 주름이 질 대로 진,
 차고 거칠고 굳은살이 박힌 손이었다.

그럼에도
 세상 그 어떤 손보다
 따뜻했다.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를
 유독 따르던 나와 동생이
 안부 전화도 없고 찾아뵙지도 않자

두 분은 혹시
 부모님이 크게 싸워
 이혼이라도 한 건 아닌가
 속으로 걱정만 하셨다고 한다.

그 걱정에 선뜻
 전화 한 통도 하지 못하셨다고.    


그리고 먼 훗날,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의 형님이신 큰아버지께서 조부모께 이야기를 하신 뒤,
 아버지는 당신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내 병원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전하셨다고 한다.

“자식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부모에게 꺼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되더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주 담담하게, 지난 일을 떠올리며.

하지만 이제서야 나는 조금 알겠다.
 그날, 그 전화기 너머에서
 아버지는 분명 울고 계셨을 것이다.    

그땐 몰랐다.

엄마, 아빠도
 내게 부모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자식이었다는 걸.

아픈 자식을 둔 부모는
 본인까지 무너지면 안 되기에
 내 앞에서는 괜찮은 척
 매일을 견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얼마나 힘들고,
 불안하고,
 무서웠을까.

그저
 자신의 부모에게 기대어
 실컷 울고 싶었을 텐데…

그 시간을
 서로 짊어지고 묵묵히 버텨낸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어쩌면,
 중환자실을 견디며 살아남은 건
 나만이 아니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눈물도, 두려움도, 절망도
 꾹꾹 눌러 삼키며
 그 시간들을 함께 버텨낸

부모님도
 같이 살아남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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