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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해주신 요리 맛없어서 못 먹겠어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by 선옥

나의 아버지는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다. 옳고 그름보다는 본인의 의견이 우선이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치부한다. 거기에 더해 버럭 화를 내며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안타까운 면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아버지와 나의 사이가 몹시 안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보통의 부자지간보다는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느낀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버지는 점점 아이 같아 지시 지만 그 안에는 꼰대 같은 고집과 동시에 애 같은 순수함이 섞여 있고, 그런 모습들 속에서 배울 점을 발견한다. 결국 아버지라는 존재가 내게 주는 힘은 분명하다.


아버지의 여러 모습 중 오늘은 본인이 스스로 “다정하다”라고 자부하는 집안일, 그중에서도 요리에 대해 써보려 한다.


아버지는 지난 28년간 밥조차 지을 줄 모르셨고, 요리라곤 전혀 할 줄 모르셨다. 가부장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요리를 못했기 때문에 안 하셨던 것 같다. (여행을 가면 라면을 끓여주시거나 고기를 구워주시곤 했는데, 그마저도 맛있진 않았다.) 어린 시절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우리 형제를 데리고 주말마다 놀러 다니시곤 했고, 항상 집안을 깔끔하게 청소해 놓으셨다.


겉으로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그렇지 사실은 다정한 아버지께서 내게 해준 요리는 라면뿐인걸 보면 안 하신 게 아니라 정말 못하셨던 거다.


‘뭐든 하다 보면 늘고, 잘하게 되는 거지’라는 말이 있지만, 아버지의 요리 실력 앞에서는 그 말이 무색해진다.

정년퇴직 후 아버지는 요리학원에 등록하셨다. 본인 말씀으로는 훗날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혼자 살게 될 때를 대비해 요리를 배운다고 하셨다.


물론 그런 목적도 있겠지만, 사실은 요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본인의 실력으론 배워야 할 수 있다는 걸 잘 아시기에 학원에 등록하셨을 것이다.


‘뭐 얼마나 하시겠어.’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예상보다 훨씬 열정적으로 다니셨다. 그리고 학원에서 직접 만든 요리를 가져오셨는데, 놀랍게도 그 요리가 꽤 맛있었다. 아니, 생각보다 맛있다가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순간, 아버지에게 요리에 재능이 있는 건가 싶었다.


학원을 그만두신 후에도 아버지는 집에서 종종 요리를 하셨다. 유튜브를 보며 다양한 시도를 하셨는데, 학원에서 만든 음식만큼은 아니더라도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하지만 문제는, 요리 실력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떨어졌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아버지가 끓여주신 찌개를 먹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아버지는 원래 비린내에 매우 예민하셔서 해산물 요리에 아주 조금의 비린맛도 느껴지면 아예 숟가락도 들지 않으셨고, 나나 어머니, 혹은 식당에서 나온 요리가 본인 입맛에 조금이라도 맛없으면 반찬 투정을 부리곤 하셨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끓인 고추장돼지찌개에서 돼지 잡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된장과 고추장이 따로 놀아 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이 맛없는 요리는 맛있다며 감탄을 자아내며 드시고 계신다.


남들이 한 요리에 대해서는 그렇게 냉혹한 평가를 내리던 분이, 이 느끼하고 토 나올 정도의 음식을 두고 맛있다며 드신다니, 도대체 무슨 심리인지 알 수 없다.


요리를 한번 하면 또 양껏 하시는 아버지의 남은 요리를 나는 꾸역꾸역 먹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못 먹겠다 싶어 손을 놓았다.


아버지는 연거푸 자신의 요리 실력에 감탄하며 내게 더 먹으라 하셨지만 차마 “맛없어서 더 못 먹겠어요”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대신 “여기에 소금을 조금 넣으면 어떨까요?”, “여기엔 이 재료를 넣어도 맛있을 거 같아요”라고 돌려 말해봤다. 그러나 아버지는 늘 “된장으로만 간을 해야지 소금을 넣으면 안 돼”, “그 재료를 넣으면 오히려 맛을 망쳐”라며 본인의 방법만이 옳다고 주장하신다.


아버지가 해주신 요리를 먹을 때마다 "아빠, 정말 맛없어서 먹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분명 삐치셔서 “그럼 넌 먹지 마. 나 혼자 먹을 거야”라며 화를 내실 게 뻔하다.

게다가 “내 요리는 맛있는데 넌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 내가 한 건 다 맛없다고 하냐”라고 하실 것이기에

오늘도 토 나오는 찌개를 억지로 삼키며 나는 아버지께 “나중에 요리대회 나가보세요. 맛있네요.”라고 말했다.


속마음은 “전문가에게 가서 당신 요리가 맛없다는 걸 꼭 들으셨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가 손자에게 요리를 해주실 상황을 상상해 본다. 아마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빌 것이다. 제발 사서 먹거나 어머니께서만 요리를 해주시기를.


음식은 단순한 끼니를 넘어,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매개체라 생각한다. 맛뿐만 아니라 그때의 상황과 감정까지도 함께 떠올리게 해주는 힘이 있다.


먼 훗날, 아버지가 내 곁에 없고 아버지가 그리워질 때 나는 이 맛없는 음식이 그리워질 때가 올까.

맛없던 미각은 흐릿해지고 서툰 요리솜씨로 나를 위해 해주셨던 아버지의 마음만이 내 가슴속에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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