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책을 받는 날이었다. 인쇄소에서 택배로 보내기엔 책 양이 너무 많아서 비용을 지불할 테니 다마스 용달을 써서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이다. 용달 기사님이 처음에 전달받은 것도 없고 허리가 아파서 아예 못 올려준다고 하시길래, 기사님이 우선 인쇄소랑 얘기해 보고 해 주실 수 있는 만큼만 해주시고 정 안 되겠으면 1층에 놔달라고 부탁드렸다.
몇 분 후, 그 기사님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허리 아프다고 하셨잖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라도 알아서 옮길게요. 인쇄소 쪽에는 3증까지 올려 주셨다고 할 테니까 그냥 두고 가셔요."라고 했다. 그런데 기사님이 인쇄소에서 돈 더 주기로 했다면서, 돈 더 받으면 된다고, 아가씨 혼자서 이거 못 한다고 말씀하시더니 갑자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가 왔는데 방금 다 올려놨다고 말씀하시면서 강아지가 엄청 짖는다고 하시길래, 집에 있는 날이었으면 같이 옮겼을 텐데 하필 오늘 출근하느라 집에 없어서 못 도와 드렸다고, 낮부터 힘든 일 하시게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고 죄송하다고 했더니 집 계단에 올라가서 둘러보니 참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예쁘다고 하셨다. 나도 딸이 둘 있는데 둘 다 어릴 때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었고, 그 이후에 공황장애가 와서 지금 한 명은 마흔이 넘었고 한 명은 서른이 다 되어 가는데도 둘 다 집에만 있다고 했다.
딸들이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서 이렇게 열심히 사는 아가씨들 보면 참 너무 예뻐 보인다고 하셨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마음이 고단해서 한동안 집에만 있다가 책을 썼는데 다행히 잘 돼서 이번에 이렇게 많이 주문한 거라고 했더니 책에 대해서 궁금해하셨다.
그래서 오늘 기사님께 감사하다고, 약소하지만 책 한 권 보내 드리겠다고 했더니 극구 사양하시면서 배송한 박스 안에 만원 넣어두고 갈 테니 한 권만 가져가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오늘 이렇게 좋은 책을 배달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도 해주셨다.
집에 도착하니 박스 사이에 만 원 한 장이 꽂혀있었다. 빳빳한 새 만 원. 만 원을 접고 또 접어서 지갑 안에 넣었다. 무거워서 잘 들고 다니지 않던 지갑을 매일 가지고 다니게 됐다. 반갑지 않은 감정이 나를 방해할 때 늘 꺼내보려고. 가까이에 두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