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비상이 터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모든 게 엉망이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잘잘못을 따지다 보니 내가 잘못한 것이 있었다. 복직한 후 평탄하게 흘러가던 삶에 갑자기 무거운 돌이 위에서 떨어진 느낌이다. 앞으로 갈 수도, 옆으로 빠질 수도 없이 그냥 짓눌릴 수밖에.
문득, 사태의 심각성을 보다 그냥 내가 혼자 책임을 지는 게 어떨까 싶었다. 나는 혼자이고, 책임질 가족이 없다. 나 혼자 책임진다 하고 사표를 쓴다면, 혼자 희생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자 팀원들은 손사레를 쳤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모두 일단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이렇게 괴로워 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내일 다시 와서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집에 들어가니 잠이 오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책임져야 하면 어쩌지?'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다. 나 혼자 책임을 지는게 어떨까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내가 책임을 지면 한 명만 희생하면 될 일 아닐까. 나 혼자 아프면 된다. 그렇지만… 나의 미래가 걱정 되기도 하였다. 이제서야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이제는 ‘암환자’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사회인’이 되었다. 그 모든 게 무너질까 두렵다.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두렵다. 밤잠을 설쳤다.
겨우 잠시 선잠에 들었다. 꿈을 꾸었다. 운행 중인 차에 큰 돌이 떨어져서 유리창이 깨지고 다치는 내용. 나는 가만히 안전 운행 중인데 날아온 돌에 차 유리가 부숴지는 꿈. 아이와 가족이 있는 팀장님이 피해를 받을까 봐 불안해하는 나의 마음이 투영된걸까? 가만히 있는 나에게 날아온 돌에 부숴진 유리조각에 베인 나. 아프다.
불안한 마음이 가득한 채 출근했다. 팀장님은 나에게 말했다. "더 어려운 일도 겪었으니 사람들이 우리를 욕하고 매몰차게 굴어도 버텨낼 수 있죠?" 그렇다. 죽다가 살아 돌아온 내가 못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 혼자만 온전히 아프면 되었던 투병과 이것은 달랐다. 나만 아픈 게 아니라 여러 명이 같이 힘들다.
매우 심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어떻게든 지금 당장은 해결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눈 도마 위에 올랐다. 나를 향한 뒷담화를 들었다. 나는 하루 종일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먹지 못하고 일을 해결했다. 이렇게 하다간 진짜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온 정신이 이것에 매몰되었다. 너무 불안하고 걱정이 가득했다.
그때 카톡 하나를 보았다. 부고장이었다.
그는 같이 투병 생활을 하다가 만난 내 또래 청년이었다. 나보다 겨우 한 살이 많았지만, 훨씬 더 어려운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 그가 격리실에 입원했다고 카톡을 보냈다. 많이 아프니 기도를 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다 같이 기도를 하고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는 며칠 뒤에 병원을 나왔다. 우리 모두 그가 빨리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며칠 동안 그가 괜찮은 줄 알았다. 그는 걱정 말라고, 여러분 덕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온 그의 카톡은 그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젊은 그의 얼굴이 있는 부고장이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의 부고장을 보자마자 하던 일을 멈췄다. 떨어지는 눈물을 감추려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지금 회사에서의 긴급한 사항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단 며칠 만에 그는 따뜻한 카톡을 보내던 이에서 이제 차갑게 답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다시는 그와 이야기할 수 없다. 며칠간 연락이 안 된 것은 그가 온전히 혼자 아파했던 것이다. 우리는 알 길이 없었다. 단지 며칠 사이에 사라진 그의 따뜻한 온기가 우리에게는 큰 충격이었다.그리고 그를 위해 한참을 울었다. 진심으로 아파했다. 그가 고통 없이 떠났기를 바랐다. 한참을 울다 자리로 왔다.
현실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밀린 업무와 짜증 섞인 사람들의 대화 소리.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리 아등바등 사는 걸까? 아무리 급하고 심각한 일이라도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할 텐데. 나는 생각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에도 모자란다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지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나중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는 거라고.
미래를 위해 참고 있는 나를 한참을 돌아봤다.
나는 죽다가 살아왔지만, 왜 다시 죽어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