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암 생존자 상

by 이유

한 해의 마무리를 하는 12월이 다가온다. 회사 또한 한 해의 성과를 기반으로 인사 평가가 진행되었다. 일 년간의 나의 업적과 성과를 정성껏 쓴다. 그리고 그것을 높은 분들이 2차, 3차에 걸쳐서 평가한다. 그렇게 최종 한 해 동안의 나의 성과는 숫자로 나타난다. 그리고 윗사람들이 매긴 그 숫자는 차갑게 모니터에 새겨진다.


예전에 채용 결과를 기다리다가 회사에서 온 '채용 결과' 메일을 열었을 때가 생각났다. 메일 제목에는 몇 달간의 서류, 인적성, 면접 등의 절차를 거친 나의 합격 불합격 여부가 적혀 있었다. 수많은 '아쉽게도 채용 전형에 불합격하였지만 지원자의 미래를 응원합니다'라는 뻔한 이메일. 지원자의 역량이 출중하나 아쉽게도 이번에는 합격하지 못했다는 그런 말들. 아니, 역량이 출중하고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들면 도대체 왜 안 뽑는 건데? 어린 나의 취준생 때는 그런 불만이 가득했다. 간절했던 취준생 시절의 나는 불합격을 볼 때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자책했고, 아니면 그들에게 뭔가 음모가 있을 거라고 각종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어느새 회사에 조금은 적응한 5년 차가 넘은 시점이 되니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정해진 자리 속에서 다양한 정량적·정성적 평가와 알 수 없는 개입 등이 작용했을 거고, 감정적으로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 것을. 인사평가도 비슷하다. '인사 평가 결과'라는 메일 제목을 누르고 조회 화면을 들어가면, 나의 1년간의 성과에 대한 결과가 공개되었다. 그 이메일이 왔을 무렵 사무실은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적막이 흘렀다.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다. 모니터를 보며 웃는 이, 불만인 이, 개의치 않아 하는 이.


나는 개의치 않아 하는 이였다. 나는 올해 복직해서 1년의 절반만 일했으니 평가가 좋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복직 한 이후에 힘겹게 적응하고, 주말에 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어도 말이다. 그들은 개의치 않았을 거고 열심히 1년간 일 한 이들과 '형평성'을 위해서 좋게 주지는 않았을 거다. 적당히 나와도 나는 만족이었다. 설령 최악의 평가를 받아도 나는 만족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단순히 '출근'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전쟁이었음을 모르니까 말이다.


나의 평가가 숫자나 알파벳으로 평가되는 곳이 회사이다. 평가를 하는 많은 윗사람들 중에 나처럼 20대에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이 있을까? 물론, 모든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것은 나의 오만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암이라는 무거움과 두려움 속에 몇 년을 지내다 온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내 신체의 일부가 사라지고 그것은 또한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사라진 몸의 일부를 꿰매고 정상적인 작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위해 온몸에 '고위험약품'이라 적힌 항암제가 몸속에 흘렀던 시간들. 그것들을 다 견뎌내고 집 속에 칩거 생활을 하고 매일 죽음을 앞둔 이들 속에서 있다가 사회에 이제 적응해 나가는 것은 나만 알 수 있다. 그들은 나의 아픔과 슬픔을 모른다.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 가족조차도 말이다.


회사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평가하지 않는다. 철저히 숫자로만 평가하니 말이다. 올해 내가 얼마나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었고, 회사에 얼마나 돈을 아꼈는지, 이러한 숫자들 말이다. 그런데 나의 평가 결과는 단순히 '숫자'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연말이 되면 각종 시상식들이 열린다. 연예인들에게는 신인상, 배우들에게는 연기 대상, 예능 대상, 크리에이터들에게도 올해의 상 등 각종 수상식들이 열린다. 그런데 왜 암 생존자들을 위한 시상식은 없을까? 올해의 암 생존자 상, 이런 거 말이다.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상. 인기투표니, 심사위원들의 투표, 창의성, 작품성, 이런 복잡한 거 말고 말이다. 그냥 살아있어 줘서 매우 잘했다고 수상하는 상 말이다. '


올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있다. 나는 살아있기 때문에 '올해의 생존상'을 줄 만하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살아 돌아와 사회의 일원으로 버티고 있는 것 말이다. 항암 주사실의 침대에 누워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항암제를 바라보면서 미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20대가 평범한 그 나이대의 직장인이 다시 되는 것 말이다. 이러한 것들을 사람들은 알 수 없다. 살아 돌아와서 1인분까지는 아니더라도 0.5인분만 해는 나에게 '생존상'을 주고 싶다.


암 생존자들에게도 이런 상이 있으면 좋겠다. '살아줘서 고마워 상', '병원에서 나와서 회사로 나와줘서 잘했어 상', '출퇴근 잘 버텼어 상' 등등.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닌, 이 세상 모든 암 생존자들에게 하나하나 상을 직접 주고 싶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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