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에서 많은 선택을 한다. "오늘 점심으로 뭐 먹지?"라는 작고 가벼운 선택부터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크고 무거운 결정까지,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한다.
암 생존자로서 나의 선택은 여러 가지였다. 어느 병원에서 진료를 볼 것인지, 수술은 어느 의사에게 받을 것인지, 항암 치료는 어느 의사에게 받을 것인지, 추적관찰은 어느 병원에서 할 것인지 등 말이다.
큰 아픔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선택에 좀 더 신중해진다. 나 또한 지금 그 선택의 기로에 있다. 삶에서 내가 무얼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암 진단부터 수술, 항암치료가 어느덧 끝나고 나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은 큰 선택이었다. 병원에서 나눠주는 안내 책자를 보면 암 환자들이 직장에 복귀하거나 일을 시작하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도 한다. 병원에서의 단절된 삶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생활는 것을 장려한다.
나 또한 이제 어느 정도 몸이 괜찮아졌으니 그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당장 먹고살기 위해서는 경제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내 한 몸 건사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솔직히 병원 안내 책자에서 말하는 '사회생활의 중요성'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모르겠다. 돈이 있어야 먹고살 수 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평생 요양하며 쉬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은 풍요로운 자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찌 되었든 나는 일을 다시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원래 다니던 회사로 복직을 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일을 찾느냐였다. 정말 감사하게도 아프기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나를 자르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회사에 휴직 인원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내가 복직할 수 있는 상태였다. 2년이 넘는 아주 긴 시간 동안 나를 자르지 않고 휴직하며 기다려 준 고마운 회사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그 회사를 다니며 아팠다. "내가 이래서 암에 걸렸나?"라는 생각을 할 때, 나는 회사에 다니며 받은 수많은 스트레스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는 지방에 있는 한 제조업 회사에 다녔다. 방진과 화학물질이 범벅인 그 회사에서 나는 일을 했다. 회사의 제도에 나는 한 번 크게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당연히 어디에나 있듯이 나를 스트레스 주고 힘들게 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주말마다 울고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내 몸에 나쁜 음식들을 주입했다. 야근과 주말 근무도 많았다. 그렇게 내 몸을 갈아 넣으며 일하느라 내 몸이 아픈 건 아니었을까.
그런데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그것들이 미화된 것 같았다. 회사에 다닌 시간 동안 나는 많이 아팠고,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 몸을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그런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느냐 마느냐는 나의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복직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내 주변 2030 암 경험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복에 겨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정말 길어도 1년 정도 휴직을 시켜주지, 2년 넘게 휴직을 시켜주는 회사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한들 무급으로 그들이 알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나는 감사하게도 내 회사에서 질병 휴직이어서 기본급의 일부인 매달 백만 원 정도의 급여가 나왔다. 그 돈으로 병원비도 냈다.
그리고 많은 내 또래 암 경험자 친구들은 돌아갈 회사가 없었기에 재취업을 해야 했다. 재취업을 하기 위해 지원서를 낼 때 1~2년의 빈 경력란에 대해 말하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특히 젊은 또래의 친구들은 그 공란의 이유를 밝히기가 두렵다. "제가 암에 걸려서 수술하고 치료하느라 쉬었어요"라고 말할 때 면접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일단 아프다는 것에서 멈칫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공란을 설명한 이후에도 그들은 이 아픈 사람을 고용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굳이 건강한 사람이 차고 넘치는 채용 시장에서 몇 년 동안 아팠던 젊은 직원을 채용해야 할 의무가 없다. 건강하고 열정 넘치는 젊은 직원이 시장에 많기 때문이다.
내 또래의 암 생존자들을 만나면 아픈 시점에 다니던 회사나 직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과, 아프기 전에 다녔던 일을 어쩔 수 없이 다시 선택하는 두 부류를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좀 더 용감한 선택이 되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큰 용기와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용감하고 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사실은 원래 다니던 직장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휴직 기간 동안 다른 직업을 찾아보고 또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정말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 생활이 가장 마음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랜서의 삶을 시도해 보았다. 프리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정해놓고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노동을 하지 않으면 돈이 벌리지 않는다. '휴가'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몸이 아파서 일을 몇 시간 못 하면 딱 그만큼 돈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항상 영업을 다녀야 하고 일감을 물어와야 한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일이 쌓이는 직장인과는 반대이다. 내 책상이 없는 프리랜서의 삶이란 나에게는 너무나 불안했다.
또한 프리랜서는 자영업과도 비슷해서 정말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이는 나에게 사람 스트레스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로 살기에 대단한 재능도 없었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없었다. 내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기 전에 생각했던 '이 놈의 회사 때려치우고 만다'라고 생각을 했지만, 단발성 프리랜서 업무를 시도해 보던 내가 복직하고 나서 '안정적인 직장'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내 책상이 있고, 내 이름이 붙어 있는 캐비닛이 있으며, 각종 업무에 필요한 컴퓨터와 모니터가 제공된다. 그리고 또 가만히 앉아있으면 일이 떨어진다. 그 일을 하다가 어려우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그리고 소속감을 주는 동료들이 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회사에 복직하기로 '선택'했다. 복직하고 어느새 6개월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모든 것에 감사했다. 나를 환영해 주는 동료들, 그리고 내 자리가 있는 것, 월급날 들어오는 급여.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9시간 넘게 앉아 있는 날이 반복되다 보니, 내가 이렇게 남은 30여 년 동안 하루 9시간 이상을 나에게 크게 상관이 없는 일들을 해내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일을 내 일처럼 하라는 말이 있지만, 예전에 열정이 넘치던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했을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러한 것을 잘 모르겠다. 회사가 돈을 잘 벌면 나에게 도움이 될까? 그리고 점점 6개월이 지나다 보니 나에게 처음에 따뜻하고 배려가 넘치던 시선들이 일을 하나씩 더 주려는 분위기가 되어갔다. 나는 일을 이만큼만 하고 싶은데 점점 더 일이 불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건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게 맞는 것일까? 다른 회사로 간다고 이게 해결될까? 프리랜서나 다른 직업을 하는 게 맞을까? 당장의 나의 미래보다 10년 뒤를 생각한다면 지금 그대로 버티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찌되었던 회사의 크고 작은 복지들이 내가 나오는 순간 사라지는 것인데? 근데 그런 작은 것을 바라다가 또 내가 다시 아프면 어떻하지? 10년 뒤를 생각해서 지금의 내가 이렇게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게 맞는걸까? 나가면 후회할까? 안 나가면 후회할까? 나는 복에 겨운 고민을 하는 걸까? 아니 내 고민인데 누가 복에 겨운 고민이라도 한들 그들은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걸...
나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은 어쩌면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일까? 내가 복에 겨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