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복직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암환자에서 직장인으로 복직한지 말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던가.
아침 6시에 눈을 뜨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고,
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면 쏟아져 나오는 인파에 휩쓸려
회사 건물까지 발걸음을 재촉한다.
사원증을 찍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피곤함이 밀려와 따뜻한 물 한 잔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서 밀린 이메일을 본다.
가장 먼저 나오는 건 한숨이다.
복직 후 여섯 달.
봄바람이 불던 5월의 공기는
뜨겁고 습한 여름을 지나
이제 차가운 가을이 되었다.
그 사이,
출근길에 과호흡이 와서 내리던 날이 줄었고,
사람들 사이에 서 있어도 어지럽지 않게 되었다.
그건 분명 ‘적응’이라 부를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적응할수록 마음은 더 피곤해졌다.
복직 첫 달엔 매일 예쁜 옷을 입고 출근했다.
몇 년간 옷장에 걸어두기만 했던 원피스들.
‘언젠가 입겠지’ 하고 미뤘던 옷들을
하루하루 꺼내 입었다.
직장 동료들이 물었다.
“첫날이라 그렇게 입은 거예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평생 못 입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마디에 담긴 뜻을
아마 모두가 다 이해한 건 아니었겠지만.
그렇게 한 달 동안
분홍색, 노란색, 파란색…
형형색색의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회사에선 반바지에 티셔츠도 허용됐지만,
그땐 ‘살아있다는 증거’를 입고 싶었다.
하지만 여름이 깊어지자,
출퇴근길의 더위가 모든 걸 녹여버렸다.
결국 한껏 꾸미던 나는 청바지와 티셔츠 팀에 합류했다.
그래도 그 한 달은, 내게 소중했다.
다시 삶이라는 무대에 선 배우처럼
빛났으니까 말이다.
복직 후엔 ‘앉아있는 일’이 힘들었다.
하루 여덟 시간 내내 꼼짝없이 앉아 있는 동안
근육은 빠지고, 몸은 무거워졌다.
복직 전 몇 달 동안
필라테스, 플라잉요가, 등산, 헬스장까지
몸을 다시 만들려고 애썼는데
회사라는 공간은 그 모든 노력을
한순간에 지워버렸다.
사람들과 마주하고, 눈치를 보고,
누가 말을 걸면 생각을 쥐어짜서 대답해야 했다.
그런 시간이 쌓이자
나는 점점 지쳐갔다.
몸보다 마음이 더 피로해졌다.
얼마 전, 반가운 얼굴을 마주쳤다.
다른 부서의 비슷한 암을 생존중인 팀장님이셨다.
항암치료 중이라 늘 모자를 쓰고 다니셨던 분.
이제는 모자를 벗고 새로 자란 머리를 보여주셨다.
그 순간, 왠지 울컥했다.
‘우리 둘 다, 다시 적응하고 있구나.‘
요즘 인터넷을 보면
모두가 앞서 나가는 것 같다.
마라톤, 자기계발, 결혼, 육아…
끝없이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나는 아직 숨을 고르고 있다.
나의 휴직이라는 공백은,
남들이 말하는 ‘쉼’이 아니었다.
그건 매일이 전쟁이었다.
살아내기 위한, 조용하지만 치열한 싸움이었다.
복직 전의 나는 열정적이었다.
밤을 새워 결과물을 만들고,
회사를 위해 내 시간을 갈아 넣었다.
그때의 나는 불타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저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이다.
그게 내 최선이다.
얼마 전 인사평가를 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스스로를 평가하라”는 말이 참 어렵게 들렸다.
복직 초기, 나는 배려를 받아 쉬운 일을 맡았다.
하지만 나에게 ‘쉬운 일’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3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지 않았던 몸이
다시 보고서를 쓰고 데이터를 보는 건
생각보다 훨씬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지니
업무가 하나 둘 늘어났다.
그리고 그 무게는 다시 내 몸을 짓눌렀다.
9월 말, 긴 추석연휴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복통이 찾아왔다.
평소처럼 핫팩을 대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혈압이 떨어지고, 손이 차가워졌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다.
이렇게 있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아 조퇴를 하기로 했다.
조퇴 결재를 올리고 짐을 챙기러 내 자리에 갔는데
몸을 앞으로 숙이는 순간 힘이 빠져 쓰러졌다.
호흡이 가쁘고 몸에 힘이 빠졌다.
나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달려왔다.
부축받아 건물 밖으로 나가고,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날, 하루 종일 울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왜 또 이렇게 아픈 걸까.’
회사와 일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무리하지 말라”는 말은
위로 같지만, 사실 그 말조차 부담이었다.
무리하지 말라면 일을 덜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기대하지 말라면 시선을 거두면 좋지 않을까.
나는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너무 힘들고,
모든 게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다.
일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세상은 참 억울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버틴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건 놓아버리기에 현실을 살아갈 수 없다.
사는거란 무엇일까?
이렇게 힘든 건 버텨내야 하는걸까?
그럼에도, 나는 또 버티겠지만 말이다.
부서 사람들은 말한다.
“운동하세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왠지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의 말처럼 들린다.
나는 안다.
이게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몸이 아니라,
마음이 지쳐 있다는 걸.
그래도, 나는 내일도 출근한다.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사이에 서서
그저 살아 있는 몸으로 회사에 간다.
그리고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다.
오늘도, 살아있기 때문에.
암환자에서 직장인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나는 ‘적응 중’이다.
#복직일기 #암생존자 #직장인의삶 #버티는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