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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탸탸리코 Jul 18. 2023

무 지성 사랑이야기

사랑 따윈 난 몰라

언니는 21살 때 만난 사람과 알콩달콩 10년의 연애 후 결혼 했다.


나는 언니와 인생의 전반적인 부분을 같이 해왔기에 그녀의 결혼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결혼의 '결'자만 얘기를 해도 눈물이 나왔다

눈물범벅이 아니라 그냥 눈이 빨개지며 고이면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로맨스물의 비련 한 여주인공처럼 가슴 아파했다

(언니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본가에 걸어서 3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언니가 나에게 고한 헤어짐은 생각보다 가슴이 아팠다

(언니는 나에게 헤어짐을 얘기한 적이 없다 그녀는 그저 본인의 미래 계획을 얘기했을 뿐이다)

그 계획 안에 내가 없다는 게 슬펐다 언니랑 형부가 결혼하는데 내가 그 계획 안에 있는 게 더 웃기는 일임에도 서운해했다.


언니의 연애는 아름다웠다

10년이란 긴 연애동안 그들은 큰소리 내며 싸운 적도 서로에게 질려 얼굴을 보지 않았던 적도 없었다

(진짜 둘의 얘기는 둘만 알겠지만)

언니와 형부는 사랑하기 바빴다

항상 서로에게 선을 넘지 않고,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땐 조율하고, 누군가 힘든 일이 있거나 지쳤을 땐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나의 혈육이 누군가를 만나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나는 연애 한번 하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며 그냥 지냈다.



나는 연애에 대해 무지하며 대면대면하다


20대 초반, 친구들이 한두 명씩 연애를 시작할 땐 나도 연애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남들 다 하는 연애 해보고 싶었고,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반복되는 연애사에 솔직히 질리기도 하고 시시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들었던 연애의 이야기는 대부분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일어났던 이야기가 주였기에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끝날일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원치 않은 삼각관계에 종종 갇혀보니 정말 힘들었다.

(삼각관계라고 해서 둘 사이에 누군가가 껴든 게 아니라 셋이 있는데, 둘이 사귀면서 일어난 삼각관계였다)


미팅을 나가도 봤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처음 미팅을 나갔을 땐, 나보다 나이가 한두 살 많았던 사람도 있었는데 흔히 말하는 '오빠'라는 콘셉트에 잡아 먹힌 사람 같았다

22살이었던 내가 봐도 허세가 심해보이는 사람들만 나와있으니, 결과는 처참했다.

술을 먹고 2차로 노래방을 가기로 했는데 노래방안까지 들어갔다가 집에 빨리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뛰쳐나왔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들도 나에겐 관심이 없었는지 딱히 말리진 않았다)

별로였던 미팅의 기억은 '진짜 미팅 나가서 남자친구 사귀는 거 다 거짓말 맞는구나'를 증명했다

그 이후에 미팅이 멈췄냐 하면 아니다 3, 4학년땐 더 나갔다.


여러 번의 미팅에도 난 남자친구 없이 지냈다

일단 미팅에 나가는 목적조차 새로운 사람 만나서 노는 거였기에 잘 보일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서로 잘 보일 생각이 없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상대방도.


대학생땐 연애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없던 척을 하면 했지 없진 않았다 그러니 그렇게 미팅을 나갔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남들 다 있는 거 나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연애를 상상하면 좋은 것보단 힘든 것 싫은 것부터 먼저 생각했다

사람이 사랑을 할 때 상대방과의 마음의 크기가 비슷해지는 건 어렵다고 했다

항상 누군가가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사실인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건 좋고 행복한 일인데, 내가 상대방을 더 사랑하는 건 창피하고 부끄럽고 슬픈 일이라고 한다.


언젠가 언니네집에서 친구들과 놀 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돌아가면서 대답을 했던 적이 있다

난 그때 사랑은 더럽고 치사한 거라고 했다

지금은 정정하고 싶다 사랑이 더럽고 치사한 게 아니라 사람이 더럽고 치사한 거였다.


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없이 만나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실 지금도 이해는 안된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

그저 그런 호감의 정도로 혹은 상대방이 날 좋아한다고 해서 만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근데 이렇게 생각하면 절대 사람을 만날 수 없다

내가 말하면서도 웃기고 어이가 없다

감정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개도 있고 걸도 있고 윷도 있는 거였다.


이런 생각으로 20대를 연애 없이 그냥 보냈다

연애 없이 보낸 20대는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연애를 하지 않았기에 연애 있는 삶의 재미를 알지 못한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이성을 아예 만나지 않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만나는 봤다 근데 감흥이 없었다)


좋아했던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꽤나 긴 시간 한 사람을 좋아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6년은 좋아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그와 딱히 뭘 한건 아니다

자주 만나서 논 것도 아니고 그냥 연락만 열심히 했다

그래서 고백도 해보았다.


고백은 아마 대학교 4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만나서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 카카오톡으로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더군다나 마침 걔가 동네에 없었다 천만다행이다)

장문의 문자를 보낼 땐 실수할까 봐 어딘가에 열심히 적고 새벽에 두근거리며 보낸 기억이 있다

문자를 보내고도 쉽사리 잠에 못 들고 친구들에게 연락했던 것이 기억난다

고백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너를 좋아하고 있고, 너에 대한 마음이 계속 커져 주체할 수 없어 말한다

너를 좋아한다고 해서 사귀자 이런 것이 아니니

그냥 누군가가 너를 이만큼 좋아하고 있고, 응원하고 있다

그러니 너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할 때 누군가가 너를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잘 나아가라


벌써 5년 전의 내용이기에 정확한 것은 기억이 안 나지만 고백보단 응원의 글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에게서 온 답장은 굉장히 당황하고 간결한 문자였다

자기는 전혀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으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고맙다 하지만 친구를 잃고 싶진 않다는 어디서든 볼법한 내용의 글이었고, 나도 그에 맞춰 우리 사이가 변하는 건 싫다 예전처럼 지내자 라며 답하며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있던 그나마의 우정은 끝났다.


내가 그를 좋아했다고 생각한 건 단순히 그와 연락하는 게 즐거웠다

별의미 없는 이야기였음에도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마, 유머코드가 잘 맞았던 것 같다)

우린 그다지 속사정을 자주 얘기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간간이 나오는 서로의 이야기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를 그렇게까지 좋아했던 것도 아닌 것 같다

호감의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친구로서

그냥 누구라도 좋아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나도 남들처럼 연애를 하고 싶어서였던 건지

잘 모르겠다

6년이나 그를 좋아했다고 생각한 건 조금 웃기다 좋아한 건 맞는데 6년의 기간이 절절하진 않았다


그렇게 그와의 우정이 끝나고 3년 4년 뒤인 작년에 다시 연락을 했다

우연히 sns에서 발견하게 되어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좋았다

내가 그를 좋아했던 건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의 호감이구나 그냥 좋은 잘 맞는 친구였던 거구나

결론이 낫다

얘를 진짜 좋아했나? 아니었나? 생각을 꽤나 자주 했었는데

반이라도 맞아서 다행이다.


내가 지금 연애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하는 이유는 이제는 알 것 같아서다

이제는 사람들이 왜 연애를 하는지 왜 연애를 하라는 건지도 알겠다


연애는 단순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한다가 전부가 아니었다

연애를 통해 세상을, 사람을, 양보하는 법을, 져주는 법을, 위하는 법을 배우는 거였다

나도 양보하는 법, 져주는 법, 위하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차원이 다를 뿐

(고차원을 배운다가 아니라 그냥 정말로 다른 방법으로 하는 걸 말하는 거다)


마치 연애는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나가기 전 조그마한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것처럼

하기 싫은 것도 주저하지 않고 하며 그렇게 배워가는 것이었다

하기 싫은 것도 보기 싫은 것도 주저 없이 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도 확실하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진짜 사회생활이랑 별반 차이가 없다)

애정도 주고, 물질도 주고 기댈 곳도 준다.

(이유를 알겠다고 해서 연애를 당장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연애를 시작하기엔 재미있는 게 많긴 하다.


연애를 안 하는 사람의 비중이 높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긴 하다

살아가기도 피곤한데, 연애를 하며 내 피곤을 더 늘리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혼자 사는 것에 너무나도 만족하기 때문일 수도

이성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닫았을 수도

좋은 본보기를 보지 못해서였을 수도

그냥 바빠서 일수도 있고 이유야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언젠간 누군가를 진정을 사랑해보고 싶다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설레보고도 싶고

힘들 땐 기대도 보고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 해보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다 해보고 싶다.

(현실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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