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 아깝지 않은 게 내가 원하는 것이자 나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어느 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에게 그건 무엇인가….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은 책 읽는 것인데, 책을 사는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건 아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나 필요한 책을 살 때 난 필요한 책을 우선 선택한다. 필요한 책이라는 게 지금 당장 가져야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저 지금 내 일에, 앞으로의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 나에게는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돈이 아깝지 않다는 것에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여태껏 책 읽는 것만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편안한 것이라 생각됐는데 이조차도 아니라면 더 이상 떠오르는 게 없어 적잖이 당황스럽다.
항상 이런 식이다. 무엇을 하면서 난 항상 가성비를 따지고 따라오는 결과가 이득인지를 살피고 선택할지를 결정한다. 그것이 물건을 사는 거든 일을 시작하든 하다못해 공부하는 거든 마찬가지이다. 결과가 소용이 없다면 아무리 재미있더라고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뭔가 얻어지는 게 없는 걸 하고 있으면 잘못하고 있는 것 같고 결국에는 죄책감까지 느낀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렇게 ‘쓸데없는 짓’이라는 말에 묶여 있었다.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면 죄책감과 함께 분노가 든다. 그 말을 나에게 각인시킨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실이 떠올라 가슴이 쓰리고 떨쳐버리고 싶지만, 다시 돌아온 기억에 괴롭다. 좀 발전한 건 분노를 허용했다는 거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쓸데없는 짓’이라는 말이 전기자극처럼 날 고문했고 무력하게 고문을 감내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아버지의 말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제야 그 말이 내가 나에게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말임엔 분명하지만, 지금은 내가 아버지 대신 나에게 하는 것이다. 비극이다.
‘본래의 나’와 ‘되어야만 하는 나’의 간극이 클수록 마음의 불편감이 커진다고 한다. 의무감과 무력감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결국 죄책감에 빠지면서 마음이 불편감이 생긴단다. 바로 내 얘기지 않은가! ‘되어야만 하는 나’, ‘해야만 하는 일’에만 기준을 두고 나를 평가하였다. 본래의 나,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외면한 채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되어야만 하는 나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면 모르겠다는 대답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희망은 자신을 찾는 것과 관련된 책과 강연들이 인기가 있는 것 보면 우리는 본래의 나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를 아예 외면하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간절히 원한다고 해도 본래의 나를 찾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본래의 나를 찾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내 영혼이 기뻐하는 걸 찾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찾는다고 표현했지만, 작가는 만들어가는 것이라 설명하였다. 내 영혼이 기뻐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 어쩌면 만드는 과정과 같을 수도 있겠다. 누구나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기뻐하는 것은 나를 위한 맞춤이지 않는가! 내 몸에 꼭 맞는 맞춤 정장처럼 말이다.
사진: Unsplash의Nathan C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