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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빛나는

눈부신 청년

by 권민정



1909년 전라도 나주 땅, 누더기를 걸친 한 여인이 길가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는 그의 몸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코를 막고 거지 여인을 멀리 피해갔다. 얼마 동안이나 그 여인이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을까?


파란 눈에 노랑머리의 한 젊은이가 나귀를 타고 광주로 급히 가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온 의사였는데 선교사로 함께 왔던 친구가 급성 폐렴에 걸려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그 친구에게 가는 중이었다. 포사이드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이제 겨우 27세였다.


급히 나귀를 타고 달리던 그의 눈에 그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친구를 위해 빨리 달려가야 했던 그는 잠시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는 그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도 더러운 누더기 옷도 개의치 않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간 그는 그녀가 나병환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누더기 위에 자신의 옷을 입히고, 그녀를 안아 자신의 나귀에 태우고 광주까지 걷기 시작했다.




뒤늦게 그가 도착했을 때 친구가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그 여인의 치료에 쏟았다. 그러나 여인마저 죽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 여인은 죽었지만 그녀는 이 땅에서 나병 치료를 받은 최초의 환자가 되었고, 그 장소가 한국 나병환자들의 첫 진료소가 되었다.


의사 포사이드가 거지 여인을 외면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던 그 순간이, 그 여인을 자신의 나귀에 태우던 그 순간이, 문둥이라며 짐승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죽지 못해 살아가던 한국 땅 수많은 나병환자들(지금은 나병이라고 하지 않고 한센씨병이라고 한다)의 희망이 시작된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사건이었다.

여수에 있는 애양원을 방문하였다. 설립자가 포사이드 선교사이고, 그곳이 나병환자들의 천국이었다는 것을 역사박물관에서 보았다. 애양원에 머무르는 동안 포사이드 선교사가 머리에서 내내 떠나지 않았다. 쓰러져있던 거지 여인을 자신의 나귀에 태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바쁘게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때 그의 나이가 27세, 젊디젊은 청년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성경 말씀대로 그는 진정 한 알의 씨앗으로 살다간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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