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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슬픔과 인간의 힘

화두

by 권민정

《화두 1》 최인훈


사람은 기억 때문에 슬프다. 세상은 흘러가도 기억은 남는다. 사람 말고는 이 세상 모든 물질이 시간이 흐르면 자기도 변화한다. 지난해 봄을 기억하는 나무는 없을 것이다. 나이테라는 것들이 자기들끼리 옛이야기를 주고받을까. 새 나이테가 낡은 나이테가 겪었던 비바람이며 햇살을 자기 것으로 저어 올릴까. 아마 그렇지 않다. 사람만이 그렇게 하는데 슬픔도 영원히 남는다. 그렇게 만드는 힘이 기억인데 그 마찬가지 인간의 힘이 그 슬픔을 이기게도 한다. 우리가 그이의 기억을 나누어 가진 사람과 이야기할 때 우리 사이에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문득 끼어든다. (p346)



이 문장은 어머니의 죽음 후 작가가 어머니를 기억하며 쓴 글이다.


“사람은 기억 때문에 슬프다. 세상은 흘러가도 기억은 남는다.”

최인훈의 《화두》 속 이 문장이 마음을 적신다.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은 떠나지만 오직 인간만은 그 흐름을 온전히 잊지 못한 채 살아간다. 바로 그 능력, 기억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지만, 그 기억이야말로 인간을 슬프게 만든다. 나무는 나이테를 남기지만 지난해 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시간의 흔적일 뿐, 사유의 기록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사라진 사람, 지나간 시간,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럽거나 괴로운 기억도 많다. 기억은 슬픔의 근원이다. 망각할 수 없는 능력 때문에 인간은 고통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 기억이 없었다면, 인간은 단지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사라져 가는 존재에 불과했을 것이다. 기억은 고통을 남기지만, 동시에 존재의 증거를 세운다.

그렇기에 작가는 말한다.

“그 마찬가지 인간의 힘이 그 슬픔을 이기게도 한다.”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슬픔을 견디고, 의미로 바꾸는 힘이 인간에게 있음을 믿는다. 슬픔을 이긴다는 것은 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감히 바라보는 일이다. 잊지 않되 휘말리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이다. 바로 그때 인간은 고통을 사유로 바꾸는 존재가 된다.

우리가 그이의 기억을 나누어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 사이에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문득 끼어든다. 이 얼마나 신비한 일인가. 인간의 언어는 사라진 존재를 다시 불러오고, 기억은 부재를 현재로 옮겨 놓는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힘이다. 기억은 우리를 울게 하지만, 그 기억을 나눌 수 있을 때 그 울음은 고독이 아니라 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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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의 힘이란 기억의 슬픔을 사유로 승화시키는 능력이다. 기억은 상처를 남기지만, 그 상처는 언어를 낳고, 이야기를 낳고, 다시 삶을 붙잡게 한다. 기억은 인간을 아프게 하지만, 그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내는 힘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이다. 인간은 슬픔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슬픔을 기억함으로써 자신을 다시 세운다. 그것이 인간의 힘이며, 인간만이 가진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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