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세계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모든 새로운 것에 대한 가장 훌륭한 교양의 장소는 언제나 커피하우스였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빈의 커피하우스가 세계의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시설이라는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정말 일종의 민주적인, 그리고 싼값의 커피 한잔으로 누구와도 가까이할 수 있는 클럽이었다. 거기에서는 어떤 손님일지라도 커피 한 잔 값으로 여러 시간을 앉아서 토론하고, 글을 쓰고, 트럼프 놀이를 하고, 편지를 쓰고, 무엇보다도 수없이 많은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빈의 좀 괜찮은 커피하우스에는 빈의 모든 신문과 독일 전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신문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게다가 세계의 모든 중요한 문학, 예술 잡지, 즉 <머큐 드 프랑스>, <노이에 룬트샤우>, <스튜디오>, <벌링턴 매거진> 등이 나란히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직접 알았다. (p174)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항거리 제국의 수도 빈은 유럽의 사상과 예술이 교차하던 중심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한 잔의 커피와, 그 주위를 둘러싼 대화가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의 회고록 《 어제의 세계》는 그가 사랑했던 빈의 풍경을 세밀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커피하우스를 '빈 시민의 제2의 거실이자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문명적인 장소'라고 말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신문과 지식, 그리고 세계의 소식을 나눌 수 있었던 곳. 거기서 사람들은 계급을 벗고, 직업을 잊고, 단지 '인간'으로서 대화를 나눴다. 그 평등하고 개방적인 정신은 츠바이크 인문주의의 근본 토대였다.
빈의 커피하우스는 민주주의의 학교였다. 귀족도 노동자도, 시인도, 철학자도 그 안에서는 단지 커피를 마시는 한 사람으로 존재했다. 말과 말이 섞이고 생각과 생각이 부딪히며 새로운 시대의 철학이 만들어졌다. 프로이트가 꿈을 분석하던 무렵, 음악가 말러가 악보를 펼치고, 화가 클림트가 손가락 끝으로 금빛 선을 그었다. 그들 곁에서 츠바이크는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노트에 적고 있었다.
전쟁이 찾아오자 커피하우스의 불빛은 하나 둘 꺼져갔다. 츠바이크는 '어제의 세계'를 잃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은 그가 믿던 세계를 산산이 부쉈다. 커피하우스의 대화는 총성에 잠식되었고 관용의 언어는 이념의 언어로 대체되었다. 츠바이크에게 빈의 커피하우스는 단지 한 도시의 풍경이 아니라 인류가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품격 있는 정신의 상징이었다. 그는 유럽이 더 이상 정신적 고향이 아닌 세상을 견딜 수 없었다. 츠바이크는 자신이 속했던 유럽을 '정신의 고향이 사라진 대륙'이라 불렀다. 그는 잃어버린 것, 유럽이 잃어버린 '어제의 세계'를 증언하기로 결심한다. 츠바이크의 책 《어제의 세계》는 일련의 시대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