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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련 Oct 01. 2024

클로디아 랭킨, 『시민』(5)

Claudia Rankine, 『Citizen』(5)


세레나의 험담꾼 중에서 가장 악명높은 이는 유명한 테니스 심판인 마리아나 알베스의 모양을 하고 있다. 알베스는 2004년 세레나가 같은 미국인인 제니퍼 카프리아티를 상대로 한 준결승 경기에서 세레나를 향해 다섯 개의 오심을 내린 뒤 미국 오픈의 마지막 날 나머지 경기의 심판 자리에서 제외되었다. 알베스가 아웃이라고 판단한 서브와 리턴은, 놀랍게도 카프리아티에 의해 받아쳐지지 못한 채, 자세히 볼 필요도 없이 라인 안쪽에 떨어지고 있었다. 해설가, 관중, 시청자, 선심, 듣자하니 알베스를 제외하곤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아무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데님 치마와 검은 운동화 부츠와 검은 마스카라의 세레나는 손가락을 흔들며 “아냐, 아냐, 아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 순간을 부정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이해 가능한 세계로 되돌릴 수 있는 것처럼. 테니스 슈퍼스타인 존 맥엔로는, 왕년의 자신이 경기 중 부정에 대해 가졌던 예민한 감각을 바탕으로, 세레나가 경기에서 패배한 후 그것을 참아낸 것이 놀랍다고 했다.


아무도 세레나의 검은 몸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알베스의 시야를 방해한 게 그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당신뿐은 아니다. 한 해설사는 “주심과 선심의 도움으로 카프리아티가 승리를 거둡니다”라고 말하며 그것이 과언이 아닐 거라고 했다. 이 경기는 일 년 뒤 인아웃 판별 기술로서 보는 이로부터 보는 일을 빼앗는 호크아이 기술이 빠르게 설치되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졌다. 이제는 리플레이를 통해 주심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기 이후 세레나는 이렇게 말했다: “전 지금 굉장히 화가 나고 짜증납니다. 속은 기분이에요. 계속 말할까요? 무언가 그냥 빼앗긴 기분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2004년 미국 오픈 이후 세레나를 위한 분노를 느꼈지만, 해가 지날수록 그녀는 자신과 언니를 향하는, 알베스를 비롯해서 점점 길어지는 의뭉스러운 판단과 오판의 연속을, 과거에 둔 채 나아가는 것 같다.

그래, 그리고 몸은 기억을 갖고 있다. 신체의 마차는 그 무게보다 많은 것을 끌고 있다. 각각의 의심스러운 판단이 인식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바로 몸이다—쫄지 않고, 눈 깜빡이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회복력조차도 우리가 살아낸 순간들을 지우지는 못한다, 아무리 우리가 무한히 무식하고 영원히 낙관적이라도, 게임 안에서, 곁에서, 그것의 일부로 존재할 준비가 되었더라도.


그리고 여기에 세레나가 있다, 알베스를 마주한지 5년이 흐른 후에, 다시 한 번 미국 오픈에서, 다시 준결승이고, 이번 상대는 벨기에의 킴 클레스터스다. 세레나는 별로 좋은 경기를 하고 있지 않고 첫 번째 세트에 패배한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녀는 코트에다 라켓을 박살낸다. 이제는 맥앤로가 그녀의 참을성에 놀라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여태 본 그녀의 모습 중에 가장 화나 있군요.” 심판이 그녀에게 경고를 준다: 한 번 더 위반을 했다간 벌점을 받게 되리라.


두번째 세트 클레스터스가 5-6으로 앞선 중요한 순간에서, 그녀는 경기를 지속하기 위해 서브를 한다, 매치 포인트에서. 미국 오픈에서 세레나의 몸을, 그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도록 고용된 선심이 세레나가 서브하는 과정에서 선을 밟았다고 한다. 뭐라고? (호크아이 카메라는 공만 담당하는가 보다, 발은 아니고.) 뭐라고! 장난쳐? 그녀는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풋 폴트를 보았다고, 수차례 반복재생을 해보아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그것을. “풋 폴트는 없어요, 저기에 분명히 풋 폴트는 없습니다,” 맥엔로가 말한다. “저건 확실히 오심입니다,” 하고 다른 해설위원이 말한다. 윌리엄스 자매의 결점을 찾아낼 준비가 단단히 되어있는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ESPN 테니스 해설위원조차도 “저 풋 폴트는 한참이나 잘못됐다”고 한다. 그래, 그리고 설령 폴트가 있더라도, 규칙을 막론하고, 그랜드 슬램 경기에서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테니스 전문가 캐롤 콕스에 의하면 “경기를 결정지을 수 있는 콜은 명백하지 않으면 안 하는 것”이기에 콜을 거의 하지 않는다.


친절해 보이는 킴 클레스터스를 보며 당신은 이 시나리오가 반대로 흘러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세레나가 선심을 향해 “내가 씨발 이 좆같은 공을 네 목구멍에 처넣을 거야, 알겠어? 씨발!” 하고 외치자, 그의 폭발이 아무리 무례하다고 하더라도, 밝은 흰 배경에 내던져진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반발했다는 점에서 그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기가 어렵다. 이 순간에 존재하는 그녀에게, 서브 라인에서의 그녀의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미친 듯 싸우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기 어렵다.


가로늦게 2009년에, 그녀는 2004년의 심판에게 했어야 할 말을 한다, 알베스가 정신차리도록, 코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도록 했을 말들을. 이제 세레나의 반응은 정신나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 짧은 해방의 순간에 대해 그녀에게 주어지는 처벌은 아까 경고 받았던 벌점과 그로 인한 경기의 패배, 82500 달러의 벌금, 그리고 그랜드 슬램 협회에 의한 2년의 집행 유예 기간이다.


어쩌면 협회의 결정은 맥락에 의한 걸지도 모르지만, 맥락은 의미와 다르다. 전세계의 집에서 관람되고 있는 공적인 행사라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세레나가 기본적인 예의를 모두 버림으로써 그런 맥락을 저버렸다면, 그건 그녀의 몸이, 인종적 상상 안에 갇혀, 불신에 갇혀–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그녀가 참가한 테니스 경기가 아니라 규칙대로 하기로 약속했으나 무너져버린 어떤 관계에 의해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가 어렵다. 어쩌면 이건 모든 맥락을 막론하고 인종차별주의가 주는 느낌인지도 모른다–갑자기 모든 사람이 따르기로 한 규칙이 당신에게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고, “씨발!”이라고 외치며 이 현실을 지적했다가는 정신 나간, 멍청한, 미친 취급을 받는 것이다. 스포츠맨십이 없는 것이다.



The most notorious of Serena’s detractors takes the form of Mariana Alves, the distinguished tennis  chair umpire. In 2004 Alves was excused from officiating any more matches on the final day of the  US Open after she made five bad calls against Serena in her semifinal matchup against fellow  American Jennifer Capriati. The serves and returns Alves called out were landing, stunningly un  returned by Capriati, inside the lines, no discerning eyesight needed. Commentators, spectators,  television viewers, line judges, everyone could see the balls were good, everyone, apparently, except  Alves. No one could understand what was happening. Serena, in her denim skirt, black sneaker boots,  and dark mascara, began wagging her finger and saying “no, no, no,” as if by negating the moment she  could propel us back into a legible world. Tennis superstar John McEnroe, given his own keen eye  for injustice during his professional career, was shocked that Serena was able to hold it together after  losing the match. 


Though no one was saying anything explicitly about Serena’s black body, you are not the only viewer  who thought it was getting in the way of Alves’s sight line. One commentator said he hoped he wasn’t  being unkind when he stated, “Capriati wins it with the help of the umpires and the lines judges.” A  year later that match would be credited for demonstrating the need for the speedy installation of  Hawk-Eye, the line-calling technology that took the seeing away from the beholder. Now the umpire’s  call can be challenged by a replay; however, back then after the match Serena said, “I’m very angry  and bitter right now. I felt cheated. Shall I go on? I just feel robbed.”  


And though you felt outrage for Serena after that 2004 US Open, as the years go by, she seems to put  Alves, and a lengthening list of other curious calls and oversights, against both her and her sister,  behind her as they happen.  


Yes, and the body has memory. The physical carriage hauls more than its weight. The body is the  threshold across which each objectionable call passes into consciousness—all the unintimidated,  unblinking, and unflappable resilience does not erase the moments lived through, even as we are  eternally stupid or everlastingly optimistic, so ready to be inside, among, a part of the games.  


And here Serena is, five years after Alves, back at the US Open, again in a semifinal match, this time  against Belgium’s Kim Clijsters. Serena is not playing well and loses the first set. In response she  smashes her racket on the court. Now McEnroe isn’t stunned by her ability to hold herself together  and is moved to say, “That’s as angry as I’ve ever seen her.” The umpire gives her a warning; another  violation will mean a point penalty.  


She is in the second set at the critical moment of 5–6 in Clijsters’s favor, serving to stay in the match,  at match point. The line judge employed by the US Open to watch Serena’s body, its every move, says  Serena stepped on the line while serving. What? (The Hawk-Eye cameras don’t cover the feet, only  the ball, apparently.) What! Are you serious? She is serious; she has seen a foot fault, one no one else  is able to locate despite the numerous replays. “No foot fault, you definitely do not see a foot fault  there,” says McEnroe. “That’s overofficiating for certain,” says another commentator. Even the ESPN  tennis commentator, who seems predictable in her readiness to find fault with the Williams sisters,  says, “Her foot fault call was way off.” Yes, and even if there had been a foot fault, despite the rule,  they are rarely ever called at critical moments in a Grand Slam match because “You don’t make a  call,” tennis official Carol Cox says, “that can decide a match unless it’s flagrant.”  


As you look at the affable Kim Clijsters, you try to entertain the thought that this scenario could have  played itself out the other way. And as Serena turns to the lineswoman and says, “I swear to God I’m  fucking going to take this fucking ball and shove it down your fucking throat, you hear that? I swear to  God!” As offensive as her outburst is, it is difficult not to applaud her for reacting immediately to  being thrown against a sharp white background. It is difficult not to applaud her for existing in the  moment, for fighting crazily against the so-called wrongness of her body’s positioning at the service  line. 


She says in 2009, belatedly, the words that should have been said to the umpire in 2004, the words  that might have snapped Alves back into focus, a focus that would have acknowledged what actually  was happening on the court. Now Serena’s reaction is read as insane. And her punishment for this  moment of manumission is the threatened point penalty resulting in the loss of the match, an $82,500  fine, plus a two-year probationary period by the Grand Slam Committee.  


Perhaps the committee’s decision is only about context, though context is not meaning. It is a public  event being watched in homes across the world. In any case, it is difficult not to think that if Serena  lost context by abandoning all rules of civility, it could be because her body, trapped in a racial  imaginary, trapped in disbelief—code for being black in America—is being governed not by the  tennis match she is participating in but by a collapsed relationship that had promised to play by the  rules. Perhaps this is how racism feels no matter the context—randomly the rules everyone else gets  to play by no longer apply to you, and to call this out by calling out “I swear to God!” is to be called  insane, crass, crazy. Bad sportsmanship



disbelief를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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