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키프로스의 파포스에 위치한 작은 전통 마을 훌루(Choulou)에 와있다. 훌루는 짝꿍 어머니가 태어나 자랐고, 영국에서 태어난 짝꿍이 어렸을 때부터 매년 여름을 보낸 고향과 같은 곳이다.
지금은 비록 빈집과 폐허가 된 건물들로 가득하지만 중세 시대엔 유명한 봉건 마을이었다고 한다. 키프로스 전설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비극의 여인의 사연이 얽힌 곳이자, 마을 근처 산속 어딘가에 고대 왕의 보물이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마을이 바로 이곳 훌루다. 흰색 돌로 지어진 집들 사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멀리 펼쳐지는 계곡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어딜 가나 널브러져 있는 무화과, 라임, 석류나무들에선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근처엔 올리브 또는 포도나무로 가득한 크고 작은 밭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짝꿍 부모님 댁 근처에도 짝꿍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올리브밭이 있어, 매년 수확한 올리브로 대량의 올리브유를 짜서 영국으로 가지고 온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인구는 1,000명 가까이 되어 활기 넘치는 곳이었지만 다들 도시로 빠져나가 지금은 70명 밖에 남지 않았다. 생필품을 살 가게 하나 없는 이곳. 공공장소로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2곳이 전부다.
해발 350m에 자리 잡고 있는 계곡 마을 훌루에서의 10일 남짓한 평화로운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해 보려고 한다. 이렇게 작고 외진 키프로스 마을에 발을 디딘 한국인은 훌루 역사상 내가 처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