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루 마을에 살고 계신 짝꿍 부모님께 무엇을 선물로 들고 가면 좋을까. 영국에서 특별히 필요한 것도 없다고 하시길래 한국 과자를 사가기로 했다. 영국을 방문하실 때도 가끔 쿠키나 도넛등을 가져다 드리면 식탁 위에 두고 며칠 만에 다 싹 쓸어 드실 만큼 단 음식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다.
작년 키프로스를 방문할 땐 호떡 믹스를 사가지고 가 직접 구워드렸더니 정말 맛있게 드셨었는데 이번엔 믹스를 구할 수 없어 한국을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오리온 초코파이와 내가 홍콩 살 때 제일 좋아했던 파인애플 케이크 펑리수를 가져갔다. 마음 같아선 한국 간식만 챙겨가고 싶었는데 내가 사는 동네엔 중국 슈퍼밖에 없어 구매할 수 있는 한국 과자가 별로 없었다.
사실 중국 과자든 한국 과자든, 사실 이 분들에겐 그게 그거겠지만 말이다. 내가 짝꿍과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 짝꿍이 날 부모님께 '중국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길래 내가 발끈했더니 옛날분들이라 중국· 한국 구분 못하실 거라고 (이런 같잖은) 변명을 한 적이 있었다. 영국에서도 한국이란 나라를 전혀 들어본 사람들을 자주 만나 본 적 있기에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건 아니지 않은가!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초코파이보단 바삭한 식감의 빅파이를 훨씬 더 좋아했었다. 오랜 영국생활을 하며 한국 과자가 그리울 때 사 먹는 간식거리들 또한 초코파이가 아닌 엄마손 파이, 고래밥, 사또밥, 그리고 썬칩이었다. 이렇게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초코파이를 키프로스 시골집에 도착해 꺼내는 순간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한국인이란 자긍심이 올라왔다.
옛날 감성 그대로 여전히 붉은색 바탕에 커다란 한문 '정(情)'이 커다랗게 쓰여있는 초코파이 상자를 여행가방에서 꺼내면서 문득 초등학생 때 참석했던 교회 여름성경학교가 생각이 났다. 한국 시골 마을에 있는 학교를 빌려 3박 4일 정도 열린 여름성경학교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겐 너무나 신선한 경험들이었고, 그때 느꼈던 신기함과 들뜬 마음은 뜨거운 여름 햇살처럼 나의 기억 속에 아직도 강렬히 남아있다. 그때 교회 친구들과 초코파이를 몇 개 케이크처럼 쌓고 초를 꽂아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던 것 같다. 당시 초코파이를 선전했던 TV 광고에서처럼 말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몇십 년이 지난 오늘날 키프로스 한 시골 마을에서 갑자기 떠올랐다.
"이거 모든 한국 사람이 먹고 자란 간식이야. 나도 어렸을 때 이거 많이 먹었어"라고 짝꿍에게 초코파이를 소개하며 마음 한켠이 답답해졌다. 초코파이에 담긴 한국인의 감성과 역사, 그리고 나의 고향땅에 담긴 아련한 추억들. 이 모든 것들이 몇 마디 말로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나의 추억들은 한국 시골에서 먹었던 초코파이인데, 내가 후에 낳을 아이들의 추억들은 키프로스시골 마을에서 먹었던 올리브 빵에 대한 기억들로 가득해지겠지.
초코파이를 짝꿍 부모님께 선물하며 괜히 조금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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