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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sbird Oct 10. 2024

커피만큼 씁쓸한 니짜 이야기

우체국도, 식당도, 작은 구멍가게 하나도 없는 이곳엔 카페가 두 곳이나 있다. 훌루 마을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공공장소다. 그리스어로 '까프'라고 불리는 이곳은 우리가 익숙한 아메리카노나 라테 대신 에스프레소 잔 아래 진한 커피가루가 잔뜩 깔려있는 그리스 전통 커피만 판매한다. 설탕을 넣지 않은 '스께또' 또는 설탕을 넣은 '메뜨리오'를 주문하면 항상 찬물 한 잔이 함께 나온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이 두 까프는 서로 라이벌 관계인데, 공교롭게도 서로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짝꿍 아버지가 매일 하루에도 두세 번씩 가서 동네 사람들과 카드게임 러미를 즐기시는 까프는 '니짜'라는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는데 이 아주머니는 마을에서 아주 미움받는 캐릭터다. 짝꿍 어머니도 니짜가 운영하는 가게에선 돈 한 푼도 쓰고 싶지 않다며 절대 그 까프에 가지 않고 종종 니짜를 '창녀'라 부르며 욕을 하신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바로 옆 다른 까프에 가는 이유는 니짜가 싫어서다. 속속들이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마을사람들에게 엄청 못되게 군다고 한다. 작년에 내가 훌루에 왔을 땐 어느 날 니짜가 짝꿍 아버지와 러미 게임(여기선 러미를 '공까'라고 부른다)을 하다가 싸움이 나 90세가 거의 다 되신 아버지에게 "아들을 시켜 패버리겠다"라고 협박을 해 가족이 발끈한 적이 있다. 이런 말을 듣고도 다시 공까를 하러 니짜의 까프로 나가는 아버지 뒷모습에 대고 짝꿍과 어머니가 엄청 뭐라 했었다. 어쨌든 아버진 방금 전에도 니짜 까프에 출석하러 나가셨다. 


첫인상부터 아주 고약하게 생긴 니짜는 거동이 불편해 인도 소녀 '소피'를 도우미로 두고 있다. 노인들만 모여 사는 훌루엔 인도나 스리랑카, 베트남 등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여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까프에 가서 커피를 시키면 니짜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피!'하고 부른다. 그러면 소피가 가서 커피를 만들어 내온다. 작년 훌루에 왔을 때 처음 만난 소피는 앳된 미소가 참 예쁜, 조용조용한 소녀였다. 당시 훌루에 온 지 몇 달이 안 됐다고 했는데 올해 만난 소피는 이제 훌루 생활이 많이 편해졌는지 그리스어도 조금 하고 목소리에도 자신이 붙어있었다. 때 묻지 않은 환한 미소는 아직도 참 이쁘다. 


어머니가 니짜를 '창녀'라고 부르시는 이유는 60세가 훨씬 넘은 과부 니짜가 현재 연애 중이기 때문이다. 니짜의 남자친구는 옆동네 사는 유부남으로, 결혼한 아내와 한집에 살면서 니짜와 연애 중이라고 한다. 니짜 남자친구는 오래전 니짜의 남편을 엽총으로 쏴 죽이려고 했던 사람의 아들이다. 당시 총을 쏜 할아버지는, 명백한 살인혐의에도 나이 많은 노인이라는 이유로 몇 달 감옥살이 후 풀려났다. 


동네 사람에게 총을 맞을 만큼 니짜 남편도 살아생전엔 꽤나 미움받을 짓을 하고 다녔던 것 같은데, 이 사람의 사망 원인은 총상이 아니었다. 발톱을 잘못 깎아 발이 감염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치료를 받지 않아 괴저로 사망했다고.


니짜의 커피숍


#키프로스 #시골마을 #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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