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indsbird
Oct 15. 2024
뜨거운 태양 아래 구불구불 트로도스(Troodos) 산 남서쪽 등성이를 타고 올라 짝꿍 할아버지가 사셨던 레모나 마을을 지나면 현재 짝꿍 부모님이 살고 계신 훌루 마을이 나온다. 올리브와 석류나무를 포함한 온갖 꽃과 식물로 가득한 앞마당이 있는 집이 바로 그 집이다. 작은 마당이지만 빼곡한 식물들로 집 건물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 집은 짝꿍 어머니가 쉬지 않고 바느질하며 버신 돈으로 사신 곳이다.
집 안에는 나무를 때워 덥히는 오래된 난로가 하나 있고 뒷마당엔 얼마나 오래됐는지도 모르는, 다 무너져버려 골격밖에 남지 않은 작은 석조 건물이 하나 있다. 뒷마당 끝부분은 바로 에주사(Ezousa) 계곡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계곡 가장자리로 떨어지는 이 부분엔 삐쭉빼쭉 무화과 선인장이 자라고 있는데, 여기 자라는 과일을 손질해 먹기도 한다고 한다.
처음 이 집을 살 땐 구분된 침실도 없는, 화장실만 하나 딸린 작은 집이었지만 여기저기 조금씩 확장을 해 지금은 방과 거실, 화장실도 하나 더 있는 아담한 집이 되었다. 대충 시골 인부들을 시켜 공사를 했는지, 천장을 칠한 갈색 페인트가 하얀 벽에 여기저기 튀어 있고 마감도 엉성한 흔적이 여러 군데 있는 곳인데, 여기 지내며 제일 불편한 곳은 단연 화장실이다.
두 개의 화장실은 바로 붙어 있고 사이에 창문이 있는데, 환풍이 잘 되라고 창문은 항상 열어둔다. 구조상 떡하니 모든 게 훤히 보이는 구조는 아니라 다행이지만 작정하고 창문을 들여다보면 볼 수 있기 때문에 작년 처음 훌루에 왔을 땐 살짝 당황했다. 이 보다 더 당황스러울 때는 다른 사람이 옆 화장실에서 같이 용변을 보고 있을 때다. 힘을 주는 소리와 동반되는 그 모든 부수 '효과음'들이 화장실 안에서 울리며 아주 적나라하게 전달되는데, 듣고 있는 나도 불편하지만 내 소리도 그쪽에 똑같이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에 민망하기 짝이 없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훌루 생활의 옥에 티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키프로스 #훌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