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수호하며 홀로 떠돌던 캡틴 마블(브리 라슨)은 오래된 친구 닉 퓨리(사무엘 L. 잭슨)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지역에서 에너지 파장에 노출되고, 초능력을 쓸 때마다 카밀라 칸(이만 벨라니), 모니카 램보(티요나 패리스)와 위치가 바뀌는 현상을 겪게 됩니다. 셋은 이 모든 게 할라 행성을 되살리기 위해 다른 행성의 자원을 탈취하려는 다르 벤(자위 애쉬튼)의 음모임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우주를 횡단하는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특이하게도 '캡틴 마블'(2019)의 속편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전편과 달리 주연이 3명인 작품입니다. 심지어 주인공 중 2명은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드라마('미즈 마블', '완다 비전') 속 주조연들입니다.(모니카 램보라는 캐릭터는 '캡틴 마블'(2019)에서도 아역으로 출연했었지만 드라마에서 성장해서 등장합니다)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과 활약이 두드러져야 하는 히어로 장르로서 생각해 보면 희귀한 케이스인데 마블은 과연 예전처럼 새로운 시도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을까요?
처음 보는 낯선 드라마 캐릭터들
'더 마블스'의 새로운 주인공들 모니카 램보, 카밀라 칸
작품 시작 후 MCU세계관 속 드라마 출신 캐릭터들이 주조연 가리지 않고 제법 많이 등장합니다. 이 캐릭터들은 스크린으로 기존 MCU를 접해온 일반 관객들에게 하는 첫 데뷔인 만큼 캐릭터의 매력을 알기 쉽게 어필해야 될 필요성이 큽니다.
저지 시티에서 미즈 마블이라는 이명으로 활약하는 십 대 히어로 카밀라 칸은 이런 부분에서 어느 정도 성공합니다. 십 대 히어로의 천진난만한 상상력이 잘 표현된 낙서 장면은 작품 내에서 카밀라 칸만이 가질 수 있는 개성 있는 매력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이와 별개로 그녀의 능력과 조연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가족들에 관련된 설명들은 대사로 설명되는 수고조차 등한시되었다는 감이 큽니다.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모니카 램보입니다. 영화 '캡틴 마블'(2019)에서도 아역으로 출연해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캡틴 마블의 오랜 친구, 마리아 램보의 딸입니다. 전편에 이어 캡틴 마블과 함께 등장하는 만큼 작품의 드라마적인 부분에서 연관성이 큰 캐릭터입니다.
모니카 램보는 우주복을 투과해서 에너지 파장으로 우주선을 수리하는,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초능력을 사용하면서 관객들에게 첫 등장을 합니다. 이후 구체적인 능력은 전자기 스펙트럼(일종의 에너지 상태)을 조종한다는 설명이 추가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스텔스(투명화) 능력, 투과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들을 보면 여전히 관객들이 쉽게 접근할 만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캐릭터에 대한 접근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부연설명이 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 예시로 같은 MCU 작품인 '닥터 스트레인지'(2016)의 경우 관객들에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설명하기 복잡한 능력은 최소화하고,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드러낸 경우가 있습니다. 이후에도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은 주로 한눈에 효과를 이해하기 쉽게 연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이 경우는 마법을 다루는 작품의 특성상 화려한 CG에 집중하기 쉽게 하려는 의도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팀업인가
팀업이 너무 단순해서 팀의 의미가 무색하다
기본 주인공은 역시 캡틴 마블이지만 작품에선 한 개인 캐릭터의 활약보다는 팀업이 우선시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강조하는, '능력을 쓸 때마다 위치가 바뀌는 스위칭 액션'은 필시 팀업을 강조하기 위한 기획이었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작품에서의 팀업은 팀업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하기엔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단순합니다. 그저 위치를 바꿔가며 적을 공격할 뿐입니다. 스위칭 액션의 특성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결정적으로 팀원 모두가 강한 여성으로서 전투 능력을 표현하는데만 급급하여 각자의 특기를 살려 위기를 헤쳐나가는 개성적인 창의성과 쾌감의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스위칭 액션을 통해 순간적으로 위치가 바뀌는 만큼 작품의 액션신은 화려한 CG와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액션의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고, 첫 스위칭 액션신을 제외하면 작품 전반에 강렬한 액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실제 액션 퀄리티에 상관없이 단순한 액션신들의 나열은 단순한 팀업과 맞물려 작품의 퀄리티를 더욱 낮아 보이게 합니다.
갈등과 결말이 한순간인 드라마
갈등에 대한 묘사가 너무 적어서 캐릭터의 드라마가 약하다
드라마도 문제가 산재해 있습니다. 주연 3명의 드라마에는 진지한 갈등이라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갈등은 그저 순간, 순간 작동할 뿐 캐릭터의 행적에 강하게 녹여내는 진중한 묘사가 부족합니다. 단 적인 예로 캡틴 마블과 모니카 램보의 불화 문제는 작품 전체에 걸쳐 캡틴 마블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드라마적 소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몇 분 만에 해결되어 버립니다. 관객들이 갈등에 이입하기도 전에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문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캐릭터는 역시 메인 주인공인 캡틴 마블입니다. 시리즈를 이끌어 갈 주역인 만큼 히어로로서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빌런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어두운 과거사를 만들었지만 작품은 이런 무거운 트라우마를 순식간에 넘겨버리고 공감하기 어려운 감동을 연출합니다.
캐릭터의 평가가 초반에 나온 이유
어째서인지 캡틴 마블 시리즈에 나오면 개그 캐가 된다
윗 문단에 설명한 대로 캐릭터의 드라마가 약해졌는데, 덕분에 작중 닉 퓨리의 '가장 정의로워서 가장 고생하는 게 캡틴 마블이다'라는 대사가 무색해졌습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고뇌하고 연민하는 장면이 너무 짧아 몰입이 저해되었고 의도와는 달리 그녀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다만 저 대사는 캡틴 마블이 가진 독선적인 정의의 근원을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이는 작중 캡틴 마블이 의도치 않게 할라 행성의 내전을 불러온 과거에서 강조되는 부분입니다. 너무도 정의롭기에 악행을 두고 보지 못하고 성급하게 나선다는 겁니다.
이런 식의 '자신은 옳다'는 독선적인 정의의 형태는 전작 '캡틴 마블'(2019)에서 크리족에게 속아 잘못된 일을 저지르던 때의 죄책감과 의무감이 더해져 있고, 팀업으로 새로운 방식의 정의를 깨닫게 된 캡틴 마블의 성장은 '능력 있는 여성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억누르던 프레임을 탈피'하는 메시지 구성 측면에서전작과 동일한 연장선에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MCU 첫 여성 팀결성을 묘사한 것치고 PC적인 요소가 전무한 부분은 전작과의 연결성을 일부러 끊어낸 듯한 특징입니다. 아무래도 제작진들은 전작에 있던 PC적인 메시지들이 관객들의 반발을 유발하여 캡틴 마블에 대한 온전한 평가를 방해한다고 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작중 의미하는 바가 큰 대사이지만 아쉬운 부분은 대사가 나온 타이밍이 몰입을 저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안 그런 캐릭터 영화가 있겠냐만은(특히 히어로 장르에서) 캐릭터의 대한 평가를 너무 초반에 배치하여 캐릭터의 행적에 대해 관객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작품이 이미 프레임을 정해놨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보통 이런 대사는 작품 마지막에 나와 그동안 주인공과 함께 여정을 떠난 관객들이 애틋한 마음으로 공감하도록 배치하는데 독특한 대사 배치에 비해 의도가 잘 전달되었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캐릭터를 푸대접하는 캐릭터 영화
다르 벤은 무능 빌런의 전형으로 남아버렸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있어 큰 매력을 뽐내지는 못합니다. 그나마 미즈마블은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해 주며, 세 주연 캐릭터 중 가장 짜임새 있는 액션과 밝은 개성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는 매력을 어필했지만 캡틴마블과, 모니카 램보는 작품 내에서 제공하는 매력 요소들이 본격적으로 발휘될 무대를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매력요소를 집어내는 거 자체가 힘듭니다. 특히 기존 마블 드라마를 제외한 영화라는 매체만 놓고 보면 모니카 램보는 관객들에게 몰입의 여지가 적은 더 먼 존재 일 수밖에 없습니다.
빌런 다르 벤과 얀(박서준)을 비롯한 조연들도 푸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적은 디테일 없이 그저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순간 묘사할 필요 없는 불청객 수준의 취급입니다. 입체적인 면이 있을 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살아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정해진 길을 만들기 위한 플롯용 장치에 가깝습니다.
빌런 다르 벤은 캡틴마블에게 할라 행성의 미래가 파괴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과거 때문에 동족에 대한 책임감과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내려는 과격한 독불장군 같은 성격입니다. 이런 설정은 캡틴마블의 독선적인 정의와 동질성을 지니는데, 이는 전형적인 마블식 대립형 빌런을 만드려던 흔적으로 보입니다. 또 최후반부 아무런 묘사 없이 사라진 다르 벤의 부하들은 모종의 장면들이 편집된 흔적입니다. 이런 다양한 흔적들은 작품이 상업적인 타협이 적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결국 다르 벤은 작품의 빠른 진행과 편집에 의해 제대로 된 대립과 매력을 표현하기도 전에 무대 밖으로 퇴장당합니다. 역대 최단 러닝타임을 지닌 마블 영화라는 타이틀은 다르 벤과 캡틴마블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얻은 것이죠. 이제는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했기에 캐릭터와 개연성에 많은 구멍이 생겼습니다. 이것을 통해 마블은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의문스럽습니다.
CG를 비롯한 제작비 절감?
더 많은 극장 상영 횟수?
마블 드라마를 찾아보려고 할 관객들?
확실한 건 무엇을 얻어도 큰 성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MCU 역사상 가장 최악의 영화
고양이들과 뮤지컬 'CAT'의 OST인 '메모리'가 나오는 구간은 재밌었다
분명 작품에 재미는 있었고 여러 의미로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놀라웠다는 건 안 좋은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가 흔들거림에도 불구하고 기존 세계관을 구석구석 짜임새 있게 활용하여 재미를 추구한 부분들은 거대한 세계관을 쌓아온 MCU의 역사가 허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완성도에 큰 흠들만 없었더라면 '퍼스트 어벤져'(2011)처럼 차후에 캐릭터의 행적을 통한 재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재미 여부와 관계없이 필자가 이 영화를 저평가하는 이유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까지 MCU가 만든 신드롬과 트렌드는 할리우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상업 시장에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필자는 마블이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시절 마블이 놀라웠던 이유는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캐릭터의 매력과 주제를 잘 결부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영화가 모두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캐릭터들은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거기에는 진심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필자에게 인상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 필자는 단순히 쉽고, 깊은 주제 없는 상업 작품이라 작품성이 낮다는 편견 어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MCU가 더 잘하려는 노력이, 그 빛나던 열의와 진심이 최저점에 도달한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더 마블스'는 액션, 드라마, 캐릭터 모두 얄팍합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더 크고 화려한 다음을 기약할 뿐, 지금 이 순간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될 가치 있는 것들은 뒤로한 채 공식에 따른 안전한 길만을 선택한 영혼 없는 상업적인 타협의 산물입니다. 아마 필자에게는 오랫동안 마블 유니버스 영화 중에서 가장 최악의 작품으로 기억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