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언니가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영화를 보자고 제안을 했다. 난 흔쾌히 응했고 어제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난 아주 재미있었는데 언니는 재미없었단다.
"도대체 어디서 재미있었어?"
포인트를 좀 말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바로 어떻다고 정의 내리기가 곤란했다.
글로 적어 보내준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적으려고 보니 나의 감흥이 영화 본래의 취지나 구성요소, 플롯에 관련된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영화에 대한 스포는 거의 없습니다. 극히 저의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적어보려 합니다.)
1. 처음 오픈 음악부터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이 좋았다.
이 영화는 영웅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로마'라는 대제국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이 나오고, 결투씬이 등장한다.
우수에 젖은 구슬픈 노래도 좋았고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웅장하고 다이내믹한 배경 음악도 너무너무 좋았다. 마음이 동화되고 현장감과 몰입감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느리면서 여운을 주는 음악과 북소리가 더해진 웅장함은 그 어떤 클래식 음악 못지않게 나에게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2. 영웅은 어떤 사람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왕, 원로원, 왕을 탐하는 자, 권력을 노리는 자, 부귀를 원하는 자, 노예로 전략한 자, 결투에 환호하는 시민, 군인, 전쟁에서 이긴 자, 전쟁에서 패한 자. 목숨을 걸고 이긴 자, 져서 죽은 자... 그리고 '로마다운 로마'를 꿈꾸는 영웅이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조상으로 나온다. 내가 참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인데... 벌써 여기서 뭔가 마음을 동요시키기 시작한다.
"힘과 명예"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어느 역사를 막론하고, 올바르고, 정의롭고, 제대로 된 가치가 인정받는 나라를 꿈꾸는 리더의 모습은 참 멋있는 것 같다. 힘든 상황이지만 의지를 불태우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마음을 움직이는 언변과 태도.
우리나라에는 지금 어떤 리더가 있는가? 트럼프는 리더 기질이 있어서 대통령이 되었을까? 최근에 내가 볼 수 있었던 리더는 과연 누구였을까?
영화로라도 그런 제대로 된 리더의 모습을 봐서 기분이 좋았다.
3. 전투신을 포함한 각종 볼거리들
전투신이 더 다양해졌다. 동물들도 나오고 수중신도 나온다. 오리지널 전쟁신이 나오는 것은 물론이다. 치밀한 전략과 인물들의 움직임, 화려한 볼거리는 그것 자체가 영화관에 온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해 줬다.
4. 멋있었던 등장인물들, 특히 여자 캐릭터들의 매력
'나무위키' 참조
줄거리상 혈통이 존재하고 가족이 등장한다. 배우자를 믿고 사랑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배우자가 죽는 장면이 나온다. 남편과 아내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
기품 있는 부인들이었고 듬직하고 무게감 있는, 온화하면서 강한 남편들이었다.
이번 영화에는 난 특히 '여자' 들에 관심이 갔다. 먼저 주인공 '루시우스'의 아내. 가정을 돌보다가도 전쟁이 나면 옷을 챙겨 입고 활을 들고 전장으로 나갔다. 부드럽고 따뜻한 내조의 아내이다가도 위급한 순간 전사로 나설 수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여자로서의 부드러움과 전사로서의 강인함이 멋있게 느껴졌다. 나도 닮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두 번째는 코니 닐슨이 역할을 맡은 '루실라'. 왕의 혈통이기는 하지만 보는 내내 참 우아하고 격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주름이 있어도, 젊음의 생기가 없어져도, 저렇게 분위기가 있을 수 있구나! 저렇게 근사한 아우라를 내비칠 수 있구나!'
나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세월의 흔적에 속상해하고 우울해하기보다 경험과 연륜과 지혜와 의지로 겉모습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알고 있다. 과연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내가 어느 부분에서 재밌다고 느꼈었는지 네 가지 경우를 들어 설명해 보았다.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줄거리나 장면 하나하나에 포인트를 맞춘 것이 아니기에, 이런 관점으로 보시라고 감히 추천드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재미있었고 인상 깊었다. 만약에 한 번 더 똑같은 영화를 볼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기꺼이 의자에 앉아 이 영화를 즐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