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우진 해장국은 늘 대기가 길다. 먼저 식당에 가면 대기표부터 받아야 하는데, 대기표를 받은 후 대기 시간은 기본 1시간이다. 식당 맞은편에 냉난방이 되는 전용 대기실이 있고, 그곳에서 기다리면 안내방송으로 번호를 불러준다. 난 이번 제주 여행에서 엄마와 이틀먼저 제주에 가 있었고, 다른 가족들이 합류하기로 했다. 나는 우진 해장국을 먹어봤지만, 다들 먹어보지 않았다고 하기에, 우진해장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엄마와 조금 먼저 우진해장국에 가서 대기표를 뽑았다. 우리 대기표는 110번이었다.
공항에서 10분 거리이니 가족들이 합류해서 별로 기다리지 않고 식당에 입장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공항에 사람이 많아서 택시 타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대기표를 하나 더 받았다. 몇 분 사이에 벌써 대기표가 130번이었다. 대기실은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고, 엄마와 나는 대기실을 나와 식당 문 앞 대기의자에 앉아 가족들을 기다렸다.
조금 늦을지 모른다던 가족들은 대기 번호 100번쯤을 부를 때 딱 맞춰 도착했다. 이제 10팀만 기다리면 입장이 가능했다. 식당 앞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엄마와 내 옆에는 불만 많은 초등학생이 앉아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까? 어른도 기다리기 힘든 대기시간이니 투덜투덜 대는 것도 이해가 됐다. "엄마, 이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맛없으면 어떻게 해?" "엄마, 160번이면 언제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엄마, 너무 배고파 ㅠㅠ" 옆에서 투덜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물었다. "대기 번호 몇 번이에요?" 그 어린이는 "160번이요"하며 울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예비용으로 뽑아두었던 130번 대기표를 꺼내 그 어린이에게 보여주며 "이거 줄게요"했다. 어린이는 낯선 사람이 뭔갈 준다고 하자 겁이 났는지 아니면 넙쭉 받기가 쑥스러웠는지 "아니에요 괜찮습니다"라며 사양했다. 뭐, 받지 않겠다는데 억지로 줄 수도 없지, 하고 다시 넣으려는데 그 순간 그 대화를 지켜보던 그 어린이의 어머니가 쏜살같이 달려와 "감사합니다!!!"하고 외치며 대기표를 받아갔다. 사양했던 어린이도 대기순번이 빨라지자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 어린이는 엄마에게 허락을 구하더니 원래 들고 있던 160번 대기표를 옆에서 190번대 번호표를 들고 있던 누나에게 건넸다. 번호표의 은혜가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대기시간은 지루했지만, 다들 조금은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