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eeze lee Oct 27. 2024

교실 에피소드 2

-선생님 요즘 빵순이는 얼마큼 컸어요-

올해 2월 설날에 시댁에 갔다가 근처에 농장을 하시는 시 작은 아버님께서 요리해 먹으라며 갓 낳은 오골계란을 주셨다.  엄청 고소하다고 하셔서 '집에 가서 계란프라이나 해 먹어야지'라고 했는데 둘째 아이가 갑자기 "여기서 병아리 나와요?" 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작은 아버님이 "그럼~!"이라고 하셨고 아이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계란을 휴지로 감싸서 이불 안에 넣어두고 자신도 같이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이건 뭐 에디슨 전기도 읽히지 않았는데 책에서 보던 에디슨 모습과 흡사한 모습이라 흐뭇함과 당황스러움이 교차하였다. '그렇게 해서는 병아리 안 나와'하기를 반복해도 아이의 집념은 멈추질 않았다. 심지어 핸드폰 유튜브를 검색하여 어미닭소리까지 들려주었다. 남편은 어느새 부화기를 검색하고 있었고 설날이라 배송은 늦어지게 되어 어떻게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때 번뜩 막냇동생 시아버님이 닭을 키우신다는 것이 떠올랐다. 시댁에 간 동생에게 연락하여 부화기 좀 얻어올 수 있냐고 하자 마침 시댁을 안 떠난 동생이 부화기를 가져다 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설날 다음날 만난 동생에게서 부화기를 받아 미션임파서블 작전같이 가깟으로 오골계란 부화기에서 키우기가 시작되었다.


병아리는 한 달여 정도 후 부화된다기에 부화기에 물도 적당히 채워주고 온도도 맞춰서 수시로 들여다보며 한 달을 기다렸다. 우리 둘째에게는 한 달이 꽤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3월 4일 월요일은 첫 학기 시작이라 교사들도 미리 자기소개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특별한 스토리가 없는 한 자기소개는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거 같다. 나도 독서, 영화 보기, 그림 끄적거리기 등의 평범한 취미를 가진 터라 무언가 임팩트 있고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자기소개는 없을까 생각하다가 마침 내가 부화시키고 있는 알이 생각나서 자기소개에 끼워 넣었다. 처음에는 아직 낯선 교실과 선생님에게 긴장된 모습을 보이던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고 '우와~'하는 탄성이 터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병아리는 언제 나오냐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래서 병아리가 태어나면 꼭 알려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2024년 2월 10일 오골계 알 3개 부화기에 넣음

그러고 나서 3일 후 3월 7일 목요일 드디어 알리 조금씩 깨지면서 드디어 병아리가 나왔다. 한 알은 아쉽게 안에서 쪼아대서 스스로 하게 둔다고 기다렸다가 어느 순간 움직임이 없어 까보니 죽어 있었다. (아뿔싸 이럴 줄 알았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줬을 텐데) 이렇게 나처럼 기다리다 죽었다는 사례가 블로그에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알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알을 깨는 걸 도와주기로 했다. 그래서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는 거구나 싶었다(역시 우리 선조들은 지혜로우시다) 그래서 드디어 2번째 알은 성공! 나오자마자 걷고 물에 젖어 볼품없지만 부르르 떨며 스스로 말리고 하루를 지내니 뽀송뽀송 예쁜 모습을 드러냈다.

3월 7일 태어난 초코는 남편이 설치한 투명박스 안 온도유지용 백열등 아래서 잠이 들었다.

오골계 병아리 초쿄 3월 7일 태어남.                                            깃털이 어느 정도 말라 뽀송뽀송해짐


오골계라 온몸이 검지만 배 부분은 노란 바닐라 색이라 어쩜 저리 조화로운 색깔로 태어났을까 싶을 정도로 예뻤다. 눈은 까만데 검은 털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반짝이는 눈망울 때문에 어느 정말 구별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태어나서 내 눈에 캔디인지 다리도 쭉쭉 길고 내가 본 어떤 병아리 보다도 예뻤다. 둘째 아이는 초코라고 이름을 지었고 우리는 외출했다 오면 초코가 든 박스를 보러 맨 먼저 가서 초코를 손에 올리고 뺨을 비비거나 뽀뽀를 해 주었다.

동물을 키우면 기분이 좋아지는 호르몬 세로토닌이 나온다는데 정말 작은 생명체 하나가 집안의 분위기를 다르게 만들었다.


나는 학교 아이들이 궁금해할 때마다 초쿄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 주었다. 첫날 초코를 소개해서 그런지 25명의 아이들 더하기 초코까지 26명이 함께 학기를 시작한 느낌이었다. 그중 유독 우리 초쿄를 예뻐하는 아이가 있었다. 소현(가명)이는 쉬는 시간에 교탁 앞을 지나다가도 '초쿄 요즘 어떻게 지내요?" "초쿄는 뭐 좋아해요" 등을 물어보았다 초쿄가 곡식사료도 먹지만 요즘 빵 부스러기를 주니 정말 잘 먹더라고 하니 그다음부터 우리 초쿄를 빵순이라고 불렀다. 새 이름이 생긴 것이다.


 초쿄는 우리 첫째가 태어날 때 껍질 깨는 것을 도와줘서 그런지 둘째를 잘 따랐다. 둘째가 가는 곳을 졸졸 따라가기도 하고 둘째가 어깨에 올려놓으면 어깨 주변을 돌아다니면 절대 내려오지 않았다.  

아이가 일부러 빨리 뛰면 초코도 따라서 종종걸음으로 달려오고 반대쪽으로 뛰면 초쿄도 반대쪽으로 뛰어왔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는 집이 그렇듯이 우리 집도 초쿄와의 생활로 웃음꽃이 피고 초코의 귀여운 사진과 동영상들이 핸드폰을 채워 나갔다.



  둘째는 초쿄를 자랑하고 싶어 동네 아이들을 데려오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병아리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났고 아직 새끼병아리이므로 많이 만지면 안 된다 등의 주의사항을 듣고 몇 명씩 데리고 왔다. 어느새 초코가 동네 스타가 되어 있었다.

초쿄는 좀 크자 상추도 잘 먹고 조나 쌀 등의 곡식도 잘 먹었다.


60여 일 지난 4월 말쯤이었다.

초코의 목이 살짝 돌아간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 목이 살짝 삐딱한 채로 걸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점점 밥도 잘 안 먹고 잘 걷지 않았고 걸어도 똑바로 걷지 못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이며 옆으로 걸었다.

  반려동물병원으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병아리는 받지 않는다면 딱 잘라 말했다. 우리는 시장 근처 가축병원을 수소문한 결과와 보라는 수의사분의 말씀을 듣고 에코가방에 잘 넣어 가 초코를 보여 드렸다. 그러자 백희나의 '알사탕'에 나오는 할아버지 같으신 수의사 분이 나오셔서 초코의 목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목뼈가 부러진 거 같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첫째가 축구를 좋아하여 집에서도 공을 차서 차지 말라고 몇 번 말했더니 이번에는 탱탱볼을 찼고 벽에 공이 맞는 소리에 초코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박스 벽을 부딪치기도 했었다. 공을 직접 맞아서 그런 건지 놀라서 박스벽에 부딪쳐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첫째 아이가 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이미 일이 일어난 것을 어찌하랴 나는 치료 방법을 묻자 진통주사는 놔주겠지만 안락사를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깁스를 할 수 없으니 테이프라도 붙여 주겠다고 하셨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너무너무 침통하고 슬펐다. 초코는 그 후 누워만 있어 친정 엄마가 일으켜서 일부러 운동도 시키고 햇빛 아래 박스를 놓아 볕도 쬐어주고 하셨는데  친정어머니가 어느 날 외출하고 들어와 보니 햇살 아래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직장에 우리 둘째는 학교에 있을 낮 시간이었다. (친정어머니는 근처에 사시며 오전 등교 및 오후에  돌아온 후 아이 간식 챙기는 것을 도와주신다.) 친정어머니는 아이가 오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날 것을 알고 하얀 거즈 천에 초코를 감싸고 근처 산에 묻어 주시고 좋은 곳으로 가도록 불경도 함께 외워주셨다고 한다. 우리 둘째에게는 몸집이 커지고 똥을 싸서 냄새도 나서 이제 시골 작은 할어버지댁에 가져다 드렸다고 말해 주었다.



  이후 작은 할아버님 집에 갔을 때 어떤 닭이냐고 물었을 때 제일 비슷한 닭을 가리켰는데 아이가 "응 왜 이렇게 안 닮았지?" 할 때 얼마나 진땀이 났는지 그래서 '이제는 많이 커서 달라졌지'라고 얼버무렸다.

한동안 초코 이야기를 쓰려고 해도 행복했던 기억과 고통스러운 기억이 함께 밀려와 몇 줄 쓰다가 멈추고 저장만 해두고 하였지만 언제가 꼭 써서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요즘도 우리 소현이는 지나갈 때마다 "선생님 빵순이 이제 엄청 컸겠네요. 어떻게 됐어요" 하면 " 응 이제 너무 커져서 시골에 갔다 놨어" "빵순이 이제 암컷이에요, 수컷이에요?" 해서 "암컷"이라고 했더니 최근에는 " 선생님 빵순이 이제 새끼 날 때 안 됐어요?" 한다. 그래서 "응 아직 어려서 좀 더 있다가 결혼해야 돼" 했다.

우리 소현이가 다가올 때마다 나는 하얀 거짓말을 해야 하지만 우리 초코를 기억해 주는 소현이 마음이 예쁘고 고맙다.

비록 60여 일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초코, 빵순이는 길쭉한 다리와 아름답고 부드러운 깃털을 가진 귀여움을 장착했던 병아리로 기억되고 있다.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행복했기를...


요즘도 우리 둘째 아이와는 초코에 대해 회상하며 행복한 기억을 떠올린다.

"엄마 초코처럼 예쁜 병아리는 본 적이 없어요. 초쿄 또 보고 싶어요."

"그래 맞아 초코같이 예쁜 병아리가 또 있을까 초쿄는 시골에서 잘 크고 있을 거야."

 2024년 봄날을 함께한 초코야 너와의 추억은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영원할 거야 거기서 행복하게 뛰어놀아 다음에 꼭 만나자 사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