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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lee Oct 20. 2024

교실 에피소드 1

자리 바꾸는 날

우리 반은 한 달에 한번 자리를 바꾸는데 규칙이 있다.

그 달 동안 수업 중  많이 떠들어서 집중을 못 했거나 친구들을 방해한 학생은 다음 달 바꿀 때 선생님이 지정한 좌석에 앉는 것이다. 학기 초 분명히 공지했기에 이에 이의를 다는 학생은 없다. 오히려 본인이 스스로 이번엔 지정된 좌석으로 가야 할 거 같다는 눈빛을 보내곤 한다.  그곳은 대체로 선생님의 시야권에 있는 앞 좌석이다.


자리 선택은 시력이 안 좋거나 맨뒤에 앉았던 학생에게 우선 권을 주고 그 외에는 컴퓨터 랜덤 번호 뽑기로 자리선택을 하므로 나름 공정하다. 그래서 비록 불명예스러울지라도 앞 좌석으로 온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학생도 있다.


이 날도 한 달 만에 자리 바꾸는 날이 되어 한 달간 수업 중 옆쪽 뒤쪽을 누비며 잡담을 했던 재성이(가명)에게 자리를 정해 주었다. 칠판과 TV과 잘 보이는 자리라 본인도 만족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차례차례 컴퓨터 랜덤(추첨) 번호로 자리를 선택해 갈 때였다.


우리 반에는 학기 초부터 말을 안 하는 아이가 있다. 그림일기에 글도 빼곡히 잘 쓰고 수학문제도 잘 풀고 그리기도 잘하는데 딱 하나 말을 안 하거나 하더라도 소머즈이거나 소리증폭기 같은 것이 있어야 들을 수 있는 학생이다. 오죽하면 국어 교과서를 차례로 읽도록 할 때 아이들은 초집중하여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어떤 날은 "선생님 수연이 목소리 들렸어요!!"하고 UFO라도 찾은 듯 신기해하는 학생들이 있다.


학기 초 어머니를 만나 뵈었을 때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시며 작년 담임선생님도 수연이 목소리 한번 듣고 싶다고 하셨다고 한다.


수연이에게 어떤 자리에 앉겠다며 TV화면으로 남은 좌석을 보여주자 한참 쳐다볼  대답이 없어 "선생님이 자리 정해줄까? "하니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나는 남은 자리를 살피다 맨 앞자리인 재성이 옆자리를 가리키며 "여기 어때?" 하자 정말 슬로비디오 같은 고갯짓으로 좋다고 사인을 보낸다. 그런데 재성이가 갑자기 당황하며

"선생님 저 자리 바꿔주시면 안 돼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반 제일 수단맨과  침묵소녀가 짝으로 만난 것이다.


근데 이 모습이 마치 사극의 관가에서 죄인이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살려주세요!" 같은 모습이어서  이쪽저쪽에서 아이들의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터졌다. 재성이에게 가장 큰 벌칙은 앞자리가 아니었다. 바로 말하려고 쳐다봐도 대답 없는 메아리 같은 친구와 앉게 된 것이다.  한 달 후 두 아이의 시너지로 한 아이는 좀 더 차분해지고 한 아이는 좀 더 말하고 싶어 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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