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달 동안 수업 중 많이 떠들어서 집중을 못 했거나 친구들을 방해한 학생은 다음 달 바꿀 때 선생님이 지정한 좌석에 앉는 것이다. 학기 초 분명히 공지했기에 이에 이의를 다는 학생은 없다. 오히려 본인이 스스로 이번엔 지정된 좌석으로 가야 할 거 같다는 눈빛을 보내곤 한다. 그곳은 대체로 선생님의 시야권에 있는 앞 좌석이다.
자리 선택은 시력이 안 좋거나 맨뒤에 앉았던 학생에게 우선 권을 주고 그 외에는 컴퓨터 랜덤 번호 뽑기로 자리선택을 하므로 나름 공정하다. 그래서 비록 불명예스러울지라도 앞 좌석으로 온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학생도 있다.
이 날도 한 달 만에 자리 바꾸는 날이 되어 한 달간 수업 중 옆쪽 뒤쪽을 누비며 잡담을 했던 재성이(가명)에게 자리를 정해 주었다. 칠판과 TV과 잘 보이는 자리라 본인도 만족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차례차례 컴퓨터 랜덤(추첨) 번호로 자리를 선택해 갈 때였다.
우리 반에는 학기 초부터 말을 안 하는 아이가 있다. 그림일기에 글도 빼곡히 잘 쓰고 수학문제도 잘 풀고 그리기도 잘하는데 딱 하나 말을 안 하거나 하더라도 소머즈이거나 소리증폭기 같은 것이 있어야 들을 수 있는 학생이다. 오죽하면 국어 교과서를 차례로 읽도록 할 때 아이들은 초집중하여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어떤 날은 "선생님 수연이 목소리 들렸어요!!"하고 UFO라도 찾은 듯 신기해하는 학생들이 있다.
학기 초 어머니를 만나 뵈었을 때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시며 작년 담임선생님도 수연이 목소리 한번 듣고 싶다고 하셨다고 한다.
수연이에게 어떤 자리에 앉겠다며 TV화면으로 남은 좌석을 보여주자 한참 쳐다볼 뿐 대답이 없어 "선생님이 자리 정해줄까? "하니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나는 남은 자리를 살피다 맨 앞자리인 재성이 옆자리를 가리키며 "여기 어때?" 하자 정말 슬로비디오 같은 고갯짓으로 좋다고 사인을 보낸다. 그런데 재성이가 갑자기 당황하며
"선생님 저 자리 바꿔주시면 안 돼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반 제일 수단맨과 침묵소녀가 짝으로 만난 것이다.
근데 이 모습이 마치 사극의 관가에서 죄인이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살려주세요!" 같은 모습이어서 이쪽저쪽에서 아이들의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터졌다. 재성이에게 가장 큰 벌칙은 앞자리가 아니었다. 바로 말하려고 쳐다봐도 대답 없는 메아리 같은 친구와 앉게 된 것이다. 한 달 후 두 아이의 시너지로 한 아이는 좀 더 차분해지고 한 아이는 좀 더 말하고 싶어 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