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 하다가 끝난 인생>
석가모니는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사람은 왜 태어났는가. 왜 병들고, 왜 늙고, 왜 고통받고,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 ‘왜’의 연쇄 속에서 그는 깨달음을 얻었고, 부처가 되었다.
어느 날, 나에게도 그 질문이 찾아왔다.
혈액암. 갑작스레 덮쳐왔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치료 중에도 죽을 수 있습니다.”
숨골을 타고 전율이 치밀었다.
목덜미를 따라 번져가는 그 한 줄기 소름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단숨에 꿰뚫었다.
나는 허겁지겁 살았다.
그렇게 살아오며 내가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은 결국 하나, 돈이었다.
타인의 시선, 세상의 평가 — 모두 돈을 둘러싼 것들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잊고 살았다.
소심한 성격 탓에 늘 긴장했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나를 숨겼다.
내일 죽는다면, 억만금을 가진들 무슨 소용인가.
수많은 소유는 한순간에 무의미해진다.
한없이 싸늘한 인생. 무가치한 삶이었다.
나는 되묻는다.
왜 이렇게 살아왔나.
어떻게 이토록 허망하게 살았을까.
내 인생에는 내가 없었다.
쭉정이 같은 존재로, 황량한 풍경 속을 맴돌며 나는 나를 잃고 살았다.
지금까지의 나는 타인의 기대, 내 안의 욕망, 교만과 분노로 짜인 가면에 불과했다.
죽음 앞에 선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모든 선택은 결국 내가 만든 것이었다.
무균실 침대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는 이 몸 —
그것은 내 선택의 결과였다.
나는 욕망의 경계를 넘으려 했고,
정해진 한계를 인정하지 못한 어리석은 바보였다.
갖지 못함에 분노했고,
성공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부자가 되지 않아도 되었는데,
나는 거기에만 집착했다.
내가 추구한 행복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기준을 좇았고,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었다.
나는 도시의 미로 속에서, 땅속 일개미처럼 움직였다.
그것은 행복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삶이었다.
그 중심에는 항상 — 돈, 돈, 돈이 있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나는 틀렸다.
내 삶은 헛수고였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
마음 한편에서 슬픔이 밀려온다.
행복은 물질의 소유에서 오지 않았다.
행복은 정신의 결과물이었다.
타인의 시선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 더 중요했다.
무균실 침대에 누워 있지만,
지금, 내 생각은 확장되고 있다.
사색은 깊어지고, 눈물 뒤에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나는 지혜의 옷깃을 잡고 있는 중이다.
나는 지식을 쌓기 위해,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박사 학위를 얻었다.
명예를 위해, 존경을 받기 위해.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었다.
삶의 지혜는 학위가 아니라 고통이 가르쳐 주었다.
좌절과 절망이야말로 나를 깨우는 스승이었다.
병실에서의 시간은 지루하지 않다.
처음 혈액암을 진단받았을 때의 극심한 공포는,
사고의 전환을 통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올바른 세상을 보고 싶다.
그 말은 곧,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다.
돈의 부족보다 더 큰 불행은, 정신의 빈곤이었다.
돈, 돈 하다가 도덕이 무너졌고,
돈, 돈 하다가 자극과 알코올에 중독됐고,
돈, 돈 하다가 자랑과 교만을 행복이라 착각했고,
돈, 돈 하다가 감각적 쾌락에 갇혀 정신의 기쁨을 몰랐고,
결국 돈, 돈 하다가 타인의 노예가 되었다면 —
그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저, 불쌍한 인생일 뿐이다.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