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쾌락을 다시 배우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by 경국현

인생이 나의 것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던 시간보다,

내가 나를 주인으로 여기는 삶이

더 깊고 분명한 행복을 주었다.


지금이라는 시간,

여기라는 공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한다.


내가 살아온 시간은 오직 나만의 것이다.

개처럼 살았든, 정승처럼 살았든 —

그 모든 순간은 나의 고유한 삶이다.


나는 나만의 색을 지닌 존재다.

희로애락이 뒤섞인 감정들이 지금도 나를 흔든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기쁘며,

그 모든 감정이 나를 살게 한다.

행복과 불행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재미의 중심에는 ‘나’라는 인물이 있다.

내가 나를 즐겁게 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도 오래도록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


결국, 나를 웃게 하는 것도,

나를 울리는 것도 모두 내 마음이다.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조차도 특별해진다.

반대로, 내일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같은 시간도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감정은 마음이자 정신이며,

나를 이루는 또 하나의 본질이다.


나는 오랫동안 육체적 쾌락을 좇으며 살아왔다.

감각이 주는 즐거움에 의지하며,

그것만이 인생의 재미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다.

쾌락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정신적 쾌락은 육체와는 다른 깊이를 지닌다.

그것은 진리에 가까워질 때,

영혼이 감지하는 미묘하고 은은한 즐거움이다.


젊은 시절에는 종교적 진리를 좇았다.

예수의 말을 참된 진리로 믿고,

기도하며 살았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에 종교의 허상을 깨닫고 돌아섰다.


그리고 지천명에 이르러,

병 앞에 선 지금,

나는 다시 철학의 문을 두드린다.


이번엔 믿음이 아니라,

생각으로 다가가는 진리다.


나는 육체이고, 동시에 영혼이다.

내가 느끼는 쾌락은 이 두 축에서 비롯된다.

육체의 즐거움은 건강해야 가능하지만,

정신의 즐거움은 나이도, 병도, 장애도 가로막지 못한다.


오히려 늙을수록,

정신은 더욱 깊고 농밀해진다.

육체적 쾌락은 언제나 짧았다.

술에 취하고, 애인을 품고, 오락에 빠지고…

그 순간들은 달콤했지만

지나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왔다.


반면,

정신에서 오는 쾌락은

조용히 스며들어

몸을 맑히고,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영혼을 풍요롭게 한다.

생각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그 즐거움은 증폭된다.


이제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기쁘게 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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