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신에게 화가 난 어느날

<죽음앞에서 나는 신에게 분노하였다>

by 경국현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공간에서

삶의 균열이 생긴다.


그 결과는 공포일 수도, 환희일 수도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젊은 시절의 나는 그것을 모두 신의 뜻이라 여겼다.


그 시절,

나는 내 삶을 성찰하지 않은 채

사후의 세계에만 매달렸다.

고통은 신의 벌이었고,

작은 기쁨마저도 신의 축복이라 믿었다.


나는 끊임없이 용서를 빌고, 감사를 바쳤다.


고등학교 시절,

한 선배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버스 사고에서

열 명 중 한 명만 다쳤다면,

그는 자신의 죄 때문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반대로,

열 명 중 한 명만 살아남았을 때도,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같은 사건 앞에서도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그 차이를 우리는 개성이라 부른다.


백 명이 있다면, 백 가지 개성.

그 개성은 감성의 차이로,

결국은 인상(印象)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인상을 ‘사실’이라 착각한다는 점이다.


감정은 진실이 아니다.

그저, 인상일 뿐이다.


한 사건을 보고 나는 절망한다.

너는 웃는다.

껄껄 웃는 너를 보며 나는 분노한다.


사건이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을 해석한 나의 인상,

그리고 그 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너였다.


기억은 유쾌함과 불쾌함으로 나뉜다.

때로는 유쾌한 아홉 가지 기억도

단 하나의 불쾌함 앞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의 따뜻한 기억이

불쾌함을 다 지워버리기도 한다.


의식은 의지를 끌고 다닌다.

좋은 기억은 오래 남고,

나쁜 기억은 흐려진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죽음 앞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죽음은 끝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서울성모병원 응급실.

입안 가득 쓴맛이 맴돌고,

나는 침묵 속에서 떨고 있었다.


‘내가 죽어야만 할 만큼

큰 죄를 지었는가?’

나는 되묻는다.

기도하던 청춘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나는 신에게 화가 나 있다.


내가 죄가 있다면,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다.

그 죄로 인해 죽음이 온다면,

신은 잘못되었다.


나는 분노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 니체, 칸트도

이러한 질문에서 철학을 시작했다.


나 역시 그러하다.

신이 나를 비웃는 이 순간,

나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 철학이라는 문 앞에 선다.

분노를 안고, 생각으로 들어선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전 04화04 쾌락을 다시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