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고독속에 철학이 자란다

<고독과 철학의 시간>

by 경국현

신의 뒷발질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잔인한 생활이 이어진다.

숨을 죽인 채, 올가미에 걸린 짐승처럼 까칠하게 살아 있다.

항암의 고통이 밀려온다.


누워 있는 시간, 약물에 취해 고통은 줄어드나,

정신이 또렷하면 무료함이 밀려온다.

오히려 고통이 정신을 지배할 때는 무료함이 없다.

그때는 오직 아프다는 감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삶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내게 닥쳤어도 시간은 흐른다.


나는 고통과 싸우고, 무료함과도 싸운다.

그 싸움은 절망 속에서 벌어진다.

냉소적인 웃음이 내 얼굴을 스친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공허함을 불러온다.


시간이 흐르며, 내면의 변화가 일어난다.

외부에 집중하던 잡념은 줄어들고, 내부에 집중하는 명상이 늘어난다.

비자발적 명상은 자발적 명상으로 전환된다.


칼처럼 날 선 자각이 나를 벗긴다.

고립된 공간, 단절된 시간 속에서도 사고는 우주를 향한다.

통찰은 점점 깊어지고, 나는 마음의 풍요를 느낀다.

영혼과 정신이 가벼워진다.

유희의 감각이 살아난다.


무료함은 사라지고, 고통마저 견딜 수 있는 즐거움으로 바뀐다.

살고 싶다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벅찬 감정이다.


병원에서의 하루는 고독이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오직 고독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고독을 선택했다.


그것이 운명이 강요한 고독이라면 견딜 수 없었겠지만,

내 영혼은 스스로 고독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독립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렵다.

경계선 밖으로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운명에도 자발성과 비자발성이 있다.

대부분은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병실엔 여섯 명이 누워 있다.

젊은 이도, 늙은 이도 —

모두가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고독이라는 운명 아래 잠들어 있다.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고독은 절대적이지 않다.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고독은 절망이 되기도 하고 철학이 되기도 한다.


삶은 절망적인 권태로 물든다.

병든 몸, 무너진 삶.

살아 있다는 것조차 죽음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하지만 그 시간에도 나는 나의 사고력으로 지성을 확장한다.

철학, 별거 아니다.

철학은 생사의 뿌리에 박힌 생각의 행위다.


철학은 생명의 지배자로 살아가기 위한 자기 고백이다.

내가 철학이고,

지금 내가 철학의 공간과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병실에 누운 나는 죽어가고 있지만,

내면은 자라고 있다.

눈물이 흐르기 직전 고이지만, 이내 눈 안으로 스며든다.

슬픔도 아니고, 기쁨도 아닌 — 말 없는 눈물이다.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조용한 동기부여를 얻는다.

곁에는 아무도 없다.


무(無)만이 있다.

외면이 아닌 내면,

외부가 아닌 내부가 중요했다.


내가 불행하게 살아온 이유는 단 하나,

내 삶의 주도권이 운명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돈과 명예, 쾌락을 좇으며 나를 버리고 살았다.

370년 전, 스피노자는 말했다.

인간은 부와 명예,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이라고.

2,500년 전, 부처는 말했다.

쾌락을 좇는 인간은 반드시 고통받는다고.

그 말대로, 나는 바보였다.

멍청한 자, 어리석은 자 — 바로 나였다.



작가 소개

경국현,
부동산학 박사. 백혈병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죽을 뻔하고, 철학에 빠졌다』 화, 수, 목, 연재 중.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신과의 긴 대화를 이어간다.


“죽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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