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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2. 2024

36. 구멍 나거나 잃어버린 옷 (5월 10일 수)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사리아 Sarria ~ 포르토마린 Potomarin      

  우리가 머물렀던 펜션 일 층은 바(bar)다. 어제 펜션에 도착해서 체크인하려고 기다리는 동안 주인아저씨는 타파스를 만들어 주며 청소가 끝날 때까지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물론 무료였다.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 주인아저씨가 고마워서 오늘 아침밥은 바(bar)에서 사 먹고 느긋하게 출발했다.  

    

  사리아에서 출발하는 순례자들과 계속 걸어온 순례자가 합쳐지며 순례길은 새롭고 활기차고 들뜬 분위기가 되었다. 각양각색 배낭을 멘 청소년 단체 순례자들도 씩씩하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귀엽고 기특했다. 

  사리아를 벗어나 작은 언덕을 오르내렸다. 안개가 주위를 온통 뒤덮어 바로 몇 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나무가 울창한 길도 지나고, 목장도 지나고, 들판도 지났다. 

  집을 돌로 만들고 밭 주변에도 돌담으로 쌓아놓은 곳을 지났다. 돌이 많고 바람이 강한 지역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주변 자연환경을 이용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풍경은 아름다운데 오늘도 역시 가축 똥 냄새는 심했고, 여러 날 걸어도 적응되지 않는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100km대로 떨어진 다음부터는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자주 나타났고 우리도 카운트 다운하며 걸었다. 드디어 100km 표지석을 통과했다. 순례자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환호했다. 나는 기쁨과 뿌듯함 그리고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일어났다.      

        

100km 표지석 앞에서 순례자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축하했다.

  폭이 넓은 강 위의 긴 다리를 건너 오늘 목적지 포르토마린에 들어왔다. 높은 돌계단을 올라 중심가로 가니 십자가 조형물이 보였다. 우리는 포르토마린 글씨 앞 포토 존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알베르게(Manuel Hostel)로 향했다.

  다인실 침대 두 개와 이인실 방값이 별 차이 없어 이인실에서 묵었다. 주방을 사용할 수 있어 밥을 만들어 먹기로 하고, 브레이크타임 걱정을 하며 부지런히 장을 보러 갔는데 다행히 영업하고 있었다. 브레이크타임 문화는 여전히 적응하기 어렵다. 

  점심 겸 저녁을 만들어 먹고 거리를 구경하러 나갔다. 포르토마린 성당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성당과 달랐다. 단순한 외관과 성당 내부도 화려한 장식 없이 간단해서 현대적인 느낌이 들고 방어를 위한 성처럼 보인다. 우리는 기부하고 도장(쎄요)을 받았다. 저녁때가 되니 기온이 내려가고 추워지기 시작했다.    

 

  한 달 넘게 걸으니 남편 양말 두 켤레 모두 구멍 났다. 아침에 급한 대로 사리아 기념품 가게에서 양말을 사서 신었는데 너무 얇아 불편하다며 이곳 스포츠용품점에서 모가 많이 포함된 양말을 다시 샀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내 티셔츠와 양말 한 켤레가 안 보인다.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얼마 전 빨래를 다 걷었다고 생각했던 날, 잔디밭에 떨어진 남편 팬티를 뒤늦게 주워 온 적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세탁기와 건조기 또 빨랫줄에서 잃어버리지 않고 빨래를 제대로 챙기는 일은 쉽지 않다. 

  거의 매일 같은 옷만 입어서 등산바지 아랫단 근처도 마찰로 구멍이 뚫리고, 새로 사서 입고 왔던 상의도 낡았다. 한 달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4일만 지나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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