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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솜 Jul 15. 2023

너는 마치 카라멜 마끼아또, 오빠는 너무 달아서 뱉었어

바쁜 세상 속 빠르게 멸망해 버린 나의 두 번째 망한 소개팅!

기쁜 우리 젊은 날. 대다수 ‘우리’들의 관심사, ‘만남과 연애‘ 혹은 ’ 인연‘이란 게 그런 거 같아요. 결국 한정된 시간 안에 상대에게 매력을 어필하던가, 상대가 나의 매력을 알아보고 바로 낚아채야 합니다. 아니면 이 바쁜 세상, 그들은 스쳐 지나갑니다. 시절인연이든 그 인연이 아무것도 되지 않을 인연이든, 연인이 될 인연이든, 악연이든. 결국 서로의 타이밍이 만남으로 이어지려면 어느 정도 서로가 맞아야 하고 또 끌려야 되지요.


처참하게 멸망해 버린 첫 번째 소개팅을 이후로, 다시는 소개팅을 안 하는 게 심신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퍽퍽한 어른의 삶에 있어 저는 연애를 항상 갈망했지만, 상처는 또 받기 싫더라고요. 사실 별거 아닌데 말이에요. 당연히 사람의 인연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또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할 의무도 없고요. 상대의 잘못도 전혀 없고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첫 번째 소개팅 때, 인생 첫 소개팅 기념 주변 사람들한테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나갔습니다. 당연히 소개팅 결과도 궁금해하셨고요.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겠어요. 쿨하게 망했고 다신 소개팅 안 할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보다 한 7살 정도 많으신 주변 동료 한 분이, 젊은 나이에 소개팅 10번은 해야지 마음 맞는 1명 만나는 거라고 무슨 소리냐며 안 그래도 한 명을 물어왔다고 그러셨어요. 그냥 또 망할 것 같아서 안 한다고 잘랐습니다. 첫 번째 소개팅과 다른 점은, 이번엔 상대한테 이미 제 사진이 넘어갔고, 상대방이 자기 스타일이라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그러셨대요. 한 세네 시간 있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생 짧은데 또 못할 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사진 넘어갔으니 저도 상대방 사진 좀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근데 사진들이 하나같이 마스크를 끼고 계셨어요. 사람은 만나봐야 알죠. 그래서 콜을 외치고 며칠 있다가 2박 3일로 일본여행을 갔어요. 여행 도중에 두 번째 소개팅 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여행 중이라 길게 연락은 못했지만 소개팅 약속을 빠르게 잡았습니다. 두 번째 소개팅, 그분은 정말 젠틀하시고 정중하셨습니다. 5살 정도 연상이었고 오빠였어요. 말띠. 흔하지 않은 이름. 탄력근무로 근무 시간이 꽤 여유 있던 엔지니어. 서울 쪽에 거주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가 퇴근 후에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제 집 근처에서 보자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어요. 참 감사하더라고요. 결말을 모르는 이 만남에 그 정도의 넘치는 성의를 보이시는 게 말이에요.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꽤 멀었을 텐데, 만나기 전부터 호감이 상승했어요. 느낌이 좋았어요. 첫 번째 소개팅의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이번엔 결코 ‘애프터’를 받아보리라 다짐하며.


집 주변 지하철 역에서 만났고, 자차를 끌고 오셔서 그분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미리 고르신 식당은 우리 집 앞.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나를 식당으로 부르지 하는 생각이 들긴 들었어요. 동네에서 하는 소개팅도 색다르더라고요.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저희 딱 한 테이블 있었습니다. 손님이 우리 둘 밖에 없어서 상당히 부끄러웠습니다. 사장님과 직원분들이 저희 이야기를 다 엿들을 정도로 고요해서요. 어색했어요. 사장님께서 소개팅하는 걸 아시고는 두 분 너무 보기 좋다며 서비스로 이름 모를 디저트도 만들어주셨습니다. 이번에 만난 분은 뭔가 저와 공통점이 꽤 많았어요. 그분도 영국으로 해외 연수도 갔다 오고 저도 미국에서 해외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역마살 낀 일상의 공통점을 서로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직업 특성상 해외 출장도 잦고, 곧 몇 주 뒤에 인도로 출장을 가실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식당조명이 꽤 어두웠는데, 얼굴은 잘 안 보였던 거 같아요. 조곤조곤 말을 참 잘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눈을 참 빤히 잘 쳐다보신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헛소리는 안 하고 싶었는데, 망한 첫 번째 소개팅 이야기도 해드린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자신이 소개팅에서 본래 매력을 뽐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 냅다 본인은 소개팅에는 취약하나, 파보면 매력이 넘치는 갯벌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분위기도 좋았고, 카페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데려다주셨어요. 그리고 바로 애프터를 잡으시더라고요.  


분명 설레고 좋았는데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정말 좋았고, 괜찮았는데, 몇 주 뒤에 애프터에서 본 그분에게 전 그다지 끌림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정중하고, 젠틀하셨지만, 가슴이 더 떨린다거나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어요. 그냥 좋은 오빠동생사이로 지내자는 이 말. 참 상투적이지만, 딱 그랬어요. 좋은 오빠동생 사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 같았어요. 정말 저도 미치겠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안 끌리는 건 어찌할 수가 없죠. 그건 그분에게도 실례니까요.


강남에서의 애프터. 조명이 꽤 밝은 이자카야였는데요. 첫 번째 만남이랑 느낌이 달랐어요. 여러분, 소개팅은 되도록 조명이 어두운 곳에서 하는 게 성공의 치트키 같아요. 분위기가 또 중요합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 보니, 본인은 장손이라고 알려주시더라고요. 매력어필인가요? 3대 독자셨습니다.


2차로 맥주까지 한 잔 하고, 총총총 집으로 갔습니다. 마음이 심란했어요. 전혀 떨리지가 않는데 어떡해요.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헤어지고 집으로 와서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랑받는 연애를 하면 좋지만 어느 정도의 끌림이 저는 필요했어요. 그분께서 먼저 다음날 연락이 오셨더라고요.


‘굿모닝!’


소개팅 많이 안 해보았으니, 소개팅하고 잘 거절하는 법은 또 몰랐습니다. 구글에 검색해서 적당한 문구를 고르고, 첨삭까지 해서 보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해 보았는데, 정말 좋으신 분인 거 같은데, 저보다 더 잘 맞는 분 만나실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오빠 이상으로의 감정은 안 들 거 같다고 죄송하다고요. 바로 연락이 오셨어요. 괜찮다고, 심심할 때 연락하는 친구로 지내자고요. 그분과의 짧은 만남이 끝난 지 거의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전 친구로는 못 지낼 것 같아서 연락은 끊었습니다.


참 사람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왜 내가 안 좋아하는 걸까요. 정말 스윗, 젠틀하셨지만, 결국 내 마음이 끌리지 못해서 끝난 인연. 카라멜 마끼아또처럼 너무 달아서 뱉었던 오빠. 어디서든 행복하시고 정말 좋은 분 만났으면 하는 말띠 오빠. 그렇게 소개팅과 애프터가 끝나고, 저는 미치도록 끌렸는데 상해있었던 딸기 요거트 같은 분을 만납니다. 우린 가끔 상한 음식도 먹죠. 그건 다음장에 쓸게요.


추신. 오빠를 많이 좋아해 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분명 있을 거예요.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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