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여정
단순한 업무 관계가 아니었다. 6월 초 대표의 해외 출장 기간에도, 그의 집안 사정은 잠잠할 날이 없었다. 어머니와 대표, 두 분이 함께 사는데 공간의 벽은 남한과 북한 사이 같다. 서로의 말은 계속 어긋났고, 나는 그 간격을 좁히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대표는 해외 출장 출국 당일 날까지 싸우다가, 심지어 귀국 사실까지 숨긴 채 한국에 들어와 호텔에 투숙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어머니는 내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쏟아냈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대표는 필요할 때마다 자신이 투숙 중인 호텔로 나를 수시로 불러냈다. 두 사람 그 중간에서 나는, 마치 지우개가 되어 서로의 잘잘못을 지우며 점점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 대표는 내 삶으로 때까치처럼 계속 진입했다.
그는 때로는 나를 지지했고, 때로는 날카롭게 긁어댔다.
날카롭게 긁을 때는 "넌 내가 말한 건 안 한다. 넌 고집스럽다. 넌 이상하다." 그렇게 말해놓고는 명함 지갑과 옷을 챙겨주며 지지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넌 나 없으면 어떻게 할래." 나는 고마움 마음이 먼저 들긴 했지만 동시에 서운함을 안고 서 있었다.
미움과 감사가 한 잔에 섞이면, 마지막에 남는 건 늘 쓸쓸함과 쓴맛이었다.
2025년 7월 13일, 나는 오늘 김 대표가 정말이지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예전에 이렇게 말했었다. "같이 일을 시작해도 결실을 맺는 속도가 서로 다르면 함께 못 가." 그 말을 들을 때는 내가 노력하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랬다. 그때 나는 우리가 오래갈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는 지금은 확신이 없다. 버틸 자신이 없었다. 특히 대표가 출장에서 돌아온 이후 3주 동안, 나는 쉼 없이 악소리를 들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웃기게도 미워하면서도 그의 어떤 면은 닮고 싶었습니다. 존경과 반감이 같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데, 오늘은 어느 쪽으로 손을 넣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삶에서 어머니를 돌보는 시간만으로도 하루의 절반을 쓰는 나였는데, 엄마를 조금씩 포기하면서까지 대표에게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표는 버거웠다. 대표까지 내가 관리할 수는 없다는 것을. 대표는 내 시간과 내 방식과 너무나도 달랐다.
오늘의 대표는 마치 루시퍼처럼 느껴졌지만, 언젠가 그가 천사를 사모하던 사람이었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놓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임을 깨달은 이상, 나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제는 관계보다 절차, 감정보다 사실, 오해보다 정정이 먼저다.
나의 결론은 명확하다. 나는 경계를 놓쳤고, 전달을 그르쳤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정확히 말하겠다.
이제는 단호함으로 순서를 세운다.
말하기—정정—멈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