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라는 미지의 언어

나를 찾아가는 여정

by sunsun

평일 아침 5시, 일어나기 전 나는 누워서 “주님이 늘 함께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매일 다짐한다. "오늘 일정도 잘하고, 정신 차리자."

6시 영어 전화수업, 7시 책 읽기, 8시 식사 준비. 나는 오늘도 계획대로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애썼다.

계획대로 움직이면 안전하다고 믿었으니까.

대표가 아침 6시 반에 전화를 걸어 벼락같은 지시를 쏟아냈을 때도, 정훈 작가와의 계약서가 찢겨 나갔을 때도, 나는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 함께 무너지는 사람이었다.

나의 하루는 언제나 철저한 계획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탑 같았다.

이 날은 엄마의 치료 일정과 겹쳐 대표와 함께 움직였다. 11시 20분, 기흥구 영덕동 중부대로 55번길, 버스정류장 앞에서 접촉 사고가 났다. 상대방 차가 내 차 옆구리를 스쳤고, 상대 운전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런 일로 경찰을 왜 불러요?" 갓길에 얼른 차를 세우고 나는 차 옆구리를 살폈다. 육안으로 보기엔 별거 없었다. 그래서 나도 별거 아니란 생각에 그냥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엄마 치료받으러 가는 길이라 늦으면 곤란했다. 정훈 작가에게 "계약 파기냐"라고 물었을 때도 그랬다. 정확히 말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나는 "맞아"라고 대답했고 모든 게 꼬였다. 그 짧은 순간에도, '정확함'보다 '회피'가 먼저였다.

옆자리에서 김정우 대표가 낮게 말했다. "경찰에 신고해!"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미 내 손은 보험회사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대표는 다시, 이번엔 더 강하게 말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해!"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보험회사 직원과 통화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였다. '왜 나는 부탁을 할 생각을 못 할까?' 하는 질문이 뒤늦게 머리를 스쳤다.

나중에 생각이 들었다. 부탁이 무서웠다. 부탁하면 거절당할까 봐. 부탁하면 내가 무능해 보일까 봐. 부탁하면 빚진 것 같아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부탁이 서툴렀다. 시키는 대로 하면 했고,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릴 적 나의 주된 돌봄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지적·신체장애가 있던 엄마는 나를 돌볼 형편이 못 됐다. 밥은 늘 보온으로 해놔서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외할머니가 1~2주에 한 번씩 오셔서 반찬을 챙겨 넣어 주셨다. 하지만 할머니 반찬도 2~3일이면 말라비틀어졌다. 반찬을 꺼낸 그대로 뚜껑을 덮지 않고 냉장고에 넣거나, 먹던 음식을 아무 데나 두어 쓰레기가 되어도 엄마는 몰랐다. 그 시절 나는 그게 당연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세상과 나의 현실은 달랐지만, 나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다르구나',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엄마 아빠의 넉넉하지 않은 보살핌은 나에게 결핍이었지만, 동시에 오랜 시간 어두움으로 남았다. 그 경험들이 나를 '부탁'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대표는 세 번째로 말했다. 이번엔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지실장, 경찰 불러!"

나는 보험회사 직원에게 말했다. "네, 기흥구 영덕동입니다. 접촉 사고요."

그런 나를 보고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한숨 소리를 들으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심부름조차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나였다. 아르바이트생을 가르칠 때도 그랬다. 시키는 게 어려웠다. 부탁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 다 했다. 이 상황은 상대방이 먼저 연락처를 주고 상황 정리를 해야 하는데, 반대로 내가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거지 같았다. 착한 척도 아니고, 그저 상대방이 이쯤에서 알아서 해주길 바랐다.

나는 늘 '알아서 해주길' 바랐다. 말하지 않아도, 부탁하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서 도와주길. 어머니와 언니 사이에서도 그랬다. 나는 중재자가 되려 했지만, 정작 두 사람에게 "직접 대화하세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부탁이 아니라 회피였다. 지금은 틀렸어도 일단 가고 싶었고, 인정한다. 쉬운 길을 돌아왔다는 것을. 명함도 그랬고, 내 판단이 맞지 않는 것은 내가 경험이 없고 하기 싫은 것이라고 둘러댔다. 나는 계속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회피—실수—다짐—회피. 이 고리를 끊지 못하면, 나는 평생 이렇게 살 것이다.

김 대표는 그 모든 걸 관찰하며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경찰에 신고해!!!"라고 무수히 외쳤던 단 한 사람.

그런데 왜 말만 했을까? 정말 궁금했다. 옆에 있으면서 왜 직접 신고하지 않았을까?

나를 가르치려던 걸까? 아니면 내가 알아서 하길 바란 걸까? 부탁을 기다린 걸까?

아니면 그냥 지켜보기만 한 걸까? 지금도 모르겠다. 대표가 뭘 원했는지.

그날 대표의 한숨이 나를 가르치려는 인내였는지, 아니면 답답함의 표현이었는지. 야속한 건지. 배려인 건지 방관인 건지.

대표는 물었다. "경찰에 신고하라고 부탁도 못하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부탁할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런데 이 질문도 혼란스럽다.

그럼 부탁을 기다렸다는 건가? 근데 왜 세 번이나 "신고해"라고 말했을까? 그게 지시가 아니라 힌트였던 건가? 진정 내 입으로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길 바란 건가? 정훈 작가의 계약서가 찢어졌을 때도 그랬다. 대표는 내가 정확히 말하길 기다렸다. 명함을 챙기지 못했을 때도, 대표는 내가 시스템을 만들길 기다렸다. 그런데 왜 직접 말해주지 않았을까? 왜 나를 헤매게 두었을까? 이게 교육인가?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건가? 아니면 대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지켜본 건가?

그러다 결론이 났다. 나는 대표의 의도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대표가 뭘 원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뭘 해야 했느냐니까.

"넌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 "넌 아무것도 못 느끼니?" "경찰에 신고하라고 부탁도 못하냐?" 이 질문들이 비난인지, 질문인지, 가르침인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나는 부탁하지 못했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오늘도 실수했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부탁하지 못했다. 또 혼자 떠안았다.

하지만 오늘의 실수는 어제와 다르다.


어제는 실수한 줄도 몰랐다. 오늘은 안다.


어제는 '알겠습니다'라고 얼버무렸다. 오늘은 '못 배웠습니다'라고 인정했다.


어제는 다음을 준비하지 않았다. 오늘은 문장을 만들었다.

"대표님, 경찰에 신고해 주시겠어요?"

"죄송합니다. 지금 명함이 없는데, 이메일로 보내드려도 될까요?"

"제가 확인을 잘못했습니다. 30분만 시간을 주시겠어요?"

구체적인 문장이 있으면, 다음엔 할 수 있다. 나는 느리지만, 문장을 외운다. 그래서 결국 말한다.


내가 찾아 헤매던 '나의 언어'에는, 결국 '부탁'이라는 용감한 문장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나의 언어는 솔직한 표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때부터 나는 말에 조금 더 집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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