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지.

내 생각은 그렇지 않지만.

by 조약돌 생각

우리는 살다 보면,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반기고,

또 누군가는 익숙한 일상 속의 안정을 더 선호한다.


어떤 사람은 값진 경험을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소소한 즐거움이나 음식 같은 익숙한 것들에 더 큰 가치를 두기도 한다.


누군가는 ‘무엇이든 직접 해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실천에 옮기고,

또 누군가는 실천에 옮기지는 않고 아직 생각을 정리하는 중일 수도 있다. 말보다 마음속 결심이 먼저일 수 있으니까.


삶을 대하는 태도와 선택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정답이나 오답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다름은 자연스럽다,

그저 각자의 속도와 시선이 다를 뿐.


다만, 그런 상황에 대한 고민이 생기곤 한다.

'이 다름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을 견지해야 할까.'




지금보다 많은 시점 차이는 나지 않지만 과거의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의 모습을 견디지 못해 했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내가 겪어보니 이 길이 정답이더라' 라며,

마치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며 고리타분하게 굴곤 했다.


그때의 난 다소 모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좋게 말하면 그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나와 결을 맞추려 했고,

나쁘게 말하면 권한도 없이 그 사람의 인생 가치관을 훼손하려 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그럴 수 있지'란 마인드셋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결혼"이 그것이다.


아마 나중에 와이프가 보면 깜짝 놀라고 기분 나빠할 것 같아 미리 말해둔다.

결혼생활이 불행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그러면 왜 '결혼'이 계기인지를 물어보면,

서로 가치관이 달랐고, 중점을 둔 삶의 지향점이 달랐고, 돈을 대하는 태도, 심지어 정치색도 달랐는데,

이 모든 요소들이 한쪽에 치중되지 않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다시 세팅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런 과정 속에서 의견 충돌과 극적인 타협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가정의 평화를 위한 선택지'였다.

(와이프를 이기려고 들면 가정의 불화가 오고, 남편이 난 혼나려고 결혼했다 라고 생각해야 하더라)


그렇다고 와이프가 내 의견을 묵살한다는 것은 아니고,

최소한 불합리한 내 의견에 대해서만큼은 제고해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던 것이 아닐까.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그때 장착한(?)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인드셋은 활용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흑백논리가 어느 때보다 심해진 요즘,

'너가 틀리고 내가 맞아' 와 같은 의견을 접하거나 불합리한 주장에 대해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속으로 되뇌이곤 한다.


그럴 수 있지.

무엇보다 소중한 내 인생과 그것을 있게 해주는 시간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외부에서 접한 요란하고 부정적인 요소들을 끌어오지 않으려고.


그래서 다시 내게 묻는다.

'그래도 내 생각은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돌아오는 한결 같다는 것.

'5분 안에 바꿀 수 없다면, 반드시 말로 설득하려 들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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