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하면 1인실보다는 다인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따뜻한 가정에서도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 때때로 서운함을 느낄 때가 많다. 하물며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힘든 병마와 싸우기 위해 모인 병실에서 느끼는 서운함은 오죽할까?
병원의 다인실에서의 생활은 마치 또 다른 세계의 축소판과 같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아픔과 불편을 안고 서로를 마주한다. 매번 병원의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나는 그들과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예전에는 6인실이 기본이었지만, 요즘은 4인실이 보편화되었다. 한방에 성격, 병명, 나이가 다른 사람들이 모인 병실에서는 별일이 다 생긴다. 잠깐 보고 가는 사이라도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 중요한 건 기본적인 예의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게 문제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한 나는 어딜 가나 적응이 빠르다. 조용한 곳에 가면 조용히 있고, 시끄러운 병실에 가면 거기에 맞게 적응한다. 병원 생활에 익숙한 나는 병실의 문제를 최대한 중재해 주는 역할도 잘한다.
하지만, 항상 웃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나의 본심을 알기에 아껴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다.
병원 특성상 지금까지는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입원한 경우가 많다. 본병원으로 발을 옮긴 나는 4인실로 배정받았다. 그곳에는 안면마비와 중풍으로 고생하는 두 언니가 내 자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몸은 외형적으로는 건강해 보였으나, 내면은 네 번의 유방암 수술과 골수암이 의심되는 현실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중풍을 앓고 있는 언니는 나의 외모에 속아 처음부터 나를 경계했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멀쩡하구먼. 왜 입원해요?”라며 큰언니는 처음부터 기분 좋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입원 첫날은 나에게도 힘든 날이다. 먼 길을 와서 입원 수속도 밟아야 하고 짐도 챙겨야 하기에 몸이 주체할 수 없이 지친다. 특히 대학병원은 더하다. 이런 날은 누구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쉬고만 싶었다.
두 언니는 나를 쳐다보며 꾸준하게 질문이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웃으면서
“제가 암 수술을 4번이나 했고, 허리가 아파서 검사해 본 결과 골수암이 의심된다고 해서 온 거예요. 병원에서 멀쩡한 사람을 입원시켜 주겠어요?”라고 말하자, 큰 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멀쩡하구먼. 내가 제일 심각하지! 안면마비는 금방 낫는다.”라며 나를 빗대어 다른 언니에게 말했다. 나는 커튼을 치고 혼자 쉬고 싶었다. 하지만, 두 언니와 의사 간호사들의 질문이 쉬게 놔두질 않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뒤,
“언니들! 죄송한데 제가 좀 늦게 일어나요. 늦게 자고요. 저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싶은데 잠은 제 맘대로 안 돼요. 아침에만 조금 양해 부탁드려요.”라고 말하고 첫날밤을 잤다.
내 옆 중풍 언니의 코골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귀마개를 아무리 꽉 끼어도 고요한 밤에 울리는 코 고는 소리를 완전히 차단할 순 없었다. 다음날 안면마비 언니가 “잘 잤어?”라며 아침 인사를 했다. 나는 웃으면서,
“큰언니가 피곤하셨나 봐요? 코를 심하게 고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앞의 언니가 나를 불렀다. 큰언니가 나를 2인실이나 다른 병실로 가라고 했단다. 나는 웃으면서 “왜요?”라고 묻자,
“자기 오기 전에 새벽 5시부터 찬송가 크게 틀었어. 그러면 어제 퇴원한 분이 찬양했거든. 그리고 큰소리로 기도하고. 자기 오니깐 그걸 못하잖아. 답답하겠지?”
“언니는 절에 다니시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한방에서 그럴 수 있어요?”
“나는 늦게 왔으니깐 그냥 참았지. 날 무시하더라고. 근데 자기에겐 함부로 못 하더라고.”
나는 웃으면서 “싫으면 큰 언니가 가시겠지요? 이 병원은 갈 곳이 없어요. 나도 2인실 물어봤는데 자리가 없데요.”라고 말한 뒤 한두 시간 지나자, 큰언니는 노골적으로 나에게 물었다.
“여기 2인실은 얼마요? 1인실은 얼마구요?”
“저도 잘 몰라요. 2인실은 실비가 되지만, 1인실은 비쌀걸요? 언니 가고 싶으세요? 제가 알아봐 드릴까요?”라며 웃으면서 받아쳤다. 언니는 놀라서
“나는 못 간다. 늙은 내가 무슨 돈이 있노?”
“그럼, 왜 물어보세요? 언니! 저는 못 가요. 언니가 아무리 보내고 싶으셔도 이 자리에서 못 떠나요. 그러니 언니가 가실 거 아니면 그만 이야기하세요.”라며 웃으면서 말하자, 앞의 언니는 배를 잡고 웃었다.
4인실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습관의 충돌, 그 속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큰언니는 며칠 지나자, 나의 센스와 밝은 모습이 좋았는지, 치킨을 사주겠다며 주문하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정말이요? 언니 당뇨 때문에 안 드시잖아요?”
“점심에 먹으면 괜찮다. 맛있는 걸로 시켜라. 간장 반, 양념 반으로.”
“언니! 어디 치킨 드시고 싶어요? 교촌, BHC, 60계, 푸라닭?”
“난 그런 거 모른다. 간장 반, 양념 반으로 아무 데나 시켜라.”
“언니 그냥 교촌에서 허니콤보 시켜요. 이게 맛나고 좋아요.”
“2마리 시켜서 우리 레지, 인턴 선생님 한 마리 주고 우리 한 마리 먹자.”라고 할 때 인턴이 왔다. 나는
“인턴 쌤, 교촌의 허니콤보 어때요?”라고 묻자 너무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본 언니는 더 이상 망설임 없이 나에게 부탁했다. 2마리 시켜서 한 마리 주고 한 마리는 세 명이 먹었다.
치킨을 나누어 먹으면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우리는 서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었다. 우리의 병실은 이제 서로에 대한 불편함보다는 이해와 애정이 깃든 공간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오랜 병원 생활 속에서도 다인실 적응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인간관계의 깊이와 복잡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서로의 아픔을 조금씩 나누고, 때로는 웃음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는 우리.
이 병실에서, 우리는 각자의 병을 넘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려 애쓰는 작은 우주처럼. 치킨을 나누며 큰 언니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공간을 공유하며 생기는 작은 마찰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운다. 이 작은 병실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별이지만, 같은 하늘 아래 빛나고 있다.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