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병원에 입원한 지 일 주 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4인실은 한자리를 비워둔 채, 3명이 가족처럼 지내고 있었다. 드디어 빈 자리에 새로운 환자가 왔다. 2인실에서 균 환자 때문에, 퇴원 하루 남기고 우리와 지내게 되었다.
그의 도착은 우리 방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금을 가게 했다. 우리와 조화를 이루려고 하지도 않았고, 뭔가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다인실 생활에서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배려이다. 아픈 사람들이기에 서로의 쉴 시간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미덕이다.
우리는 새로운 분을 배려했지만, 그분이 하루 종일 커튼치고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다. 혼자 무언가 불만을 계속 중얼거렸다. 저녁 8시 반쯤 언니들은 공용 TV를 보고 나는 파라핀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갑작스럽게 모든 전등을 껐다. 어둠은 병실을 삼켰다.
우리 세 명은 너무 놀라 “왜 불을 끄는 거야? 누구야?”라고 옆의 언니가 말하자, 안면마비 언니가 불을 다시 켰다. 나는 언니에게 불을 다 끄고 각자 불을 켜자고 했다. 언니들은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그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실수라고 말해야 했지만, 아무 말 없이 자기 침상에서 나오질 않았다. 우리는 남은 하룻밤을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안면마비 언니가 한마디 하려는 걸 내가 막았다. 눈짓으로 그만하라고. 언니는 나에게 머리를 치며 “골때리네?”라며 기막혀했다. 공용 TV도 꺼주고 각자 자기 침상에서 할 일을 하다 잤다.
다음 날 아침, 우리의 병실은 또다시 소란스러웠다. 안면마비 언니의 화난 목소리가 내 귀마개를 뚫고 들어와 나를 잠에서 깨웠다. 언니는
“밤새 옆에서 심하게 코를 고니,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귀도 너무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너무하지 않아요?”라며 큰소리고 인턴 선생님께 불만을 토하고 있었다. 인턴 선생님이 가고 큰언니도 아침을 준비한다며 나가셨다. 나는 웃으면서
“언니 나는 매일 밤, 잠을 못 자요. 우리 큰언니 콧소릴 못 들어봐서 그래요. 어제 내가 새로 오신 분도 들어봤지만, 언니를 따라잡진 못해요. 다인실이니 이해해요.”
“나 한숨도 못 잤다. 너무하지 않나?”라며 큰소리를 치자, 옆의 환자가 언니를 불렀다.
“여기요? 제가 어제 11시에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 반부터 옆에서 계속 시끄럽게 하시던데 뭐 하신 거예요?”라며 사과는커녕 언니에게 화내고 있었다. 황당한 나는 웃음이 나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잠을 못 자게 한 게 누군데? 누구에게 뒤집어씌우지?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하면 될걸!’이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안면마비 언니는
“이보시오?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미안하다고 한마디면 될 텐데 뭔 말이 그리 많아요? 당신 때문에 지금 아파 죽겠는데.”라며 큰소리로 계속 퍼 붇고 있었다.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3시 반부터 시끄럽게 한 사람이 누군데? 목소리 낮춰요? 왜 소리 질러요?”라며 언니를 더욱 화나게 했다. 병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누구의 편도 들을 수가 없었다. 흥분된 언니를 말릴 수도 기본도 모르는 분의 편을 들 수도 없었다.
병동의 다른 환자들은 우리 방으로 싸움 구경하러 몰려들고 있었다. 3명의 간호사는 소동을 진정시키려고 왔다. 나는 간호사 선생님들을 보며 “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 일 보세요.”라고 웃으며 돌려보냈다.
잠이 확 깬 나는 침대에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나 병실 문을 닫았다. 우선 흥분된 언니를 진정시켰다. 언니는 흥분을 멈추며 나에게 하소연했다. 다 들어주고 난 뒤 웃으면서.
“언니야!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면 쪽팔리지 않나? 어린 간호사들 다 쫓아 오고, 옆방에서 구경 오고. ㅋㅋㅋ 난 언니들 땜시 매일 아침잠을 못 잔다. 어제는 핸드폰이 울려서 오늘은 언니의 우렁찬 목소리에 놀라서. 나도 좀 살자! 언니야.”
“그랬나? 미안해라.”라며 내 엉덩이를 두들겨 주었다. 우리는 웃으면서 이 위기를 모면했지만, 다인실의 코골이 문제로 큰소리 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나도 중풍인 큰 언니의 코골이로 매일 밤, 잠을 설친다.
큰언니는 코만 고는 게 아니다. 자다 갑자기 큰기침을 연속으로 하기도 하고 잠꼬대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낮잠도 많이 주무시고, 9시 이전에 잠이 드시는 언니는 새벽 4시면 일어나신다. 그때부터라도 나는 본격적으로 잠을 자야 한다.
하지만, 언니는 씻고 드라이하고, 아침 준비한다고 부스럭거린다. 나는 매일 밤 10번 이상은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그렇다고 싸우면 매일 싸워야 하기에 포기하고 산다. 그 일이 있고 나자, 큰언니는 나에게 계속 미안해했다.
병원은 병을 고치기 위해 입원하는 곳이지만, 병원 생활은 때때로 이렇게 예상치 못한 도전을 안겨준다. 이때 우리는 서로의 깊은 이해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 서로의 상황을 고려하고 감정을 존중하는 것.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오는 우리는 결국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니까.
몇 년 전까지 나도 다인실에서 코골이 때문에 잠 못 자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MRI 촬영실에서 귀마개를 주었다. 꼭 짜듯이 말려있는 귀마개를 귀에 꽂자, 촬영 시 소음이 확실히 덜했다. 돌아와 나는 귀마개 끼는 연습을 했다.
귀마개를 그냥 끼우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소음도 전혀 막지 못한다. 하지만, 기사 선생님이 주신 귀마개는 완전히 꽉 짜서 주셨다. 몇십 번 반복하자,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귀마개는 나의 병원 가방에 필수품이 되었다.
모든 소음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지만, 병으로 예민해진 감각을 조금이나마 보호할 수 있었다. 병원 생활이 길어짐에 따라 나는 다인실에서 살아남는 법을 하나씩 익혀가고 있었다. 때로는 큰소리를 내기 전에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간단한 귀마개 하나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였다. 그 작은 귀마개로 인해, 나는 다른 환자들의 코골이나 밤중의 소란을 견딜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조금 더 편안한 밤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생활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서로의 배려와 이해 없이는 어렵다. 각자의 상태와 필요를 존중하며, 때로는 우리 각자의 평화를 위해 조용히 양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병실은 매일 같이 가르쳐 준다.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