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인의 동시 4, 5
꿈꾸는 그림자 / 조정인
정오 무렵, 단풍나무 아래 그림자 하나
조그맣게 가만히 엎드려있다.
검은 강아지 같다.
부르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올 것 같다.
단풍나무는 건너편 작은 나무에게 닿고 싶지만
그림자가 자라길 기다려야 한다.
해질녘 가까스로 길 건너에 다다른 단풍나무 그림자가
작은 나무 발등을 보드랍게 핥는다.
제 자릴 못 떠나는 나무는 그림자가
제 마음의 걸음걸이,
꿈의 걸음걸이인가 보다.
거인 / 조정인
거인의 물손바닥이
후박나무 잎사귀를 세차게 때린다.
내가 맞은 것도 아닌데
뺨이 얼얼하다.
집이 출렁거린다. 집이 배 같다.
거인의 수레바퀴만 한 푸른 눈이 번쩍번쩍,
방안을 휘둘러본다.
일어서서 창문을 닫을 수도 없다.
오줌도 마려운데……
그냥 이불을 뒤집어썼다.
검은 망토 자락이 흔들흔들
방을 지나간다.
나는 콩알만 해진 심장 속으로
까맣게 숨었다.
문장웹진 2023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