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부끄러웠던 선생님.
그 아이의 휑한 목이 눈에 밟히는 계절이다.
15,6년 전 일이다. 방과후 특기적성 교사(글짓기)로 4,5년 서울시내 초등학교에 나갈 때였다. 방과 후 수업이니까 평소엔 정규수업 후에 수업을 하지만 방학 때는 대체로 오전에 수업이 있었다.
몇 군데 초등학교에 요일을 바꿔가며 주일에 한 번 만나는 아이들은 대체로 표정이 밝았고 별 문제 없이 평온해 보였다.
물론 수업 중에 벌떡 일어나 교실을 어정거리는 등 돌발행동을 하는 녀석들도 있긴 했지만 그런대로 넘어갔다.
다시 겨울방학이었다. 12월 마지막 주부터 한 초등학교에 저학년 고학년 수업이 오전 오후로 잡혀있었다.
저학년 수업이 오전에 있었다. 그 즈음 나는 막 출간한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를 교재로 쓰겠다고 미리 공지했었다.
수업 첫 날이었다. 스무명 남짓한 아동들은 책상 위에 노랑색 산뜻한 표지의 동시집을 올려 놓고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아무런 준비 없이, 심지어 필기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웅크려 앉아있었다.
2학년인 사내아이는 왜소한 체격에 얼굴은 창백했고 마른 버즘이 피어 있었다. 한겨울에 가랑잎처럼 앏은 점퍼를 입은 게 전부였거니와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빛바랜 갈색 점퍼는 지퍼도 다 올려지지 않아 휑한 목 아래로 달랑 흰 런닝만 입은 맨몸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엄마가 많이 바쁘신가 보구나?
나는 엄마가 없는 아이인가 싶어서 우회적으로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뇨, 엄마는 새벽에 일 나가요.
-아, 그렇구나. 그럼 너, 아침에 학교 올 때 집에 아무도 안 계셔?
-아뇨, 집에 누나가 있어요.
-누나는 몇 학년인데?
_중학교 3학년이요...
누나가 중학생이라면...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는 아마 지자체에서 주는 바우처로 수업을 신청했던 것 같다.
아이는 그 후, 두세 번 같은 옷차림을 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서 결국 6회 수업을 다 마치지 못한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맹글맹글한 토끼털 목도릴 목에 두르고 있었다.
다른 집도 보통 그렇듯이 집에는 널린 게 목도리이고 스카프였다.
그때, 나는 왜 목도릴 풀러 아이의 휑한 목을 감싸줄 생각을 못했을까? 아이들 몰래 동시집도 선물해줬더라면, 하는 후회도 있다.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어른, 부끄러운 선생님이었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어른들의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추위에 벌벌 떠는 아이들이 있을 텐데...
지금은 어엿한 청년으로 자기 몫의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잘 운영하면서 의연하게 잘 살고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1215. 인.
#토끼털목도리
#,새가되고싶은양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