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왜 해야 하냐고 묻는 아들에게
코로나 상황의 장기화로 조벽. 최성애 박사님께서 HD대학원 과정을 온라인으로 개설해 주셨다. 온라인 수업이면 해외에 거주하는 나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으니 기쁜 일이다. 조벽 교수님께서는 비판적 사고력에 대해 강조하시면서 아무리 저명한 박사가 쓴 권위 있는 연구 자료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비판적인 질문을 하며 용감하게 도전하는 자세를 가져야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조별 발표를 시킨 후 나머지 수강생들이 발표자에게 발표 내용에 대한 도전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수업의 과정이다.
질문은 받는 것도 어렵지만 만들어 내는 것도 정말 머리 아픈 일이다. 그냥 받아들이면 안 되나? 감정코칭을 배우면서 내내 아이들에게 '왜?'라고 질문하지 않는 것을 연습해 왔다. 엄마가 아이들한테 '왜 그랬니?'라고 질문하면 아이들은 야단맞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들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왜 저럴까?'라는 의문이 드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일 애들이 왜 그러는지 궁금해도 차마 묻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발표자한테는 도전적으로 질문을 하라고 하시니 너무 괴롭다. 발표자는 이미 많이 조사하고 공부해서 나름대로의 논리와 스토리가 탄탄한데 거기에는 용감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게 맞고 아이들은 미숙해서 정말 어리석은 행동도 많이 하는데 거기에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게 맞다니 내가 알고 있던 상식과 반대되는 일이어서 둘 다 어렵기만 하다.
'질문받기'도 '질문하기'만큼 어렵다. 청중 앞에 서서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 거기에 청중이 쏟아내는 비판적인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은 정말 진땀 나는 일이다. 조벽 교수님은 질문자의 질문 태도도 중요하지만 강연장 전체 분위기에 대한 책임은 발표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다.
질문을 할 때는 청중의 눈치도 보지 말고 발표자의 눈치도 보지 말고 다양하고 폭넓은 질문을 가감 없이 해야 한다. 그런 질문 중에는 엉뚱해서 청중들의 비웃음을 사거나 너무 비판적이라 발표자를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도 있다. 이럴 때 전체 강연장의 분위기에 대한 책임은 발표자에게 있다. 발표자는 누구의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환영하면서 여유 있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 강연장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질문을 할 때도 긍정적인 코멘트로 시작해야 하지만 답을 할 때 긍정적인 코멘트를 해줘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좋은 질문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용감하게 질문해 주셨네요."
"저도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지만 최선을 다해 답해보겠습니다."
막상 현장에서 여러 사람 앞에서 이렇게 여유 있고 부드럽게 질문을 받아넘기려면 정말 회복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교수님의 이런 수업 방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몇 번 수업을 하면서 보니 이런 수업 방식이 사춘기 아들을 키우는 지금 나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참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춘기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참 쓸데없고 도전적인 질문을 많이 하는 데다가 태도마저 불손하기 그지없다. 일단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질서에 대해 반항부터 하고 보는 것 같다. 다 비딱하게 보고 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는 쓸데없는 객기 거나 해보지도 않고 아는 척하는 잘난 척이자 무례함이다. 자기보다 경험 많은 어른의 권위에 대해 반항하고 불량한 태도를 보이는 아이에 대해 어른이 편안하고 여유롭게 반응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착하고 유순하기만 하던 귀여운 내 아들이 쓸데없이 사나워지는 요즘 조벽 교수님 수업을 듣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돌아보니 아이가 꼭 사춘기여서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원래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한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아이의 그런 엉뚱한 질문도 비교적 귀엽고 이쁘게 봐줬던 것 같다. 어른한테는 뻔한 세상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수많은 질문을 해대는 아이들 덕분에 이 세상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청소년기가 되면 아이들은 입을 다문다. 더 이상 어른들이 아이들의 질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건 진짜 아이가 무례했던 게 아니고 내 시각이 더 이상 친절하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애도 아닌데 이제 세상에 대해 자꾸 궁금해하지만 말고 어른들 말하는 대로 따라줬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아이의 입을 무겁게 만들었나 보다.
이렇게 아이의 질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는 아이의 성장과 발전에도 안 좋겠지만 사실 어른의 성장과 성숙에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아이한테 권위적이 되어갈수록 어른의 삶도 딱딱해지고 재미없어지기 때문이다. 아이의 나이와 상관없이 아이가 던지는 그 어떤 엉뚱한 질문에도 여전히 호의적으로 반응하며 기회를 주는 태도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삶을 생기 있게 만드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조벽 교수님 수업을 들으며 내가 아이에게 보였던 태도가 어쩌면 너무 권위적이거나 부드럽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내가 질문에 대해서 호의적이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자 우리 아이들의 쓸데없는 질문하기가 다시 되살아났다.
요즘 우리 아들이 세상에 던지는 가장 중차대한 질문은 '공부는 왜 해야 하나?'이다. 나로서는 정말 답답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학생이 당연히 공부를 해야지! 그럼 네가 공부 안 하면 뭐 할래?' 이게 나의 솔직한 반응이다. 21세기를 살아가야 하는 차세대 재원으로서 세상과 미래를 향해 뭐 대단하고 건설적인 질문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생 신분으로 그렇게 골똘히 고민해서 하는 질문이 고작 공부하는 이유여야 할까 싶다. 나는 어릴 때 그럭저럭 권위에 순종하면서 군말 없이 공부를 하곤 했기 때문에 내 아들은 왜 저렇게 공부하는 게 싫기만 한지 이해가 안 된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공부해.’라고 대꾸하고 싶지만 그래도 수업 시간에 배운 ‘도전적인 질문자를 대처하는 바람직한 권위자에 대한 태도’를 돌이켜 본다.
아이의 질문에 대해 애써 긍정적으로 반응해 본다. '그러게.. 공부는 정말 왜 해야 할까?' 아이의 밑도 끝도 없는 불평불만을 들어주며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사실 공부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냥 놀고먹는 게 더 쉽고 편한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학교 다닐 때 공부하기 싫었다. 그런데 나는 딱히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질문할 엄두도 못 내고 그냥 그 시절이 지나갔던 것 같다. 성적은 그럭저럭 나왔지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받았던 성적이 향후 행복한 삶을 무조건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나까지 궁금해진다. 돌이켜 보니 우리는 모두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남들이 하니까 무조건 하는 일이 참 많은 것 같다.
청소년 아이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게 만드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이의 모든 행동을 다 일일이 바로잡아 주기는 어렵기 때문에 행동의 동기가 되는 감정으로 접근하라는 것이 바로 감정코칭이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문제행동이 나오고 긍정적인 감정에서 바람직한 행동이 나온다. 문제는 아이는 발달 중에 있으니까 이 공식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하나 더 필요한 것 같다.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바로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 아이도 있지만 시간이 많이 필요한 아이도 있다는 게 내 관찰 결과이다. 긍정적인 감정과 더불어 철이 들 만한 여러 감정적 경험들과 몇 번의 크고 작은 깨달음들이 모이고 모여 어느 정도 시간이 쌓였을 때 비로소 어른이 보기에도 바람직하고 흡족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빨리 철이 좀 들어서 어른들이 하라는 공부도 귀찮지만 해 두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내 마음에 쏙 들게 공부 열심히 하고 착실하게 뭘 알아서 잘하고 있지는 않지만 코로나 시대에 일단 건강하고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잘 놀고 행복한 모습 많이 보이니 그거로 만족하려 한다. 조벽 교수님은 청소년 아이에게 자꾸 꿈을 묻지 말고 꿈같은 삶을 살게 해 주라는 말씀을 하셨다. 꿈같은 삶을 즐겁게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의 장점이나 관심사에 대해 많이 알게 될 거다. 그게 아무 생각 없이 권위에 순종해 공부하며 성적만 잘 받는 착한 아이로 자라는 것보다 훨씬 자기 자신과 세상을 위해 이롭다. 우리 아들은 나름 꿈같은 삶을 재미있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좀 더 믿어 주면서 '너는 꿈이 뭐니?' '뭘 하고 싶니?' 이런 질문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잘 크겠지. 잘 크고 있잖아. 오늘도 꿈같은 삶을 살며 꿈을 키워 나가는 아들을 위해 따뜻한 마음햇살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