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보자
살면서 누구나 고난과 역경을 겪지만 사람마다 견디는 힘은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지치고 더디게 회복한다. 또 다른 사람은 스트레스에 여유 있게 반응하고 오래 견디며 빠르게 회복한다. 스트레스에 잘 이기는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하고 정신적으로도 튼튼한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해서 '회복탄력성'이라는 용어에 늘 관심이 많았다. '회복탄력성'을 말하는 사람도 많고 설명해 주는 책도 많았지만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시고 실천해 볼 수 있게 가르쳐주신 분은 조벽. 최성애 교수님이다.
'회복탄력성'에는 4가지 영역이 있다.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영성적 이렇게 4가지 영역이다. 신체적으로 회복탄성이 높다는 것은 말 그래도 몸이 건강하다는 의미이고 정서적으로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것은 자기감정을 잘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지적으로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것은 잘 집중할 수 있고 많이 기억할 수 있으며 학습능력이 뛰어나 잘 배우는 사람을 의미한다. 영성적으로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것은 좋은 가치에 대한 믿음이 크고 여러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폭넓은 사람을 말한다.
'회복탄력성'에 대한 비유도 여러 가지 있는데 탄력은 고무줄이나 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많이 늘어나고 빨리 원래 상태로 회복되는 고무줄이 탄력이 좋은 고무줄이다. 마찬가지로 위기를 만나면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할 줄 알고 위기가 지나가면 빠르게 원래 상태를 회복해 이완할 수 있는 사람이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다. 한 마디로 일할 때 유능하게 일하고, 쉴 때 푹 쉴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또, 탄력이 적은 공은 던지면 그 자리에 푹 주저앉는 반면 탄력이 높은 공은 세게 던질수록 더 많이 튀어 오른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역경의 강도가 높을수록 역경을 통해 더 크게 성장한다. 반면에 유리멘털인 사람은 역경을 만나면 산산조각이 나도록 깨져서 다시는 회복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유리로 만든 공, 탄력이 적은 공, 탄력이 높은 공을 떠올리면 회복탄력성의 개념이 명료해진다.
여러 가지 비유 중에 핸드폰 배터리에 한 비유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채우며 살아가는 에너지 체계인데 에너지 용량이 크고 효율이 높은 사람이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비유다. 새 핸드폰을 사면 핸드폰을 오래 써도 배터리가 많이 닳지 않고 모든 기능이 빠르고 메모리도 커서 자료 저장도 많이 되고 충전도 빨리 된다. 낡은 핸드폰은 배터리가 빨리 닳고 기능도 느리고 자료 저장도 잘 안 되고 충전도 잘 안 돼서 쓰기 불편하다.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잘 지치지 않고 여유로운 사람과 쉽게 지치고 기운이 없고 회복도 느린 사람을 핸드폰 배터리에 비유해서 생각해 보니 이해가 잘 된다.
어떻게 하면 방금 구매한 새 핸드폰처럼 하루 종일 많은 일을 해도 잘 지치지 않고 어려운 일도 잘 이겨내고 잠시 좌절했다가도 빨리 활기를 되찾는 회복탄력성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조벽 교수님은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그 비결이라고 제시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몸, 마음, 정신, 관계 이렇게 4가지 차원으로 분류해서 정리해 주시니까 이해가 잘 되었다.
몸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 호흡
몸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호흡’이다. 사람의 오장육부 중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기관은 오직 폐밖에 없다고 한다. 심장도 내가 마음대로 빠르거나 느리게 뛰게 만들 수 없다. 심장은 놀라면 자기 멋대로 빨리 뛰고 아무리 애를 써도 느리게 뛴다. 위장도 내가 마음대로 소화를 빨리 시킬 수도 없고, 소화를 느리게 시킬 수도 없다. 과음한 다음 날 간이 활발하게 움직여 숙취를 빨리 해소해 주면 좋겠지만 그것도 내 뜻대로 안 된다. 오장에 해당되는 심장, 간장, 비장, 폐장, 신장 중에 그나마 내 마음대로 통제가 되는 것은 폐장이다. 호흡은 내가 노력하면 빠르게 쉴 수도 있고 느리게 쉴 수도 있다. 즉, 조절이 가능하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긴장이 돼서 호흡이 빨라진다면 얼른 알아차리고 내가 노력해서 좀 더 깊고 느리고 고르게 호흡하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심장,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뇌에 집중해서 답답해하기보다는 내 마음대로 되는 폐에 집중해서 호흡을 천천히 고르게 쉬어 보는 것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마음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 상상
마음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상상’이다. 마음은 머리와 가슴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인데 우리는 때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멈추고 싶을 때도 있고 바꾸고 싶을 때도 있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정말 그런 생각이나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고 보다 긍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으로 바꾸고 싶다. 하지만 마음대로 안된다.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안될 때 정말 좌절감이 큰 것 같다. 내 마음조차 내 마음대로 못하면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스스로에게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상상’이다. ‘상상’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상상’으로는 코로나를 지금 당장 종식시킬 수도 있고, 몰디브로 지금 당장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을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불러올 수도 있다. 911 테러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5살짜리 남자아이가 당시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빌딩 아래 커다란 ‘트램펄린’을 그려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로와 따뜻함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긍정적인 상상을 하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그리는 일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큰 힘이 된다.
정신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 시각
정신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은 ‘시각’이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느냐, 부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느냐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만물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품고 있다. 내가 어느 쪽을 보느냐는 나의 선택일 뿐이다. 아이를 낳고 한참 육아서를 몰두하며 읽을 때 참 많이 봤던 문장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라.’라는 글이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는 참 어렵게 느껴졌다. 원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그럼 뭘 어떻게 본다는 거지? 하면서 이상해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스스로를 살펴보니 엄마란 이상하게 아이의 부족한 부분만 집중해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가 잘 자랐으면 좋겠다는 욕심이나 혹시 뭐 잘못될까 걱정하는 불안 때문에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아마 가장 정확하게 세상을 보는 시각은 무조건 긍정적인 것도 아니고, 무조건 부정적인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특히 나는 욕심 때문에, 불안 때문에, 무지 때문에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부정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나의 시각을 바로잡는 일이 바로 정신의 측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관계에서 어찌할 수 있는 일: 나
마지막 관계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조벽 교수님은 회복탄력성의 큰 부분이 바로 나를 초월한 관계에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회복탄력성이 높아질 수도 있고 회복탄력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관계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최고의 명약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다른 사람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관계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일뿐이다. 가끔은 이 부분이 속상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나를 변화시키는 게 너무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상대가 좀 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항상 든다. 그냥 아이가 다 잘해서 내가 기쁘면 좋겠다. 아직 철없는 아이를 이해해서 내가 편안해지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상대는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내가 나를 어른스럽게 만드는 게 아마도 더 바람직한 길일 거다.
상대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나를 지치게 만들고 아이들을 채근하게 만든다. 행복의 비결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상대가 나에게 뭘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춰준다면 그게 오히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납득하기 싫은 내용이지만 결국 그렇구나 하면서 동의할 수밖에 없긴 하다.
조벽 교수님의 강의는 언제나 간결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들으면 바로 이해가 되지만 늘 그렇듯 실천이 어렵다. 아이가 내 뜻대로 안 될 때, 아이 때문에 화가 나거나 불안할 때, 내 즉각적인 반응을 멈추고 잠시 ‘호흡’을 고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오늘도 늦잠 자고 일어나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만 하는 아이를 보면서, 코로나 핑계로 방에서 꼼짝도 안 하고 게으르게 만화책만 보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상상’을 한다는 것도 어렵다. 그리고 늘 부족하게만 보이고 걱정스럽기만 한 아이에 대해 아이의 장점을 주목해 보아 주는 시각,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고 인정해 주는 시각을 갖추기도 쉽지가 않다. 끝으로 아이가 내 입맛에 맞게 달라지기를 바라고 쉽게 안 바뀌는 아이를 두고 화내는 대신에 내가 좀 더 이해심이 많아지고 조급함을 줄여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세상 너무 어렵고 힘든 길인 것 같다.
그래도 조벽 교수님 말씀대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면 불행해진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행복의 비결이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맞는 말씀이기에 좀 더 현명한 방향으로 노력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게 무엇보다도 더 소중하고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언제나 더 쉬운 방향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노력해서 회복탄력성 높은 내가 되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