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육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를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잘 키워서 결국은 부모를 떠나 혼자서도 자기 삶을 잘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번번히 모든 경우에 내가 아이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바람직한 행동을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로 하여금 스스로 바람직한 행동을 선택하도록 만드느냐 하는 것에 대한 해법을 나는 감정코칭에서 찾았다.
감정코칭은 총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는 아이의 감정을 포착하는 것이다. 2단계는 아이의 감정적으로 예민하게 구는 것도 좋은 기회로 여기는, 엄마의 긍정성을 끌어올리는 단계이다. 3, 4단계는 아이의 감정을 경청하고 공감해 주면서 아이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엄마가 적절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의 도움으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알게 되고 스스로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법도 떠올리게 된다. 그럴 때 엄마가 너무 창의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보다 보편타당하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아이를 지혜롭게 이끌어주는 것이 마지막 5단계이다.
이론으로는 완벽한 감정코칭이 실제 상황에서 생각보다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엄마에게는 아이가 약간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싶으면 즉각적으로 아이의 행동을 바로잡아 주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못한 즉시 바로 올바른 행동을 직접적으로 따끔하게 알려줘야만 훈육의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잊어버릴까 봐 지금 즉시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부드럽게 넌지시 알려주면 아이가 모를 것 같고 직접적으로 따끔하게 알려줘야 아이가 확실히 이해를 할 것 같다.
적당히 그래, 그래, 네 말도 옳지 하면서 이해해주면서 알려주면 아이가 다음에도 같은 잘못을 반복할까봐, 그러면 아이 미래가 잘못될까봐 불안하다. 엄마로서의 책임감도 발동하고 아이를 잘 키우네, 잘못 키우네 하는 주변의 시선도 의식이 된다. 그래서 아무리 이론을 알고 있어도 이런 저런 이유로 엄마는 결국 조급하게 아이를 다그치듯 훈육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엄마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조절해야 하는 엄마의 욕심에 해당된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아이가 비교적 엄마와 의견이 일치하는 말 잘 듣는 아이라면 걱정이 없다.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고집불통 떼쟁이 아이도 있고,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도 있고, 세상이 요구하는 어떤 능력이 유독 어렵고 부족한 아이도 있다. 내 아이가 그렇게 고집이 세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가르쳐주고 싶은 것을 배우는데 있어서 게으르거나 어려워 한다면 결국 엄마는 아이를 야단치게 된다. 감정코칭은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허울 좋은 양육법이 된다. 아이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했으니 이제는 내가 제시한 방향을 따르도록 강요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다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만 든다.
아이를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가 일방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지침을 강요하듯 설교하는 것은 정말 도움이 안된다. 아이와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양쪽이 다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바람직한 한계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경험해보니 여기에서 큰 딜레마가 발생한다. 엄마에게 적절한 한계는 늘 아이에게는 부당한 한계인 것이다. 아이가 크면서 자꾸만 그 한계에 도전을 하기 때문에 어제 합의하에 그은 한계선을 오늘은 아이가 부당하다고 항의한다. 엄마로서는 일관성을 지키고 싶지만 아이가 어제의 아이보다 한 뼘 더 자랐다는 게 현실이다. 엄마의 일관성에 대한 고집과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자연스러운 자기 주장이 강하게 부딪힌다. 아이는 엄마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엄마의 욕심이라고 느끼고 엄마는 아이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아이의 욕심으로만 느껴진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자녀의 성장을 받아들이고 아이를 믿고 존중해주려면 엄마가 자신의 한계를 자꾸 넓혀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불안하지만 아이를 이기려고 나를 고집하기 보다는 아이를 나보다 더 믿어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어른이고 내가 인생을 더 많이 알기 때문에 내 결정이 아이의 결정보다 훨씬 더 현명할 것이라는 확신은 금물이다. 아이는 존중받기를 원하고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경험한 세상과는 다르다. 어쩌면 새로운 세상 속에서는 나보다 아이가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아니 어차피 새로운 세상은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세상이 될 거라는 걸 어렵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변수가 많은 현실이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기준이 되는 지침이 필요하다. 감정코칭에서 제시하는 기준은 두 가지이다.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과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엄하게 일관성을 지킨다. 아이가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욕설이나 거짓말을 하거나, 경제적 손실을 입힌다던가 그렇게 했을 때는 예외를 허용하지 말고 충분히 엄하게,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가르쳐주어야 한다. 물론 아이가 이 같은 잘못을 하기 전에 이런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충분히 미리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잘못에 대해 책임을 가르쳐줄 때도 감정적으로 대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담담하게 알려주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에 관한 한계이다. 이 부분은 아이가 스스로 이것은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임을 자각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냥 일방적으로 이것은 너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야. 그러니까 지켜라. 이렇게 하면 아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아이는 성장하는 만큼 엄마가 처음에 그어 놓은 울타리가 너무 좁다고 여긴다. 아이의 성장이 급격한 청소년 시기에는 어쩌면 거의 매일 아이의 항의와 문제제기를 접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부모는 결국 예전에 감정코칭 해왔던 것마저 후회하는 지경에 이른다. 내가 그동안 아이 감정을 너무 많이 들어줬나 봐. 적당히 억압도 좀 했어야 했나, 언제까지 이해해 주고 공감해 줘야 하나, 그런다고 정말로 아이가 스스로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안 할 수 있을까, 의심을 하게 된다.
요즘 세상에 부모 입장에서 아이에게 대표적인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공부 안 하는 것과 게임 많이 하는 것이다. 처음에 엄마가 정해 놓은 한계가 9시 이후에 게임은 안 하는 거였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아이가 동의했는데 아이가 성장하면서 어느 때가 되면 친구들과 밤 10시에 만나서 게임하자는 약속을 하는 날이 온다. 그러면 아이는 오늘만 10시까지 허락해 달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날이 자꾸 늘어난다. 어떤 날은 11시가 된다. 다시 12시가 된다. 엄마가 도저히 허락해주지 못하겠는 시간까지 간다. 결국 아이는 엄마 몰래 밤에 친구들과 게임을 하게 되고 엄마는 아이에게 크게 실망한다. 아이는 게임을 많이 했다는 죄목에 엄마와의 약속을 어겼고 거짓말까지 했다는 죄목까지 죄목이 늘어나기만 한다. 아이는 억울해하고 엄마는 절망한다.
이 쳇바퀴 도는 전쟁을 끝내고 마지막까지 감정코칭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엄마에게 어느 날 큰 결단을 해야 하는 날이 필요한 것 같다. 엄마가 그어 놓은 한계를 좀 내려놓고 아이가 스스로 그은 한계선이 어디인지 확인해보는 작업이다. 아이와 항상 연결되어 있고 대화를 하면서 엄마가 생각하는 엄마의 한계는 알려줄 수는 있지만 선택은 결국 아이의 몫이다. 굳이 오늘부터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고 말해줄 필요는 없다. 그냥 어느 날 엄마가 마음속으로 결심하는 거다. 오늘부터 아이에게 결코 잔소리를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이제부터는 네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보라고 말이다.
올바른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선택을 많이 해보고 아, 이건 정말 아니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하루종일 뒹굴뒹굴 아무것도 안 하고 한가하게 노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아, 심심해. 너무 심심한데 뭘 할까? 난 뭘 해야 재미있는 사람이지?'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 엄마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을 따르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신에게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지 찾아 나가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아이가 심심할 때 선택하는 게 만화책이라면 만화도 좋고, 영화라면 영화도 좋다. 무언가 빠져서 정신없이 몰입하는 게 있다면 축하할 일이다. 엄마 눈에는 만화책 보고 있는 것보다 학원 숙제 열심히 하고 있는 게 바람직해 보이지만 무엇이 아이에게 진짜 바람직한 일인지는 아이가 스스로 찾아보는 시간을 허락해줘야 한다.
아이는 수없이 많은 어리석은 선택을 해 볼 권리가 있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할 권리가 있다. 밤새 게임하다가 아침 등교시간을 놓쳐서 지각도 해보고, 밤에 잠을 안 자면 다음 날 하루가 다 망가지는 경험도 미리 해보는 게 낫다. '아. 잠깐 재밌고 며칠을 피곤하고 힘들다면 이건 결국 나에게 해가 되는 일이구나. 이제 앞으로는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 하는 것들을 스스로 깨달아 가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럴 때 엄마가 같이 대화하면서 그 방향을 잡아주는 게 감정코칭이다. 아예 정답을 제시해 주고 따르지 않는다고 화내는 것은 감정코칭이 아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적절한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 감정코칭인데 아이가 내가 그어 놓은 한계를 지키지 않았으니까 이제는 아이를 질책할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한번 살아보는 경험을 너무 일찍 하게 되면 방치가 되고 방임이 될 수 있다. 너무 늦게 해서 성인이 되서 뒤늦게 방황하면 인생이 전체가 너무 늦어질 수 있다. 아직 어른들 지도 하에 있고 실패나 실수를 해도 돌이킬 시간이 충분히 있는 청소년 시기가 바로 아이에게 실패와 실수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인 것 같다. 그래야 아이가 그 실패와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경험을 몇 번 해 본 뒤 자신에 대해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올 때 누군가와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인 내가 되면 좋겠다.
아이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고 충분히 방황할 시간을 허락하는 일은 부모로서 큰 용기와 긍정성을 요구하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바람직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내 아이를 위해 그 어려운 일을 매일 해보는 중이다. 아이의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엄마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햇살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