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기에요?
눈물의 여왕의 최종화를 눈물로 봤다. 왜 안 끝나지? 하면서. 이럴 수가, 그나마 좋게 가져가려 노력했던 드라마에 대한 의리를 산산조각 내는 느낌이랄까.
16부작, 하지만 회당 한 시간이 훌쩍 넘는 분량이었고 최종화는 무려 두 시간에 가까운 분량이었으니 한 시간 기준의 드라마로 친다면 최소 20부에서 24부까지도 가능한 분량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만큼 풍성하지가 못 해서 개연성이 산으로 가며 늘어지고 또 늘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작가가 이런 장편을 끌고 갈 역량이 안 되나 보다 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마지막 회였다. 그래도 그 모든 걸 드라마적 허용으로 이해하며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건 배우들의 열연, 케미와 중간중간 발견할 수 있는 작가의 센스 같은 것들, 이를 테면 조연들의 서사, 이런 것들이었다. 그러니 개연성을 바라지 않는 시청자에게 작가가 줄 수 있는 건, 보고 싶은 장면을 보게 해주는 것 아닌가. 현우와 해인이가 행복한 모습, 우격다짐 구겨 넣은 운명 서사이지만 그 퍼즐을 완성하는 모습, 무리수로 던져둔 떡밥들을 그래도 수습하는 장면들 이런 거 충분히 보여줬으면 마지막 회를 보는 내내 화가 나고 때로는 지루하고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은 최소한 안 하지 않았을까. 그냥 그렇게 보여줬으면 하나하나 토 달지 않고 그들이 행복했으니, 나는 되었다 하고 끝났을 것을,
현우와 해인이가 임신 4주 차라는 말을 듣고 손을 꼭 잡으며 행복하게 웃었던 장면 뒤로 유산을 하고 아기방을 치우고, "너도 나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라며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해인이, 아마 그녀는 오빠를 잃고 나서 아들을 잃은 엄마에게 <너 때문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은 상처를 꺼내 보이는 것 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상처를 현우가 몰랐을까, "나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라는데 "됐다, 관두자." 하고 가 버리는 모습은 보는 내가 다 서운했다. 그 상처를 알면서도 그랬다면 현우답지 않다. 그 상처를 모르고 있었다면 그건 말이 안 된다. 임신부터 유산까지, 임신 출산의 경험자로서 알기로는 삼 개월 남짓도 안 될 기간 안에 그렇게 꿀 떨어지던 부부가 그렇게 남처럼 갈라설 수 있을까. 그 부부가 틀어지기 시작한 결정적인 장면, 어쩌면 그 드라마의 시작점인 그 장면부터 회의가 들고 이해가 안 가기 시작하니 지금까지 시청해 온 그 시간들이 아까워졌다.
재준이 (은성이)가 벌 받지 않고 그냥 죽어버렸다는 것. (우리나라 경찰은 그런 힘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보트 전복 사건에 대한 전말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아무리 공소시효가 지났을 거라 해도), 어린 현우가 어린 해인을 물에서 건져준, 작가가 몇 회에 걸쳐서 뿌려놓은 떡밥을 정작 당사자들은 모르고 행복하게 살다가 2074년에 늙어 죽었다는 헛웃음이 나오는 투머치 이야기. 아, 이 드라마를 내가 왜 봤을까. 이 허한 마음을 누가 달래 주리오.
제작비가 400억 들었다고 하는데 제작비 절반 정도로, 그냥 꽉 채운 회당 50-60분 구성으로 12부작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전개와 납득 가능한 결말을 맞았다면 화제성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제작비는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이런저런 논란 없이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드라마 제작비 아까워할 주제는 아니지만)
현우와 해인을 보며 흐뭇했고, 억 소리 나는 화려한 착장들을 보며 대리만족 했고, 배우들의 열연을 감탄하며 그래도 14화까지는 50프로 이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았는데, 마지막 주에 그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헛헛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