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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6. 2024

코스트코 식빵 한 봉지

냉동실에 입장하실게요~

코스트코에 가서 식빵 한 봉지를 들여왔다. 식빵 한 봉지, 하지만 코스트코는 일반 빵집과 계량이 다르니 한 봉지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집어 들 생각조차 못 했던 몸집의 식빵이다. 아니 저걸 어떻게 다 먹어? 냉동실에서 화석이 되겠구먼.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저체중 아들 둘을 키우는 저체중 엄마이지만, 애들이 좀 컸다고 이 큰 식빵 "한" 봉지가 다 소진이 된다.


우리 아이들은 아침에 밥을 먹지 않는다. 밥은 점심이나 저녁때 먹는 것이고 아침엔 밥 말고 다른 것을 먹는 것이 우리 집 국룰이 된 듯하다. 아마 아침을 안 먹는 아빠와, 역시 아침을 잘 먹지 않으며 입맛도 한식파가 아닌 엄마 사이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숙명이 아닐는지, 밥, 국, 반찬을 내어 주어야 하는 아침식사가 아니라 한결 수월 하긴 하지만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아침 식단은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식빵 한 조각을 잘라서 두 아이가 나누어 먹던 시절이 있었다. 입이 짧아 식빵 반장이면 족하던 아이들, 조금 크더니 각자 식빵 한 장씩을 차지하고는 먹고 조금 남기게 되었다. 그것도 식빵에 잼만 발라 주었을 때만 그렇다. 계란 샐러드나 계란 프라이, 치즈라도 한 장 들어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식빵 반장 남짓 먹고는 엄마, 배불러. 하던 아이들. 그런 시절엔 파리바게트에서 3000원짜리 식빵 한 줄 가지고도 몇 날 며칠을 먹다가 결국엔 냉동실로 들어가곤 했는데 이젠 속을 든든히 채운 샌드위치도 잘 먹는다. 샌드위치는 매 번 만들기도 번거롭지만 양도 애매하다. 식빵 두 장 속에 계란, 고기패티, 채소 등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면 둘째는 그 절반 사이즈도 다 못 먹고 찍 물러나는가 하면 이제 먹는 양이 제법 늘은 첫째는 한 두 입 더 먹고 싶어 하는데 동생이 남긴 걸 먹으라 하기도 그렇고 두 개 만들어 두자니 너무 많이 남는다. 내가 먹으면 되는 일이지만 속이 꽉 찬 샌드위치 한 개를 거의 다 먹게 되는 건 나에게 과식에 해당하는 일이라 곤란하다. 참으로 슬픈 일. (참고로 본인은 만성 소화 불량에 시달리는 환자이자 소식파이다)


베이컨을 한번 데쳐내어 부연 기름물을 빼주었다. 조금 맛없어 보이지만 구우면 바삭하고 맛있어진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베이컨 돌돌말이였다. 코스트코에서 식빵과 스트링 치즈, 베이컨을 대량 구매하면 일반적인 식사로는 다 소진하기가 힘들었는데 식빵에 스트링 치즈를 넣고 돌돌 말아 베이컨으로 감싸 두면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주면 맛있는 아침 식사가 완성이다. 한 번에 만드는 게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고 일단 빵과 치즈, 베이컨의 조합이라 맛 보장이다.


치즈도 짭짤한 데다 베이컨도 기름과 염분이 많은 가공식품이니 베이컨을 뜨거운 물에 살살 헹구어 염분과 기름기를 조금 제거해 주었다. 신성한 베이컨에 이 무슨 천인공노할 짓인가! 싶지만 아이들 식단인 데다, 치즈가 들어가 이렇게 한 번 베이컨을 데쳐주어도 충분히 짜고 기름지고 맛이 있다. 어른들이 가끔 먹을 거라면 당연히 귀하신 베이컨 기름과 소금까지 먹어야 하지만 말이다.


한 번 구울 때 서너 개를 꺼내어 구워주면 아이들 아침으로, 남은 것을 한 입 사이즈로 잘라 두면 오후에 왔다 갔다 하며 먹는 간식으로 하루에 끝! 한두 달 정도는 생각날 때 꺼내어 먹을 수 있겠다.



이렇게 돌돌 말이를 만들다 보면 코스트코 식빵 한 봉지의 절반이 소진된다. 나머지의 절반과 뻣뻣한 식빵 끝부분은 마늘빵을 만들어 둔다. 버터나 올리브오일에 다진 마늘을 넣고 올리고당을 한 두 바퀴 두른 다음 빵 위에 넉넉히 발라 이것 역시 냉동실로. 생각날 때 꺼내어 오븐에 살짝 구워주면 좋은데 마늘빵을 먹는 날엔 꼭 오뚜기 스프를 찾는 아이들이다. 다른 수프나 클램 차우더 같은 것들 말고 오뚜기 쇠고기 스프를 좋아한다. 덕분에 진한 크림스프나 토마토 마녀스프, 프렌치 어니언 스프등으로 조금 고급져졌던 나의 스 취향도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와 오뚜기 쇠고기 스프를 먹게 되었다. 마늘빵을 호호 불어 수프에 찍어 먹다가 담가 먹다가 스프를 그릇 째 들고 마셔버리는 아이들. 그래, 맛이니?  



이렇게 엄청난 양의 코스트코 식빵이 반조리 상태가 되어 냉동실로 들어가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마음이 든든하다. 당분간은 아침 식사로, 간식으로 뚝딱 만들어 줄 수 있으니, 파는 것보다 저렴하고 건강하고 맛있게, 코스트코에서 저 많은 식빵을 누가 사나 했었는데 어느새 그게 내가 되어버렸다. 아들 둘이 본격적으로 먹게 되면 코스트코 없이는 힘들 거라고들 그런다. 새삼 우리 엄마는 딸 셋을 어떻게 키웠는지 궁금하다. 한창 먹을 때 여도 딸들이라 그렇게 많이는 안 먹었으려나, 그래도 한창 때는 아침에 도시락을 다섯 개를 싸던 엄마였으니, 그래서 지금도  1-2인분 만드는 것보다는 넉넉하고 푸짐하게 만드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신가 보다. 이렇게 엄마들이 다 손이 크시듯 내 손도 커질 건가 보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은 베이컨 돌돌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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